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배휴가 물었다. “만약 무심이라면, 이 도를 행해서 얻을 수 있는 겁니까?” 선사가 답했다. “무심이 곧 도를 행하는 것이다. 다시 무엇을 더 얻고, 얻지 못한다고 말하는가? 다만 잠깐이라도 일념을 일으키면 문득 경계에 끌려간다. 만약 일념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곧 경계도 사라진다. 망심이 스스로 사라지면, 다시 쫓아서 구할 필요가 없다.” 배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삼계를 벗어나는 것입니까?” 선사가 답했다. “선악을 모두 사량하지 않는 것이 삼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신 것은 삼계를 깨뜨리기 위함이다.
원문: 배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정진입니까? 선사가 답했다. “몸과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 이것이 제일 위대한 정진이다. 잠깐이라도 마음이 외부를 향하여 법을 구하는 것을 ‘가리왕이 사냥을 즐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음이 밖에서 떠돌아다니지 않는 사람을 인욕선인이라고 한다. 몸과 마음, 모두 잊는 것을 불도라고 한다.”수행서 가장 중시할 점이 인욕자비·인욕엔 반드시 용서 수반정진에 지나치게 앞서려 말고퇴보 없이 천천히 나아가길해설: 배휴가 정진에 대해 묻고 있다. 황벽은 몸과 마음이 모두 무심한 경지가 인욕이라고 하고 있다
원문: 배휴가 물었다. “혹 시방제불이 출세(出世)한다면 무슨 법을 설하겠습니까?” 선사가 답했다. “시방의 제불이 출세하더라도 모두 한 가지로 일심법을 설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밀밀히 부촉하셨기 때문에 이 일심법의 본체가 온 우주 허공 법계에 두루하다. 이를 제불의 이치라고 한다. 어찌하여 이 법을 언구상에서 체득하려고 하는가! 이 뜻은 한 경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묵묵히 계합해서 얻는 것이다.…혹 취하고 버리는 분별심이 없다면, 마음이 목석과 같아진다. 바로 그때서야 비로소 도
원문: 배휴가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황벽이 답했다. “그대 마음이 바로 부처이다. 부처가 곧 마음이다. 마음과 부처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르기를 ‘마음이 곧 부처요, 마음을 떠나서 다시 다른 부처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배휴가 물었다. “마음이 부처라고 한다면, 조사가 서쪽에서 와서 무엇을 전한 것입니까?” 선사가 답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것은 오직 마음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바로 ‘그대들의 마음이 본래 이 부처’라는 것을 가르쳤다. 마음과 마음이 다르지 아니하다. 그래서 ‘조사’라고 이름한다. 만약
원문: 배휴가 물었다. “화상은 지금 법을 설하고 계시거늘 어찌하여 승도 없다 하고, 법도 없다고 하십니까?” 선사가 답했다. “그대가 만약 법에 설할 것이 있다고 본다면 ‘곧 음성으로 나를 구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만약 ‘내’가 있다고 보면, 곧 처소가 있다는 뜻이다. 법도 또한 무법(無法)이며, 법이 곧 마음이다.…실로 한 법도 얻을 것이 없는 것을 이름 해서 ‘도량에 앉는다’고 한다. 도량이란 다만 이 모든 견해를 일으키지 않고, 법이 본래 공임을 깨닫는 것이니, 이것을 공여래장이라고 부른다. ‘본래 한 물건
원문: 배휴가 물었다. “불성과 중생성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선사가 답했다. “성품에는 같고 다름이 없다. 그렇지만 삼승[성문·연각·보살승]의 가르침에 따르면, 불성이 있고 중생성이 있다. 이는 삼승의 인과에 따라서 곧 같고 다름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불승 및 조사가 서로 전하는 바로 보면, 이런 일들은 설하지 않으며 오직 일심만을 가르친다.…‘오직 일승의 도가 있을 뿐이요, 둘도 셋도 없다. 다만 부처님의 방편설을 제외한다.’…만약 견처가 있다면 곧 외도라고 한다. 외도는 모든 견해를 좋아하고, 보살
