‘콜트’라는 이름만 들어도 감상에 젖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검열과 야간통금으로 기억되는 어둡던 시절, 젊은이들은 이 회사에서 만든 통기타에 의지해 끓는 피를 달래며 신산(辛酸)의 세월을 견뎌냈다. 콜트콜택은 기타를 만드는 회사다. 콜트악기와 자회사인 콜택을 합쳐 콜트콜택이라 부른다. 콜트콜택은 더 이상 국내에서 기타를 만들지 않는다. 단돈 200만원으로 시작했던 회사가 30년만에 1200억원대 우람한 회사로 성장하자 사주는 2007년 느닷없이 폐업하고 공장을 외국으로 이전해 버렸다. 출근했던 노동자들은 굳게 닫힌 공장 대문 앞에서
꿈 많은 스무 살 아가씨였던 흑인여성 사끼 바트만(Saartje Baartman, 1789~1815)은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영국 의사의 꼬임에 빠져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유럽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과 수모였다. 진화가 덜 된 열등인종 취급을 받으며 성적 착취에 시달렸다. 벌거벗은 채 전시되기도 하고 틈틈이 스트립쇼도 해야했다. 호기심어린 유럽 남성들을 위해 매춘도 강요받았다.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참혹한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5년 만에 프랑스 파리의 허름한 골방에서 홀로 숨졌
구제역·조류독감 같은 이상 바이러스에 감염된 소나 돼지, 닭과 오리들이 집단으로 생매장되는 일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다 죽어가는 참혹한 현장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다. 그러나 그런 처참한 광경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고기를 찾고 육식에 열을 올린다. 생명이 상품으로 전락할 때 얼마나 무자비한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매일 목도하고 있다.죽인 동물, 고기로 먹는 사실에육식 끊고 동물 보호운동 결심생명으로서 누릴 권리 찾기나서고통 알린다며 새끼돼지 능지처참연평도 포격 때 버려진 반려동물잊혀 지지 않는 가슴 아픈 사연
광복 70년이다. 힘든 기억도 세월이 지나면 무뎌진다지만 70년 세월을 그저 피울음으로 보낸 이들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다. 이름만으로도 슬프고 아픈 이름. 어쩌면 위안부라는 말도 할머니들에겐 모욕일 것이다. 할머니들은 위안부였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일제의 의해 납치된 성노예였다. 일제는 솜털 보송한 여린 소녀들을 과자를 준다고 속이거나 혹은 강제로 끌고 가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성노예로 무참히 짓밟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지옥 같은 고통을 겪었고, 소녀들은 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살아남은 소녀들
혹시 허다윤 양을 아는지.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2반 다윤이는 지난해 4월16일 이후 깊은 바다 속 세월호에 갇혀있다. 친구들은 하나 둘 주검으로나마 부모와 가족의 품에 안겼다. 그러나 다윤이는 침몰한 세월호에서 지금까지 나오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1년. 다윤이처럼 아직도 깊은 바다 속에서 가족을 기다리는 이들이 9명이 된다.350일 넘게 딸 흔적 찾아 헤매운동화·모자·가방만 돌아와청와대 앞에서 1인 피켓 시위아픈 몸에도 나온 아내와 교대배 인양 약속한 정부 묵묵부답딸 생각에 숨 쉬는 것도 미안“뼈라도
김정우(54) 쌍용차 노동조합 전 지부장의 생의 초침은 2009년 뜨거웠던 7월에 멈춰서 있다. 회사 측이 노동부에 2405명의 정리해고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길고 긴 악몽은 시작됐다. 느닷없는 해고통지에 동료들은 공장점거 총파업으로 맞섰다. 그러나 77일간의 점거투쟁은 헬기와 34개 중대를 동원한 경찰의 폭력 앞에 처참히 무너졌다. 평범했던 일상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가정은 파탄 나고 생활고에 시달렸다. 동료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났다. 해고 이후 5년6개월. 자살이나 병으로 26명이나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더 이상 견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