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배우고 닦아 설한 찬탄법문-상
81. 배우고 닦아 설한 찬탄법문-상
  •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 승인 2017.09.2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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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음미할 수 있는 찬탄은 포교를 견인합니다”

▲ 1956년 성운 대사의 염불 7일 정진. 재가 불자들과 함께 정진하는 젊은 대사의 모습이 이채롭다. 대만 불광산 제공

"찬탄함에 있어서 그 오묘함을 추구하여야 진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돌이켜 음미할 수 있는 찬탄법문에는 지혜가 함축되어 있고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 법문을 듣는 사람들은 일상에서 지혜를 실천하면서 살아갈 에너지를 갖게 됩니다. "

인생은 어느 정도는 남들의 비판이나 비방을 받기도 하고 좋은 말이나 칭찬을 듣기도 합니다. 또 우리 역시 남을 비방하기도 하고 좋은 말로 남을 칭찬하기도 하는데 대략 인간세상은 이러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언어는 쉽사리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말이 많으면 실수하게 마련이다”는 말과 같이 될 수 있어서 찬탄법문을 닦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50년 전 ‘수산불학원’을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학생과 강사 각각 수십 명이 각자 공부하고 강의하는 역할을 하면서 당시 80평 규모로 열악한 수산사의 환경과 부족함이 많은 생활 속에서도 사제 간에는 항상 즐겁게 지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가오슝 60병기 공장 부설병원장 ‘당일현(唐一玄)’ 교수는 저명한 불교학자이기에 학생들을 위해 ‘육조단경’과 ‘법화경’ 수업을 부탁드렸습니다. 당 교수는 불교저술이 아주 많았지만 저와는 관념과 스타일이 달라서 항상 저에 대해서는 칭찬보다 비판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번 당 교수는 학생들에게 “너희들 원장 스님은 어려운 일을 쉽게 처리한다”며 기쁜 듯이 말했습니다. 예전에 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부지런하다” “신심이 깊다” “책임감이 있다” “이기적이지 않고 공평하다” 등의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당연한 말인데도 사람들의 인사치레라는 생각에서 저는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 교수의 “힘든 일을 쉽게 처리한다”는 이 말은 저도 모르게 내가 정말 힘든 일을 쉽게 처리해내는가 하며 내심 기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가장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사람이든 남의 칭찬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찬탄법문이라 함은 요즈음 흔히 말하는 비위를 맞추는 것과 같지만 비위를 맞추는 것도 아주 좋은 일입니다. “황제마마 만세 만만세!”하면서 사람들이 외치는 것을 어느 황제가 싫어하겠습니까? 사람들로부터 김 회장님, 박 이사장님 하고 불리는 것을 어느 기업인이 싫어하겠습니까? 이러한 정상적인 호칭과 정상적인 찬탄은 인간관계를 긍정적으로 이끌 뿐 나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상투적으로 되어 버리면 예술적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당일현’ 교수의 말 속에서 찬탄법문을 배우고 닦아 남들을 기쁘게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 속에 시각장애를 가진 어느 예쁜 아가씨가 있었는데 한 청년이 이 아가씨를 좋아해 사귀고 싶어 했지만 아가씨는 자신에게 시각장애가 있어 결혼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도록 이 청년의 끊임없는 구애에 감동받은 아가씨는 마침내 “좋아요. 당신과 결혼하겠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청년은 기쁜 마음에 거울을 들고 와서 여자에게 주면서 “당신이 얼마나 예쁜지를 한 번 봐요.”라고 하면서 이렇게 칭찬하면 상대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가씨는 모욕을 받았다는 생각에 거울을 바로 바닥에 내팽개치면서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나를 이렇게 놀리다니 당신과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청년은 놀라서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내 마음에는 당신을 시각장애인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라고 하면서 얼른 사과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 자신을 시각장애인으로 대하지만 오직 이 남자만은 자신을 장애인으로 여기지 않았으니 이 남자에게 시집가지 않으면 누구한테 가겠는가하는 생각으로 여성은 마음을 바꿨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말 한마디는 이렇게 말하거나 저렇게 말함으로써 다른 판단을 내릴 근거가 되곤 합니다.

