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990년대 한국화에 대한 논의의 현장을 다녀왔다. 현대 한국화를 이야기하다 보면 가장 논의가 활발했던, 그리고 가장 한국화의 기법 파괴가 이루어졌던 1990년대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전통 미술 ‘서화’를 ‘동양화’로, 이후 1982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한국화’로 부르기 시작해서 1983년 교과서에 수록되면서 일반적인 용어가 된 한국화에 대한 논의는 1990년대 인터넷이 들어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기술의 시대인 오늘에 이르기까지 급격한 개념 확장을 보여주고 있다. 먹 만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인물을 그리고 있
우리말로 ‘소묘’라 부르는 ‘드로잉(drawing)’은 그림을 그린다는 뜻이다. 보통은 정식 그림을 그리기 전, 밑그림으로 아이디어를 빠르게 기록하거나 그림을 완성하기 전의 밑그림으로 여긴다. 생각 초기의 아이디어 스케치라서 어쩌면 작가의 감정이 더욱 직접적이고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즉흥적이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작가의 감정을 그대로 화면에 표출해내기에 더욱더 생생한 느낌을 표현해 내는 거라 생각한다.‘동구리’라는 캐릭터로 알려진 권기수 작가는 동그랗게 생긴 ‘동구리’와 그녀석이 들어간 관념적 동양화풍의 자연을 아주
중국의 전통 연극에 그림자 인형극 피영(皮影)이 있다. 전통연극인 경극과 함께 민간에서 시작된 이 인형극은 동물 가죽을 이용해 형상을 만들고 이를 빛을 통해 그림자로 이미지화한다. 여기에 대사와 노래가 함께하는 인형극이다. 고은주 작가의 ‘숨은꽃찾기’ 시리즈 작품 중 흰 종이에 칼로 파서 제작 설치된 작품의 이미지는 마치 인형극 피영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작가는 주로 꽃을 주제로 작업하는데, 꽃이 의미하는 것은 생명의 완전체로서 생명에너지의 원천이자 큰 의미에서 자연을 상징한다.작가는 최근 임신과 출산, 육아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
전시장에서 만난 검은 바탕위에 그려진 작은 매화가 눈길을 잡는다. 검은 바탕과 흰 꽃과 흰 화병이 주는 느낌은 동양회화의 대표적인 소재이자 주제인 사군자 그림을 한결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으로 느끼게 한다. 사군자라 하면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인데 왜 이런 식물들이 최고 선의 경지라고 하는 군자에 비유될까 생각해 본다. 사무실에 공기정화에 좋다고 하는 여러 식물들이 있다. 화분들 속에 동양 난 화분이 한 둘 끼어 있는데, 몇 년을 같이 키우다 보니 난초의 고고한 성정이랄까, 특징이랄까 아무튼 마음을 움직이는 매력이 있다는 걸
여름날의 무성함이 지나가고 위대한 자연 앞에 자신을 추스르게 되는 때다.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만은,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자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대변하는 ‘꽃’이라는 주제는 많은 작가들이 다루어 왔고 좋아하는 소재 중 하나다. 안진의 작가는 작품 생활 초기부터 ‘꽃’을 다루어 왔고, 꽃을 통해 다양한 조형적 실험과 시도를 해왔다. 전통회화에서 꽃은 사군자로 부르는 매난국죽 중 매화, 국화, 거기에 난초의 꽃이 있다. 또 많이 등장하는 꽃으로는 부귀와 번영을 상징하는 모란과 진흙 속에 피어 군자의 꽃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
이번 추석은 다른 때 보다 빠른데다가, 후덥지근해서 그다지 명절 느낌이 덜했던 것 같다. 늦더위와 함께 태풍과 비가 반복되더니 이제 서야 더위는 빠르게,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 느낌이다.임만혁 작가의 개인전이 강원도 춘천 이상원 미술관에서 올 연말까지 열리고 있다. 작가는 강원도 출신으로 서울에서 대학원 이후 7년여 정도 활동을 하고 다시 줄곧 고향인 강릉에서 작업하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작품을 접한 것이 그 서울생활 중 어느 시점이었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 전시되었던 여러 작가의 작품 중에서 남미 대사관에서 임만혁
수묵화의 전통은 1500여년 동안 회화의 주류로 이어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와서 수묵화의 전통은 그저 그 전통으로서만 존재하는 듯하다. 정치를 비롯해서 교육, 문화, 경제 등등 모든 가치가 서구 중심으로 되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감흥이 없는 미술 기법처럼 여겨지는 면도 없지 않다.수묵화는 중국 당(唐)대의 시인이자 화가인 왕유(王維, 699~759)로부터 본격적인 영향을 받아 활성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문인 사대부들이 그들의 사상을 표현하기에 적당한 매체로 인식했던 모양이다. 수묵화는 그 재료 자체가 단순하다. 종이와
