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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내가 글을 쓰는 이유

기자명 조정육

해답은 포기하지 않을때 섬광처럼 찾아온다

▲ 허진, ‘유목동물+인간-문명’, 2017년, 130×162cm,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 : 어떤 작품을 볼 때 처음부터 이해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랜 시간 동안 작가가 고민하고 천착해온 주제를 한 화면에 압축해 놓은 회화작품은 더욱 그렇다. 이해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섬광처럼 해답이 찾아올 때가 있다. 공부하는 사람은 그 희열의 시간을 위해 긴 어둠을 견뎌내는지도 모른다. 경전 공부도 마찬가지다.

내가 글을 쓴다고 하면 정말 멋있다고 응답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글쓰기가 매우 고상한 일이거나 낭만적인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워낙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얘기를 듣다 보니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나는 왜 글을 쓸까. 글은 나에게 무엇일까. 오랜 시간 동안 생각하다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의문점
공부하다 보니 어느 순간 해결
이해 안 되더라도 포기 않으면
긴 어둠의 끝서 희열 만나게 돼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생계를 위해서다. 나는 신문사나 잡지사 같은 직장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 신분이지만 생계형 작가다. 생계형으로 글을 쓰다 보니 하는 일은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업무강도가 세고 고된 편이다. 한 달에 쓰는 원고는 대략 다섯 편에서 열 편 정도 된다. 때로는 열 편이 넘어갈 때도 있다. 원고 한 편에 원고 매수가 대략 십오 매 정도이니 한 달에 칠십 매에서 백 매 정도 쓰는 셈이다. 이렇게 고정된 원고 외에도 가끔씩 장문의 평론을 쓸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신경이 바짝 곤두서서 곁에 있는 사람이 긴장할 만큼 예민한 상태가 된다.

연재하는 글이나 잡지사에서 청탁받는 글은 항상 원고마감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형식으로든  정해진 기한 내에 정해진 분량을 넘겨야 하는 글의 속성상 마감에 대한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그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바로 내가 생계를 위해 글을 쓴다는 사실이다. 만약 나의 글쓰기에 먹고 사는 문제가 결부되지 않았더라면 그 많은 양의 글쓰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황지우의 시 ‘거룩한 식사’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몸에 한 세상 떠 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내가 생계형 필자로 글을 쓸 때 글쓰기는 멋있는 것도 멋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저 몸에 한 세상 떠 넣어주는 거룩함을 위한 돈벌이일 뿐이다. 그러니 눈물겹게 고맙고 감사한 돈벌이다. 내가 쓴 글로 원고료를 받아 나와 우리 가족의 몸에 한 세상 떠 넣어주고 때로는 가까이 있는 이웃에게도 숟가락을 내밀 수 있게 해주는 일이니 어찌 눈물겹지 않겠는가.

나와 가족의 몸에 한 세상 떠 넣어주는 일이니만큼 글은 함부로 쓸 수가 없다. 더구나 프리랜서는 오로지 자기 이름 하나 걸고 일을 하는 사람이다. 만약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병풍이 되어줄 회사나 상사도 없으니 자기가 쓴 글은 자신이 온전하게 책임져야 한다. 이름을 지켜내는 것이 곧 나와 가족의 몸에 한 세상 떠 넣어주는 일이다. 그 중압감이 만만치가 않다. 그 중압감을 견뎌낼 수 있게 해 주는 안전장치가 집안일이다. 나는 주로 집에서 글을 쓴다. 부득이하게 집을 떠나야 할 경우에는 여관방에 앉아 글을 쓸 때도 있지만 주로 작업하는 공간은 집이다. 나는 집에서 글을 쓰다 막히면 일어서서 집안일을 한다.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한다. 집은 생활공간이다. 언제나 할 일이 그득한 곳이 집이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이 집안일이다.

한때는 내가 생계를 위해 돈을 벌면서 가사노동의 무게까지 견뎌야 하는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집안일은 나의 건강을 위해 운동 차원에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만약 내가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글만 썼다면 나는 진즉에 쓰러졌을 것이다. 나는 타고난 천재도 아니고 글재주가 뛰어난 사람도 아니다.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수없이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겨우겨우 한 편을 완성한다. 당연히 몇 시간 만에 끝내는 글은 없다. 만약 집안일이 없다면 컴퓨터 앞에 앉아 몸이 굳어버릴 정도로 서너 시간은 꼼짝하지 않고 글을 써야 한다. 그런데 오로지 글만 쓰면서 몸이 굳어버릴 불상사를 집안일이 막아준다. 몸에 한 세상 떠 넣어주는 거룩함도 건강을 지켜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에게 집안일은 더 이상 노동이 아니라 소중한 운동이다.

내가 글을 쓰는 두 번째 이유는 공부를 위해서다. 얼마 전에 청탁받은 원고의 주제가 호피(虎皮)였다. 호랑이 가죽에 대한 원고였다. 호랑이 그림은 평소에도 관심이 많아 자주 들여다보던 주제였다. 호랑이는 백수(百獸)의 왕으로 단군신화에 등장할 만큼 오랜 옛날부터 우리네 삶과 함께 했다. 한반도 산야를 주름잡고 다니던 호랑이는 신석기시대의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서부터 조선 말기의 민화까지 지속적으로 그림의 소재로 등장했다. 당연히 훌륭한 호랑이 그림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런데 호랑이 그림이 아니라 호랑이 가죽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했다. 그래서 호랑이에 관한 논문은 물론 ‘조선왕조실록’과 문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호랑이는 무(武)를 상징하여 조선시대에 무관(武官)은 호랑이를 흉배(胸背)로 붙였다. 그런데 공신(功臣)들이 앉는 의자에는 문관과 무관을 구분하지 않고 공통적으로 호피를 깔았다. 양반 관리들이 탄 가마에도 호피를 깔았다. 이런 깔개나 자리를 문인(文茵)이라 한다.(새롭게 배운 지식이다.) 호피는 혼례식 때 잡귀와 액운을 물리칠 목적으로 신부의 가마 위에도 덮었다.(이 사실 역시 자료를 찾으면서 처음 알았다.) 그런데 호피를 검색어로 문헌을 뒤지는 도중 계속해서 ‘고비(皐比)’라는 단어가 겹쳤다. 호피와 고비가 어떤 연관이 있을까 궁금해서 계속 자료를 찾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고비가 ‘스승이 학문을 강론할 때 깔고 앉는 자리(師席)’ 즉 ‘강석(講席)’을 일컫는다는 내용이었다. 강석의 유래는 송(宋)나라 때 장재(張載)가 호피를 깔고 앉아 ‘주역’을 강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나는 고비가 스승의 자리라는 사실을 알고 무릎을 쳤다. 그동안 박사논문을 쓰면서 풀리지 않던 의문이 비로소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에 그려진 공자(孔子) 그림에는 공자가 앉는 자리에 호피방석이 등장한다. 화가들이 인물을 그릴 때는 복장이나 지물 등 그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그리지 않는 법인데 공자와 호피방석 사이의 연관성을 찾지 못해 고심했었다. 그런데 호피 원고를 쓰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그 연관성을 알게 되었다. 생계를 위해 글 쓰는 삶의 팍팍함을 보상하기라도 하듯 주어진 기쁨이다. 이런 소득은 원고를 쓰기 위해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얻은 보너스라고 할 수 있다. 오직 공부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고 공부하는 이유다. 부처님 공부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409호 / 2017년 9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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