오늘날 가장 높은 경계라고 할 수 있는 선종에서의 교육은 ‘있는 그대로를 모두 말하지 않는 것’으로서, 한 걸음 물러나서 차선을 택하거나 동쪽을 가리키면서 서쪽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 뒤로 더 물러나 차선을 선택하고 책망 대신 격려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처음 불가(佛家)에 입문하여 일을 행하다보니 실수가 많은 사람을 ‘초참(初參)’이라 합니다. 오랫동안 공부하면서 닳은 사람을 ‘노피참(老皮參)’이라고 부르거나 사람이 ‘부끄러워 할 줄 모른다(不知?愧)’고 하거나 혹은 ‘고민이라는 것을 모른다(不知苦惱)’고 말하기도 합니다.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주는 이러한 말에는 경책과 함께 교훈적인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상대를 매우 민망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힘도 있습니다. 맑은 물과 같아서 사람의 나쁜 버릇을 씻어주게 됩니다.

찬탄법문 역시 ‘있는 그대로를 다 말하지 않는 선종’에서의 교육처럼 인간관계를 좋게 할 뿐만 아니라 말 속에는 한 단계 더욱 깊은 뜻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불교에서는 “신심이 좋으셔요” “아주 자비로우시네요” “아주 장엄하세요” “정성이 대단하세요” “보시를 잘 하시고 공덕을 잘 지으시네요” 등과 같이 칭찬 일색의 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빈승이 생각하기에 상투적인 찬탄의 말들은 그다지 사람들의 환희심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매번 불광산에서 신도대회를 열면 저는 대만 말을 잘 못하지만 ‘동사섭’의 마음으로 행사 중에 서툴게나마 한두 마디의 대만말로 대중들에게 웃음을 줍니다. 행사를 시작하면서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주인 여러분들께서 불광산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 일꾼들은 주인들께 보고를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말에 담긴 참 뜻은 사찰은 우리들 출가인의 것이 아니고 신도들의 보살핌 속에서 지어진 것이니 그들이 당연히 주인이고 우리는 단지 봉사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출가자의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를 낮추면서 불법을 널리 펼쳐서 중생을 이롭게 하고 신도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면 그 사람은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람을 찬탄할 때 말은 반드시 분명하게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20여년 전 대만 중부지역 웬린(員林)에 사는 ‘뢰의명(賴義明)’ 거사는 도량으로 사용하도록 건물을 불광산에 기증하고 아들을 불광산에서 출가 시켰습니다. 어느 하루 우연히 그 거사를 만나게 된 저는 과거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고 불교를 펼치실 수 있도록 수달다 장자가 기원정사를 내어놓았던 생각이 문뜩 떠올라 “우리들의 수달다 장자께서 오셨네요.”라고 하였습니다. 뢰 거사는 겸손하고 본분을 지킬 줄 하는 사람이지만 저의 이 말을 듣고 수십 년 동안이나 기뻐했다고 하는데 수달다 장자와 비교가 되었다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최근 각배(覺培) 스님은 네팔 지진재난의 구호지원 때문에 밤낮없이 바쁘면서 한 밤중 2, 3시에도 국제전화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화를 걸어서 위로를 해주려고 생각했는데 만약 제가 “수고가 많다, 신심이 대단하구나”라고 한다면 이는 흔히 듣는 말이기에 제가 그런 말을 하던, 하지 않던지 간에 별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각배야! 너는 총통선거에 나가는 것이 좋겠다. 대만 총통은 너 같은 사람이 해야 돼”라고 하였고 제자는 이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면서 “은사 스님, 무슨 말씀이세요.”라며 즐거워했습니다. 저는 이런 것이 칭찬의 예술이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오묘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예를 들면 남경대학의 ‘뢰영해(賴永海)’ 교수는 20여년 전 불광산과 힘을 합쳐 300만 글자의 ‘중국불교백과총서’를 출판하였으며 오랫동안 줄곧 우리들의 인간불교 이념을 널리 펼치는 것을 지지해 왔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뢰 교수는 ‘우리와 함께 고난을 겪은 혁명적 정감을 갖고 있는 사이’라고 설명해 왔는데 이 말이 만약 뢰 교수 귀에 전해진다면 틀림없이 아주 공감할 것입니다. 무정한 세월과 냉담한 인간세상에서 즐거움과 고난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어느날 저는 “우리는 20여년간 다져온 친분인데 정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라고 강소성종교국 ‘옹진진(翁振進)’ 전임국장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제 말 속의 진정한 정을 느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사람을 사귀고 정을 쌓는 것은 사람과 사람 간에 가장 소중하다고 할 수 있고 칭찬할만 하지 않을까요?

