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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축제-하

부처님 가르침 전하는 불사에 비구·비구니 구분 없다

▲ 스리랑카 어느 지역에서나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스님들의 행렬.

싱가푸르(현재 인도 웨스트뱅갈주의 후글리 지역에 위치한 싱구르시에 해당) 왕국을 지배하던 싱가바후의 왕에게는 비자이싱하라는 이름을 가진 아들이 있었다. 비자이싱하는 기원전 534년 인도 최남단에 위치한 랑카섬을 침략해 정복하고 그 랑카섬에 싱갈이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그의 싱갈 왕국은 이후 조금씩 정치·문화적으로 안정을 되찾고 번영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싱갈 왕국은 후에 스리랑카에 불교를 도입하는 왕국으로 이어지며 스리랑카의 역사를 바꾸게 된다.

마힌드라·상가미트라 도래 후
불교, 생활의 일부로 녹아들어

오랜 역사 가진 비구니 교단
중국까지 전법 펼친 기록도

11세기 비구니 승가 단절 후
1996년 인도서 비구니계 받아
대승교단 계맥 전승에 부정적
여전히 교단 정식 인정 못 받아

비구니들 청정성 높이 평가돼
사회분위기 반전 기대 높아져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아쇼카 대왕이 인도를 통치하던 시절, 아쇼카의 두 자녀 중 한 명이었던 그의 딸 상가미트라와 아들 마힌드라는 기원전 260년경 불교를 더 널리 전파하고 깊게 교육시키고자 스리랑카로 여정을 떠난다. 마힌드라 왕자는 최초로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했고 그의 여동생인 상가미트라 공주는 인도의 불교 성지인 보드가야에서 소중하게 간직되던 보리수 일부를 스리랑카로 가져가 아누라다푸라 지역에 심었다. 또 스리랑카에 처음으로 비구니 제도를 도입해 비구니들만 거주하는 사원을 세우기도 했다.

싯다르타의 이모였던 마하프라자파티 공주와 싯다르타 친모의 죽음 이후 그를 정성껏 돌봐주었던 보모, 이 두 명은 인도에서 처음으로 비구니가 되었던 인물들로 기록되어있으며 실제로 부처님께서 그 둘을 직접 비구니로 임명하였다고 하니 비구니의 역사는 꽤 오래 전에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아야할 것 같다.   

▲ 아쇼카 대왕의 딸 상가미트라 공주가 인도에서 가져와 심은 보리수.

데바남피야 티사 왕은 아쇼카의 두 자녀들이 스리랑카로 와서 불교 전파에 힘을 쏟던 시절 스리랑카를 통치하던 인물이다. 데바남피야 티사 왕은 아쇼카 대왕의 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아쇼카의 두 자녀를 두 팔 벌려 진심으로 환영했다. 마힌드라 왕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스리랑카의 왕에게 인사를 올렸다. “저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그저 따르는 자들입니다. 부디 저희들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저희가 그 훌륭한 철학들을 이 곳에 전파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데바남피야 티사 왕은 학식과 인성이 높은 왕이었고 그들이 들려주는 부처님의 철학을 주의 깊게 들으며 점점 매혹되어갔다. 왕은 마힌드라 왕자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자가 되었고 그의 신하들도 모두 부처님의 말씀을 배우도록 했다. 이렇게 스리랑카의 불교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현재 스리랑카엔 약 1560만 불자들이 살고 있으며 이는 스리랑카 전체 인구의 무려 70.2%를 차지한다. 스리랑카는 일반적으로 불교 팔리어 경전을 바탕으로 설립된 소승불교의 핵심지로 여겨지고 있는 곳이다. 소승불교는 불교의 최종 목표인 열반에 오르는 바른 길로 팔정도를, 불교 근본 철학의 바탕으로 사제를 따르는 불교이다.

▲ 페라헤라가 열리는 스리랑카 캔디 시의 불치사 전경.

하지만 소승불교 특유의 금욕적이고 근엄한 이미지와 이해하기 어렵게만 설명된 불교 경전들에 대한 인상과는 달리 스리랑카 불교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가졌던 기존의 고정관념과는 다른 모습들에 놀라게 된다. 스리랑카 불자들의 사소한 일상 생활 하나 하나에서 우리는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불교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딱딱하고 어려운 경전을 읽고 배우며 복잡한 불교 의식이나 행사들을 따라야 하는 의무를 지닌 그들이지만, 불교는 스리랑카 불자들에게 종교이자 삶의 자연스러운 일상이기에 부담감 없이 따스하고 온화한 마음을 갖고 그들의 삶을 바친다.

에살라 페라헤라 축제의 전통 또한 불교를 삶으로 보는 스리랑카 불자들의 이러한 마음가짐 때문에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갈 수 있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불자들의 외부적 행위인 불교 예식과 관습들이 그들에게 강요되고 의무화될 때는 오래 이어질 수 없지만 일상 생활의 작은 순간까지 부처님의 말씀이 투영되어 그들의 마음 전체에 진심으로 받아질 때는 외부적 행위 조차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되며 전통이 되어 이어지게 될 것이다.