성장의 변곡점을 찍으면 퇴화한다고 해야 하나. 일정기간 성장을 하고 정신없이 눈앞의 삶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나이에 다다른다. 시간이 지나고 무르익으면서 성장을 향해 달려왔던 시간들이 새삼스러워지고 다른 사람들의 인생이 이해가 되면서 기존의 생각들이 바뀌기도 하고 포기하게 되기도 한다. 어쨌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바뀌기도 한다. 이를 작가의 작품세계에 비추어 이런 성장의 흐름과 생각의 변화들이 그대로 작품에 반영되어 작품이 무르익기도, 그 작가만의 특색이 더 두드러져 보이기도 한다.친구로서 오랫
작품 제목이 말하는 무릉도원은 중국의 무릉이라는 지역에 사는 어부가 우연히 복숭아나무를 발견하고 따라 들어가 낙원에 도착하여 겪은 이야기가 담긴 도연명의 도화원기라는 시에서 나온 말이다. 전란을 피해 들어온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신선의 옷을 입은 농부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과 술을 대접받으며, 바깥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집으로 돌아 와서는 다시 돌아가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는 대략의 이야기다.상상 속 이야기지만 오랫동안 동양정신과 삶의 태도가 담기고 각색되어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어 왔고 그림이나 시로 다시금
류지선 작가의 그동안 작품은 전형적인 구상 작품들이었다. 자연의 풍경을 담거나 해바라기, 소나무 등 작가가 감동받은 사물이나 풍경을 사실적으로 화면에 담아내는 그림들이었다. 눈에 익은 익숙한 풍경화 작업에서 최근의 작품들은 구도가 좀 더 대담하고 색감도 과감하다. 그러나 여전히 작가의 특징인 섬세함과 세심한 성격이 그대로 그림에서 느껴진다.‘민들레 홀씨’는 다양한 배경을 바탕으로 민들레꽃의 사실적 표현과 공중에 부영하는 홀씨가 배치되어 있다. 작품이 작가 스스로를 찾아나가는 여정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류지선 작가는 최근 들어 본인다움
오래전 해외여행 중에 들른 미술관에서 아주 인상 깊게 본 작품이 있다. 제목이 ‘mother’인 작품이었다. 커다란 입체 작품 위에 엄마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오브제들이 가득 붙어있었다. 아이들 장난감, 국자, 냄비, 그릇, 청소용구, 젖병, 엄마의 낡은 옷, 포대기 등…. 특히 아이들 장난감들이 엄청나게 붙어있었다. 가물가물한 기억이지만, 작품설명과 제목을 볼 필요도 없이 보는 순간 그냥 그 자체가 ‘엄마’였다. 여자, 여성이 아닌 엄마가 되는 일은 동서가 다 비슷한 모양이다. 홍미림 작가의 여러 작품 중 눈에 들어온 이 그림을 보
한동안 동물생태지도를 연상하게 하는 각종 동물과 인간의 형상을 추상적 도형과 함께 중첩시켜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던 중년의 허진 작가가 새로운 시도와 화두로 신작을 선보이고 있다. 현대 사회에 내재된 모순과 부조리함을 생태학적 관점으로 해석하며 이질적인 동물형상, 혹은 야생동물과 인간의 형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적 시선을 보여 주었다면, 최근 발표한 신작 ‘나에게 돌아오는 시간’이라는 일련의 작품들은 좀 더 일상과 역사라는 미시적 시각을 보여준다.허진 작가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 중 하나는 소치 허련의
수묵화를 이야기할 때 선종과의 연관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선종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시공의 한계를 초월한 초연성을 갖고 있다. 깨달음이 일종의 경계로 본다면 사물을 보다 초월하는 것으로 그림으로 보면 어떤 형태나 표현, 구체적인 묘사를 통한 것이 아닌 그 경계를 넘어서는 표현과 행위 그자체가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스며들다. 스며듦은 따듯함이다. 먹과 물과 종이처럼 나와 대상의 이어짐이다. 계절이 오고 또 가고 꽃이 피고 지듯 스며듦은 자연의 속도이다. 이것이 내 삶의 방식이다.’(2019년 5월 조순호
최근 다양한 작가들이 작가 개인의 경험과 동시대성을 담아내 시대적 공감과 다양한 인물화의 폭을 넓히고 있다. 미술이 시대의 정신을 담아내는 시각예술이라는 측면으로 볼 때 현대 작가들의 인물화 속에는 다양한 현대의 인물이 등장한다. 최근 젊은 여성을 그린 새로운 측면의 ‘미인도’가 등장하는 것 또한 그러한 경향의 일환이다. 젊고 발랄한 현대여성의 미인도는 대중의 인기를 함께 누리고 있기도 하다. 작가 ‘고찬규’의 작품은 다른 의미의 시대성을 보여준다. 한국화의 전통 채색화 기법과 과슈와 아크릴을 사용하기도 하여 인물화의 현대성을 추구
정진용 작가의 풍경그림에는 옛 궁궐이나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건물들이 등장한다. 장엄한 느낌을 주는 옛 건물인 궁궐을 통해 권위와 욕망의 상징적 공간을 역사적 의미를 더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어떤 공간에 들어설 때 사람들은 그 공간이 주는 분위기에 행동이 달라지기도 하는 것처럼 작가는 공간의 의미를 그림을 통해 확인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듯한 광화문사거리의 풍경 속에 등장하는 집들은 현대의 건축물들이 아니다. 옛집들이 빼곡한 도성 안의 풍경은 사실과 현재의 풍경에 근거했다기보다는 작가의 상상과 사료를 기반으로 한다.
