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코는 ‘일상선'에서 우리 스스로가 내면에 형성해놓은 핵심신념(core beliefs), 심상, 혹은 우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개인구성 심리학(personal construct psychology)에서 제시하고 있는 핵심구성물(core constructs)이라는 개념과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핵심구성물은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언어적이든 언어 이전이든 우리가 자신에 대해 형성해놓은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물들은 자아에 대한 열등한 의식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그러한 가능성에 대한 방어로써 평생 지
미국선의 주요한 개발자라고 간주되는 샬롯 조코 벡은 선찰보다는 현대문화를 배경으로 세속적, 심리적 자기(self)에 관한 선을 주창하였다. 조코는 ‘일상선(日常禪), 사랑과 일’(Everyday Zen: Love and Work, 한글 번역본 ‘가만히 앉다’)과 ‘별일 없습니다’(Nothing Special)라는, 미국선의 교과서와 같은 두 권의 법문집을 남겼다. 특히 ‘일상선’은 서양에서 출간된 많은 선수행 서적 가운데서 필립 카플로(Philip Kapleau)의 ‘선의 세 기둥’(The Three Pillars of Zen)과
미국 뉴저지 태생의 샬롯 조코 벡(Charlotte Joko Beck, 1917~2011)은 결혼하여 네 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교사로 일하다가 1965년 40대의 나이에 선 수행에 입문했다. 그녀는 타이잔 마에주미(前角博雄, 1931~1995), 하쿤 야수타니(安谷白雲, 1885~1973), 소엔 나카가와(中川宋淵, 1907~1984) 등 일본인 노사(老師)로부터 선을 배웠다. 마에주미 선사는 일본 조동종, 삼보교단, 임제종의 세 계보에서 각각 전법인가를 받았으며, 미국으로 건너와 선을 가르칠 때 전례 없이 임제종의 공안과 조동종의
2018년 11월 상가락시타는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 부고 기사에는 그가 국제 네트워크로서 FWBO를 창시하고 이 신불교 운동에 서양의 철학, 심리치료, 예술 등을 포함시켰으며, 또한 전통불교와 다르게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 비승가적 계율을 도입하기도 했다는 점을 그의 업적으로 부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결성된 지 50년이 지났고 이제 창시자가 세상을 떠난 이 시점에서 삼보불교공동체는 또 한 번의 기로에 서있다. 일반적으로 불교 공동체는 제1세대의 카리스마적 구루가 입적하게 되면 급격하게 그 세력이 약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상가락시타는 전통불교의 요소를 혼합하고 또한 서양불교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아시아문화의 더께를 가능한 한 제거한, 엄밀한 수행체계를 창안해냈다. 삼보 불교공동체의 한 법사는 그들의 수행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명상, 염송, 그리고 상좌부불교의 빠알리어 경전을 공부합니다. 그렇지만, 보살의 명호를 염송하고 대승경전인 ‘반야심경’을 낭독하는 의례도 있지요. 공부와 강의는 대승경전이나 대승의 교리에 기반을 두고 진행되지만 밀라레파, 파드마삼바바, 다키니(여신), 구루(스승) 그리고 금강승의 네 가지 기초수행도 만날 수 있습니다. 중국
모든 아시아불교 전통의 통찰과 접근방법을 자유롭게 혼합하여 새로운 수행법을 창안한 서양인 지도자가 있다. 데니스 링우드 (Dennis Lingwood), 일명 상가락시타(1925~2018)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서양 불교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영국인이다. 런던 남서부의 한 노동자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마침내 100여개의 불교센터, 안거시설, 주거공동체, ‘정명(正命)’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사업체들, 그리고 교육, 건강 및 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국제 네트워크로서 ‘서양불교단의 친구들’(FWBO: Friends o
역사적으로 불교는 어떤 문화에 전파될 때 항상 그 근본을 유지해왔으나 그 문화에 맞는 새로운 변용도 역시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므로 불교가 특정 지역의 문화를 바꾸고 또한 불교 자체도 그 문화에 의해 변용이 일어나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늘날 불교는 서양문화와 만나면서 중대한 국면에 처해 있다. 불교가 아시아로부터 서양으로,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로 전파되면서 극복해야 될 엄청난 문화적, 언어적, 정치적, 물질적 장벽이 있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서양은 아시아로부터 주요 불교전통을 전수받았으며, 그것들은 사용자