원문: “그대가 3승 12분교를 배웠다고 할지라도, 모든 (견해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서 경에서 ‘있는 것을 모두 제거하고, 오직 한 침대위에 누워 있다’라고 하였다. 어떤 견해이든 일으키지 말라.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으니, 법에 걸림이 없어야 삼계 범부와 성인의 경계를 초탈한다. 이때에야 비로소 세간을 벗어난 부처라고 할 수 있다. … 마음이 이미 다르지 않으므로 법도 또한 다르지 않다. 마음이 이미 무위이므로 법도 또한 무위이다. 만법이 다 마음의 변화로 나타난 것이다. 나의 마음이 공하기 때문에 제법도 공하며
원문: 배휴가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어떻게 제도하십니까?” 황벽이 말했다. “실로 여래는 중생을 제도한 적이 없다. ‘아도 오히려 얻지 못하는데, 비아(非我)를 어찌 얻으려는가?’ 부처와 중생 모두 다 얻을 것이 없다.” 배휴가 물었다. “부처님은 32상으로 모습을 나타내었고, 중생제도를 하였거늘 어찌하여 얻을 수 없다고 하십니까?” 선사가 말했다. “경전에 ‘신체적 특징들은 모두 헛된 것이니, 신체적 특징을 신체적 특징 아닌 것으로 본다면 바로 여래를 볼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부처와 중생은 다 그대가 지은 헛된 견해이
원문: 부처로부터 조사에 이르기까지 또한 다른 일을 논하지 않았다. 오직 일심만을 논했으며, 또한 일승을 말했다. 그래서 ‘시방을 두루 살펴 구해도 다시 다른 승이 없다. 이 대중은 곁가지가 아니라 잘 익은 열매와 같다’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 뜻은 믿기 어렵다. 달마가 이 땅에 와서 양나라와 위나라에 머물 때, 오직 혜가대사 한 사람만이 면밀히 자심(自心)을 믿고 언하에 문득 즉심시불을 깨달았다. 신체와 마음을 모두 잊는 것을 대도(大道)라고 한다. 대도는 본래 평등하다. 왜냐하면 중생이 (부처와 더불어)동일한 진성임을 깊이 믿어
원문: 배휴가 물었다. “부처가 무엇입니까?” 황벽이 말했다. 마음이 곧 부처이다. 무심(無心)이 도이다. 다만 마음에 생각으로 있음과 없음, 길고 짧음, 상대와 나, 주관과 객관 등 이분법적 분별심을 내지 않는 것이 (참다운)무심이다. 마음은 본래 부처요, 부처는 이 마음을 근본으로 한다. 마음은 허공과 같다. 왜냐하면 ‘부처의 참된 법신은 허공과 같다’고 하였다. 달리 (부처를)구할 필요가 없다. 구함이 있으면 고통이 따른다. 설사 억겁이 지나도록 6바라밀과 온갖 만행을 닦아 부처의 보리를 얻는 것은 완전한 깨달음이 아니다. 왜
원문: 배휴가 물었다. “어떻게 해야 계급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황벽이 말했다. “하루 종일 밥을 먹지만 한 톨의 쌀도 씹지 않으며, 하루 종일 걷지만 한 평도 밟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인상·아상 등이 없으며, 하루 종일 일체의 모든 일을 여의지 않으면서 모든 경계에 미혹되지 않는 자를 ‘자재인’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어느 시간 순간순간마다 일체 모습을 보지 않고, 전후 삼제도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는 지나갔고, 현재는 머물러 있지 않으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편안하게 단정히 앉아 임운에 구속됨이 없어야 해탈
원문: 바로 이때가 되어서야 조사가 서쪽에서 온 이래 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한 것이 언설에 있지 않음을 알았을 것이다. 어찌 다음 문답을 알지 못하는가?혜능의 뛰어난 제자들로 인해후대에 북종선은 방계로 취급가섭은 선, 아난은 교를 상징찰간 화두는 선 황금기 탄생 아난이 가섭에게 물었다. ‘세존께서 금란가사를 전한 이외에 다른 물건을 전한 것이 있습니까?’ 가섭은 대답은 하지 않고 아난을 부르자, 아난이 바로 ‘예’라고 응답했다. 가섭이 말했다. ‘문 앞의 찰간을 뽑아 버려라!’ 이는 조사의 표방이다. 똑똑한
원문: 배휴가 물었다. “6조 혜능은 경서를 알지 못하셨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가사를 받았으며, 6조가 되셨습니까? 신수 스님께서는 500인 가운데 수좌였고, 교수사로서 32본 경론을 강의하는 분이었는데, 어찌하여 가사를 받지 못한 것입니까?”혜능, ‘금강경’ 소리에 깨쳐5조 홍인 스님 찾아가 출가상수제자인 신수 제치고전법 증표 의발·가사 전수 선사가 말했다. “신수는 마음이 남아 있었고 유위법으로 수증했으므로 5조는 6조 혜능에게 (법을) 부촉한 것이다. 6조는 당시 묵묵히 계합해 증득했으며 여래의 심심한 진리를 수지했기 때문에