우연히 만난 권봄이 작가의 작품 ‘Circulation’은 단순하고 명료한 색감으로 이 봄에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더구나 크고 작은 원형의 조형이 기분을 명랑하게 한다. 칼같이 쌀쌀한 바람 틈으로 햇볕은 따뜻하다. 그늘이 아닌 햇볕이 비추는 길로만 다니면, 봄이 온 것을 실감하고 이 새로움이라는 단어에 마음 뿌듯이 기대감도 올라간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들에 대한 기대감. 생애주기의 연령대마다 계절에 대한 느낌도 다르고, 마주하는 삶에 대한 태도나 일을 풀어가는 자세도 달라진다. ‘Circulation’이라는 단어는 ‘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본 게 거의 20년쯤 전의 일이다. 그때 한생곤 작가에 대한 이미지는 문인으로 치면 방랑시인 같은 느낌이었다. 작품도 헐렁하다고 해야 하나,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은, 억지로 무엇을 그리려고 한 것이 아닌 그런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작가의 개인전 소식을 접하고 만난 작품들은 훨씬 깊이가 있었다. 시간과 연륜의 효과이기도 하겠지만, 무조건 시간이 흐른다고 작품의 깊이가 쌓이는 것은 아니다. 그런 연륜은 작가가 열심히 치열하게 자기 고민을 해온 결과이지 않을까 싶다.초기의 작품들도 자연을 닮은, 혹은
한양 성곽길 3코스를 따라 오르다 보면 고갯마루쯤 되는 곳에 중구청 소속의 문화공간 ‘THE 3rd PLACE’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전시와 모임, 예술교육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마주한 조은령의 작품은 공간에서 영감받아 공간 속에 자신의 작품을 조용하고도 잔잔하게 녹여내고 있다. 오랫동안 동양미술의 화제였던 사군자를 주제로 오래된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에 조화롭게 사군자의 정신을 돌아보게 한다. 조은령의 작품에서 두 가지 놓치지 말아야하는 감상포인트는 현대적이고 화려한 도시에 존재하는 오래된 주택의 옛 기
해가 바뀌고 설과 입춘, 대보름까지 년 초 주요 기념일들을 지내고 나니 벌써 삼월이 목전이다. 본격적인 2019년 한 해가 시작되는 듯하고, 뭔가 주변을 정리하고 환기시켜 새 기운을 받아야만 할 것 같다. 사람의 뇌는 기본적으로 어떤 현상, 혹은 사물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해가 바뀌어 한 해를 구상하면서도 그렇고, 주변에 벌어지는 많은 일들, 아이를 키우면서 가족 간에 벌어지는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해보면 나부터도 부정적인 생각 투성이다. 벌어지지 않은 일들에 대한 안 좋은 상상과 걱정을 번뇌라고 한다면 현대인들은
오랜만에 시원하게 여백을 살린 순수 담백한 수묵화 한 점을 만났다. 오랜만이라는 건 요즘은 이렇게 수묵으로만 그린 그림이 드물고 더구나 산수를 주제로 하는 작가도 드물고, 전통을 잇고 있지만 구태의연하다기 보다는 현대적인 느낌도 드는 작품이 드물다는 뜻이다. 눈 덮인 산자락에 범상치 않은 바위의 모습과 뒤편으로 보이는 소나무 가지를 보니 실제 그 능선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제목도 지리산 영신봉이니 작가가 직접 산에 올라 그 감동을 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4년 전부터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해 두 번쯤 종주를 완료하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