▲ 오랜 불교 역사를 품고 있는 아누라다푸라 시의 유적들.

스리랑카 불자들의 전통 의식은 사실 인도의 전통에서 기원된 것이 많다. 불교 행사들을 음력 날짜에 맞추어 개최하는 것이 그 중 하나다. 불교 의식이 있는 날을 스리랑카에서는 포야라고 부른다. 매해 가장 먼저 찾아오는 의식이자 가장 중요한 포야는 베삭, 즉 5월 보름달이 뜨는 날일 것이다. 이 날은 부처님의 탄생과 그의 깨달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두번 째 포야는 포손, 즉 6월 보름달이 뜨는 날로 이 날에는 아쇼카 대왕의 아들 마힌드라 왕자가 공식적으로 스리랑카 섬에 불교를 소개한 것을 기념한다. 이 날에는 마힌드라 왕자가 데바남피야 티사 왕에게 불교를 설법한 아누라다푸라에 많은 불자들이 모여서 스리랑카 섬에 불교가 도착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수많은 행렬을 펼친다. 또 아누라다푸라는 경전을 외우는 불자들로 가득 차게 된다. 그 외에도 매 년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부처님의 첫 설법을 축하하기 위해 혹은 부처님이 그의 어머니 마야 왕비의 뱃속에 잉태되는 날을 축하하기 위해, 또는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아비담마를 설법하신 것 등을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의식과 행사가 섬 곳곳에서 펼쳐진다.     

그 다음 축제가 바로 7월의 보름날에 열리는 에살라 페라헤라 축제다. 부처님 치아 사리의 도착을 기념하기 위해 캔디시와 불치사에서 펼쳐지는 이 축제는 국제적으로는 아마 스리랑카의 축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축제일 것이다. 전통 음악들과 장식된 코끼리 이미지로 상징되는 페라헤라 축제는 불자가 아닌 서양인들에게조차 평생 한번은 반드시 봐야 할 축제로 손꼽히고 있다.

스리랑카에는 약 2만2000여명의 스님들과 비구니들이 살고 있다. 스리랑카의 불교는 시암 니카야, 아마라푸라 니카야, 라만나 리카야 라고 불리는 세가지 작은 종파로 나뉘어져 있지만 사실 그들 사이에 구별이나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1980년 대 이후 스리랑카에는 비구니들의 숫자가 급증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스리랑카의 불교에서 비구니들의 목소리는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다. 스리랑카 불교 역사를 살펴보면 기원전 420년 한 그룹의 비구니들이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배를 타고 중국까지 항해를 갔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를 봐도 스리랑카 불교의 우먼 파워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일찍 시작되었던 것 같다. 아누라다푸라가 전성기를 맞이하던 때에는 그 곳에만 비구니들의 수가 1000명이 넘었다고도 전해진다. 1017년 남인도의 촐라 왕국이 스리랑카를 침략했고 이는 스리랑카 불교에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촐라 왕국의 침략자들은 스리랑카의 비구와 비구니들을 살해했고 그들은 도망을 가서 오랫동안 숨어 지내야만 했다. 그렇게 비구니들은 스리랑카에서 사라지게 됐다.

▲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국제불교세미나에 참석한 비구니들.

하지만 스리랑카에 불교가 다시 자리잡고 뿌리를 내리면서 비구니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해서 현재 그 수는 2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비구니협회가 1996년 인도에서 개최한 비구니 계맥 전수식에는 한국에서 온 비구니들과 더불어 스리랑카 출신의 비구니들의 다수가 참여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아쇼카 대왕의 딸 상가미트라 공주에 의해 창시되었던 스리랑카의 비구니 제도는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논쟁의 이슈로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스리랑카의 불자들은 몇몇 스님들이 지나치게 물욕이 강하다고 불평하며 검소하게 소박하게 지내는 비구니들을 칭찬한다. 하지만 큰 권력을 가진 몇몇 스님들은 현재 비구니 제도에 반기를 들고 있다. 대승불교 나라인 중국과 한국에서 이어지고 있는 제도인 비구니 제도를 소승불교의 나라인 스리랑카에 재도입한다는 것은 적정치 않다는 것이 스님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러한 주장은 계속 이어지진 못할 것 같다. 스리랑카의 비구니들의 모범적인 삶과 바른 목소리가 전국적으로 불자들에게 칭송받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유명한 인도의 현자 한 분이 말했다. “남자와 여자는 한 마리 새의 양 쪽 날개와도 같다. 새는 한쪽 날개만으로는 날아 오를 수 없다.” 비구들과 비구니들은 한 마리 새의 그 양 쪽 날개일 것이며 어찌 보면 대승불교와 소승불교 또한 한 마리 새의 양쪽 날개 일 것이다. 양쪽 날개의 공통목적은 하늘을 날아 오르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부처님의 훌륭하신 말씀들을 전세계 곳곳에 전파하는 일일 것이다. 

알랭 베르디에 저널리스트 yayavara@yahoo.com
 


[1409호 / 2017년 9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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