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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의 피해자 두 번 죽이기

법인사무실 여직원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법진 스님의 공판이 9월21일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렸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이후 3차 공판이었다. 증인으로 김영란 나무여성인권상담소장, 박우석 선학원 사무국장이 출석했다.

이번 공판에서 ‘성추행 혐의’를 벗고자 하는 법진 스님의 속내를 알 수 있었다. 본인의 행위가 일으킨 사건을 정치적이라며 왜곡하고 피해자는 행실이 올바르지 않은 여성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강했다. 이날 법진 스님과 변호인들은 성추행 피해자를 상담한 김 소장을 대상으로 집요하게 질문을 던졌다. 조계종과 선학원의 법인법 갈등을 알고 있는지, 피해자의 남성편력과 근무태도는 아는지 등을 물었다.

질문들을 종합하면 배경에 조계종이 있거나 업무 변경 등 지시에 따른 불만 표출로 ‘성추행 혐의’를 꺼내 고소했다는 뉘앙스가 강했다. 김 소장은 “모멸감도 느꼈다”며 “조계종과 선학원 갈등 관계 속에 나와 피해자가 장단에 춤추는 게 아니냐는 질문처럼 보였다”고 했다.

법진 스님이 기소된 사건은 정치적이거나 외부적 요인, 더구나 피해자의 행실 때문이 아니다. 피고소된 당사자인 스님의 자발적 행위에 따른 결과물이다. 본질은 고소인(피해자)과 피고소인(가해자) 사이에 발생했다는 ‘성추행 혐의’에 있다. 설사 법진 스님 측 주장대로 정치적이거나 피해자의 행실 탓이라도 ‘검은 손’을 뻗친 사람은 피고소인이다. 속초 출장길에서 손을 만졌고 대리인을 통해 합의금 1500만원을 제시한 것도 법진 스님이다. 아직 재판부 판단이 나오지 않았다. ‘성추행 혐의’가 입증되지 않더라도 피해자가 느꼈을 수치는 일어난 사실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 최호승 기자

 

3차 공판의 전체적 분위기는 정치적 의도와 부도덕한 행실로 본질을 덧씌워 피해자를 가해자로 매도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성평등불교연대 관계자도 “문제가 불거질 때부터 주장해온 내용들이다. 성추행 혐의보다 이외의 일들로 본질을 호도하는 전형적인 피해자 죽이기”라고 했다.

무명초 깎고 승복 입은 출가수행자로서, 선학원 이사장으로서 최소한 사과조차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법구경’의 ‘우암품’에는 “재에 덮인 불씨는 그대로 있듯 지어진 업이 당장에는 안 보이나 그늘에 숨어 있어 그를 따른다”고 했다. “부끄러움으로 옷을 삼으면 위없는 장엄”이라는 옛말도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스님이 새겨야 할 경책이다.

time@beopbo.com


[1409호 / 2017년 9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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