소비자문교기금회(消費者文敎基金會) 창설자 ‘자송림(紫松林)’ 교수는 저와 수십 년간 자주 왕래하고 있는데 소비자들을 위해 정의를 펼치고 있는 기금회에서는 환경보호, 장애인교육, 공공이익 부분에서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선행풍토를 이끌고 있는 사람이기에 저는 항상 자 교수를 ‘대만의 양심’이라고 부르며 칭송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가오슝현(高雄縣)의 현장(縣長) 여진월영(余陳月瑛) 여사와 현 가오슝시장 진국(陳菊) 여사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마조 할머니’(?祖 : 대만 민간에서 널리 신봉하는 도교 여신. 역자 주)라고 부르면서 고통과 어려움에서 구해주고자 민중을 위해 봉사하는 분들로 비유하였습니다. 세간 사람으로부터 널리 추앙받는 마조 신(神)에 비유하였으니 가장 큰 찬탄이 아닐까요? 저를 ‘살아있는 부처님’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제가 그 사람이 말하는 것과 같은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단지 찬탄하는 남들의 호의를 실망시킬 수 없었기에 ‘부처님께서 행하신대로 행하고자’하였고 ‘부처님께서 하신 일을 하고자’ 더욱 더 자신을 경책하면서 부처님을 닮으려고 하였습니다.    

불광산의 ‘소벽하’ 사고(師姑 : 결혼하지 않고 채식하며 평생 불교를 위해서 기여하고자 서원한 여성 입실제자의 호칭. 역자 주)는 벌써 70세가 넘었고 몸이 뚱뚱해졌지만 예전에 우리들은 그녀에게 미스차이나에 출전하라고 권했었습니다. 이 말은 50년 전에 했던 말이지만 아마도 그분은 마음속으로 “예전에 다들 나한테 미스차이나에 나가라고 할 정도로 예뻤었는지를 너희들은 알아야 해”라면서 지금까지도 즐겁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찬탄은 기술이 있어야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되새길 수 있는 찬탄이어야 상투적이거나 진부하지 않고 지혜와 깊은 의미가 담기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불교가정으로 자선에도 열심인 가족들을 저는 ‘삼호(三好) 집안’이라고 불러주면서 그 집에는 갈등이나 다툼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제가 쓴 일필자 붓글씨에 “당신이 있어 정말 좋습니다(有??好)” “정과 의리가 있다(有情有義)” “인자한 마음과 덕목(仁心仁德)” “책향기가 있는 집(書香之家)” “나는 부처입니다(我是佛)” 등 찬탄의 내용을 담은 글씨는 소장하려는 사람들이 가장 많습니다. 왜 일까요? 그것은 누구나 이러한 칭찬을 자신이 가장 감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선물하여 소장하게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자비로운 사람을 보고 우리는 그 사람은 아주 자비하다고 말할 것 없이 “그 분은 우리들의 관세음보살입니다.”라고 말하고 아주 지혜가 있는 사람에게 우리는 아주 똑똑한 사람이라고 할 것 없이 “저분은 우리들의 문수사리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이 직접적인 칭찬이 아니라 비유일 뿐이지만 불법을 아는 사람에게는 마음속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말 속에서 칭찬하고자 하는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됩니다. 저는 이런 것이 바로 칭찬의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409호 / 2017년 9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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