원문: 지공이 ‘세간을 초월한 명사를 만나지 못했다면, 대승의 법약을 그릇되게 복용한다’라고 하였다. 그대가 지금 일체시중 행주좌와에 무심을 배워 오랫동안 거듭하면, 힘을 조금이라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의 설법은 다 사람을 교화하기 위한 것으로 마치 누런 잎을 황금이라고 속여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이다. 결단코 실재적인 것이 없다. 만약 실재적인 것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 종문의 사람이 아니다. 또한 그대의 본체와 무슨 교섭이 있겠는가? 경에 ‘조그마한 법조차도 얻을 것이 없는 것을 아뇩보리라고 한다’고 하였다. 혹 이 뜻
원문: 배휴가 물었다. “세속제란 무엇입니까?”마음엔 모양과 형체 없어다만 감수작용만 있을 뿐힘든 고난에 맞닥뜨리면관조해 흘러가게 두어라선사가 말했다. “갈등을 설해서 무얼 하겠는가? 본래 청정한 것이거늘 어찌 언설로서 묻고 답하랴! 다만 일체의 마음이 없는 것을 무루지라고 할 수 있다. 그대가 매일 앉고 서있으며 누워있을 때나 어떤 말을 할 때도 단지 유위법에 집착이 없다면, 말을 하고 눈을 깜빡이는 모든 것이 번뇌 없는 경지[無漏]이다. 말법시대로 접어든 지금, 선도(禪道)를 배우는 자들이 온갖 소리와 색깔에 집착하고 있으니,
원문 : 선사가 법상에 올라 법을 설하였다. 해탈 추구하는 그 마음까지내려놓는 무심이 바로 무구마음이 장벽처럼 견고해야수행의 길 끝까지 갈수 있어“수많은 알음알이는 ‘구함이 없는 것’만 못하다. 도인이란 바로 무사인이다. 실로 여러가지로 잡다한 일에 마음이 반연되는 것이 없다. 더 이상 설할 것이 없으니, 무사히 돌아가라.” 해설 : 원문에서 “수많은 알음알이는 ‘구함이 없는 것’만 못하다”는 곧 알음알이나 지해로서 법을 구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구함이 없는 것[無求]’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초조 달마 선사의 사상
원문: 배휴가 물었다. 어떤 법도 얻을 것 없기에최상의 깨달음이라 일컬어이심전심 이어지는 전법얻었다 관념 없어야 가능“망념이 자심(自心)을 가로막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망념을 없앨 수 있을까요?”“망념을 일으키고 망념을 없애려는 것 또한 망념이다. 망념은 본래 근본이 없다. 분별해서 실제로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대는 범부와 성인이라는 두 가지 경계를 염두하고 있는데, 이 두 경계의 알음알이가 없다면 자연스럽게 망념이 없어질 터인데 어찌하여 다시 헤아려 그것을 없애려고 하는가? 모두 털끝만큼이라도 의존해 집착하지 않
즉심시불은 마조 대표 사상선사상 발달에 지대한 영향제자 깨우치기 위한 방편범부·성인 경계 없으면 부처원문 : 배휴가 물었다.“고래로부터 모두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는데, 이 뜻을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느 마음이 부처라는 것입니까?”선사가 답했다.“그대는 몇 개의 마음을 갖고 있는가?”배휴가 물었다.“범부의 마음이 부처입니까? 성인의 마음이 부처입니까?”선사가 답했다.“그대는 범부와 성인의 마음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배휴가 말했다.“지금 선사께서 삼승 가운데 범부와 성인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사께서 어찌하여 없다고
원문: 모든 사람들이 진리를 알지 못할까 염려되어 방편으로 ‘도’라는 이름을 세웠을 뿐이다. 그러니 이름에 갇혀서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 고기를 잡았으면, 통발을 잊어야 한다.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도에 요달해 깨달아야 한다. 이렇게 근원자리에 통달한 사람을 사문이라고 부른다. 사문의 수행은 사려(思慮)를 쉼으로 해서 이뤄지는 것이지, 배우는 것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지금 마음을 갖고 마음을 구하는 것과 같다. 옆집에 머물러 배움을 헤아려 구하려 하니, 어느 시절에 도를 얻겠는가? 성문·연각·보살이 다 방편근기에 맞춰 설
도는 어떤 처소가 없으므로알음알이로 배우면 그릇 돼도를 배우라 가르치는 것은깨우치기 위한 방편에 불과원문: 황벽선사가 말했다. “진실한 법이란 전도됨이 없는 것이다. 그대가 지금 질문하는 자체가 전도되어 있다. 무슨 진실한 법을 찾는가?” 배휴가 물었다. “저의 질문이 전도된 것이라고 한다면 화상의 답은 어떤 것입니까?” 선사가 답했다. “그대는 어떤 물체를 통해 자신을 비춰봐야지 다른 사람과는 상관할 바가 아니다.” 또 다시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다만 한낱 어리석은 개와 비슷해 물건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짖어대니, 바람에 흔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