미국불교에는 주류문화에 긴 세월 동안 영향을 준 프로테스탄트주의의 진보적, 실용적, 현세적 경향이 드러난다. 이러한 경향은 불교의 경험주의적 기반이자 효과적인 도구인 명상으로 표현되고, 또한 붓다의 가르침을 따름으로써 개인이 얻게 되는 효용으로 표현된다. 미국에서는 이런 현세적인 성향이 붓다의 가르침이 지닌 힘이라고 간주된다. 그런데 이런 실용주의적 성향은 미국인들이 절충을 좋아하는 성격에서도 드러난다. 즉, 그들은 한 가지 수행에 전념하지 않고 다양한 불교수행을 체험하면서 선별적으로 수용한다. 물론 이러한 절충적 수용이 가능한 것
미국의 불교는 인종문제, 수행, 민주화, 사회참여, 변용 등의 중요한 문제로 인하여 개별적 불교공동체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신중한 자기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체제 속에서 성장해왔다. 이러한 자기성찰의 결과 미국불교의 내적인 통합성(ecumenicity)이 이제는 미국 땅에서 전통의 지속적이고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일치된 의견이 나오게 되었다.1987년 여름 미시간주 앤아버 선불교사원(Zen Buddhist Temple of Ann Arbor)은 ‘북미 세계불교 회의(Conference on World Buddhism i
최근 티베트불교의 정신적인 지도자 달라이라마는 네덜란드를 방문한 자리에서 티베트불교 교단 내 성학대 피해자들을 만난 바 있다. 미투구루(Metooguru)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하는 이 피해자 모임 대표 4명은 온라인서명 1300건을 받은 후, 피해자 12명의 진술서를 달라이라마에게 제출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호소했다. 이에 대해 달라이라마는 “25년 전 누군가 나에게 교단 성직자들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여기서 달라이라마는 1993년 3월 10개국 출신의 서양불교 지도자 22명과 다람살라에서
스캔들에 연루된 제자들은 철석같이 믿었던 스승에게 이용당했음을 알고 종종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어떤 이들은 후에 수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신경쇠약과 결혼 파탄 사례도 있었다. 선원들은 스승의 행위를 개탄하는 사람들과 그런 행위를 부인하거나 변명하는 사람들로 분파가 형성되었다. 옹호자들은 이런 사건을 완강히 부인하지 못할 경우, 스승의 “성스런 광기(crazy wisdom)”라고 설명해 버리곤 했다. 아니면 스승도 완벽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사건을 아예 무시해 버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또 다른
미국에서 불교는 1960~70년대가 토대를 쌓고 성장하는 시기였다면, 1980~90년대는 고통스런 성장과정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많은 불교 센터에서 규모가 크면서도 친숙한 공동체들은 카리스마적 스승의 지도 아래 발전해왔다. 아시아 불교에서 볼 수 있는, 독신과 출가라는 승가의 규율은 대부분의 경우 보다 더 느슨하고 세속적인 ‘확대가족’ 공동체 형태로 교체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선원의 스즈키 순류(鈴木 俊隆) 노사(老師)는 이런 수행공동체를 일러 “승려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인도 아니다(非僧非俗)”고 하면서, 서양 선 승가의 특징을
조상들의 명호를 염송하는 것도 예불의식의 중요 부분으로 인식되었는데, 이런 절차를 통해서 불교전통에서 계보의 역사와 진실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보의 조상들은 거의 예외 없이 남성이다. 여성 수련생들은 여성조상과 역할모델이 없다는 사실을 아쉬워하면서 불교역사 속에서 위대한 여성 수행자를 찾아보기 시작했지만 두드러진 여성 조상들은 역사 속에서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여성들이 찾아낸 자료는 장로니게(長老尼偈: Therī-gāthā)였다. 이 500여 편의 시 속에는 제1세대 여성불자, 즉 붓다의 남성제자
현재 서양에서 전개되고 있는 선은 여성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종교적인 깨달음 추구보다는 일상생활에 선의 통찰을 적용하고 활용하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불교에서는 문화적인 제약 때문에 출현하기 어려웠던 여성 주도의 선은 그 수행영역이 확장되고 있으며, 이런 추세는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로 확산될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 여성이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한 사실은 선 수행 패턴의 획기적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종교적 신앙보다는 사회변혁운동이라고도 볼 수 있는 서양선이 여성 주도적으로 진전되고 있는 양상을 적어본다.19
스즈키선이 순수체험과 신비주의를 지향하였고 또 이런 점이 서양의 종교적 보편주의의 희구와 부합된다는 맥마한의 통찰은 서양 지식인에게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보편주의의 열망은 세계의 거의 모든 종교가 들어와 있는 미국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선을 특정 종교, 역사, 전통과 분리시켜서, 오로지 순수체험과 동일시하면서, 모든 종교형태의 근원이라고 보는 견해는 보편적 종교를 갈망하던 20세기의 서양인에게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열망은 현대 미국의 종교적 다원주의뿐 아니라 여러 불교전통 간의 통합을 추구하는 불교
스즈키는 아시아의 선을 어떤 식으로 서양에 소개하여 서양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스즈키의 선 서적들은 널리 읽혔고 또 주요 사상가들에 의해 주석도 많이 산출되었다. 그중 두드러진 사례는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 스즈키의 ‘선불교 입문’(An Introduction to Zen Buddhism, 1934)에 쓴 30쪽짜리 서문인데 거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스즈키의 선불교 저작들은 살아있는 불교를 알게 해주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으니, 저자에게 아무리 감사해도 지나치지
소엔은 스즈키가 일리노이의 폴 캐러스 밑에서 공부하도록 주선해주고, 스즈키는 1897년 미국으로 건너가 캐러스의 조수로서 11년 동안 불교자료를 번역했다. 소엔이 스즈키의 영적인 안내자였다면, 캐러스는 스즈키의 지적인 멘토가 되어 그의 향후 삶과 저작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독일 대학의 철학박사이기도 했던 캐러스는 젊은 스즈키를 서양의 학문과 철학에 입문시켜 향후 선불교의 서양전파에 필요한 소양을 쌓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캐러스 아래서 장기간의 도제생활을 거치지 않았더라면 스즈키는 한 사람의 불교학자로서 이름을 떨쳤을지 모르지만
아시아의 선불교가 서양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이르러 주로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를 통해서였다. 스즈키는 일본의 불교학자이자 수많은 선서를 펴낸 저술가이기도 했다. 승려도 선사도 아니었고 재가 불교학자였던 스즈키는 빨리어, 산스크리트어, 중국어, 일본어로 된 불교 텍스트를 연구했으며,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를 구사하고 서양사상에도 박식했다. ‘이야기 미국불교사’(How the Swans Came to the Lake, 1981)에서 저자 릭 필즈는 스즈키를 중국선의 초조(初祖) 보리달마와
오늘날의 서양선은 어떠할까? 1960년대 이래로 서양인들은 아시아의 선사들이 도래하면서 비로소 아시아의 전통선에 엄격한 선 수행 문화가 존재함을 알게 되었고 또한 초기의 비트선이 방종한 무사선이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오늘날 서양선은 서양문화와 습합하면서 토착문화 특히 서양 민주주의, 사회참여, 페미니즘, 심리학 등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선이 불교라는 종교와 무관하게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수많은 사례는 ‘선과 윈드서핑’ ‘선과 국제관계’ ‘바보천치의 선 생활 가이드’ 등의 책 제목에서 ‘선과 초콜릿 만들기의 기술’ ‘선과
19세기 말 미국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던 일본의 선불교는 20세기 중엽에 이르러서 미국의 청년층을 매료시키면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2차 대전 후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방황하던 청년층은 비트세대라고 불린다. 당시 미국은 전후 세계에서 전례 없는 정치적 주도권을 차지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앵글로-프로테스탄티즘의 문화적 주도권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낡은 문화질서 기반에 균열이 심화되면서 젊은 작가, 예술가, 음악가, 자유분방한 떠돌이들은 전통적인 미국문화를 강력히 거부하면서 삶에 대한 새로운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