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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일타 스님과 삼여자(三餘子)

기자명 성원 스님

생각과 시간과 하는 일에 여유를 갖다

 
가을이다. 가을이 완연하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바다 빛이 그렇고, 하늘빛이 그렇고, 먼 곳에서 달려와 우리들에게 계절의 변화를 전하려는 청량하기 이를 대 없는 가을바람이 그렇다. 바람과 함께 우리들의 바람 또한 그렇다.

삼여자는 세가지 여유에 관한
일타 큰스님의 일관된 가르침
이번 가을부터 한발 물러서서
하루일과와 계절 찬찬히 보길

계절의 변화는 문득 어느 날 오는 것 같지만 조금만 고요히 살펴보면 계절은 온 몸으로 자신의 소식을 매일매일 조금씩 전하고 있었나보다. 어찌 보면 우리들 삶의 황혼도 갑자기 다가온다고 하지만 그 황혼의 빛이 올 때는 벌써 무수한 징후가 먼저 나타나기 마련이다.

일타 대종사께서는 염라대왕이 출몰하려하니 저승사자들이 먼저 알고 검은 옷, 흰옷을 입고 주위를 감싼다고 하셨다. 눈이 밝아 저승사자를 능히 볼 수 있다면 우리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삶의 어느 날은 가을처럼 문득 다가와 우리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작은 징후에서도 천하의 대지에 가을이 가득 차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잘 알고 대비하듯이 인생의 황혼기와 마지막 날이 오리라는 것을 잘 알고 대비하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 아니겠는가!

늘 계절은 우리 곁으로 살그머니 다가와 버린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보면서 계절을 탓하기 전에 부질없는 세상사에 너무 몰입해 사는 게 아닐까 반성해본다.

언제나 시간으로부터 여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노스님께서는 삼여자(三餘子)라고 자호를 정하고 많은 글의 말미에 쓰셨다. 어느 날 그 뜻을 물어보니 세 가지 여유란 생각의 여유, 시간의 여유, 하는 일의 여유라고 말씀해 주셨다. 요즘 페이스북에 삼여자의 뜻을 달리 설명한 글들이 자꾸 올라오는 것을 봤는데 참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머무는 요사에 달아내어 만든 차실의 이름을 삼여다실(三餘茶室)로 정하고 작은 현판도 달아 두었다. 평소 스님의 글을 마음에 새겨두고 싶어 그렇게나마 해보았지만 생각과, 시간과, 하는 일에 여유를 가진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느끼는데 그치고 만 것 만 같다. 진정 여유로운 삶의 자세를 가지고 넉넉히 살아가는 방법을 깨우쳐야 할 것 같다.

이번 가을부터는 한발 물러선 자리에서 찬찬히 계절과 하루의 일과를 바라보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정말 삶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살지 못한다면 생의 마지막 순간은 놀랄 정도로 갑자기 우리들 앞에 나타나지 않을까 염려하며.

늘 타인과 세상의 일에 쫓기며 살아가는 모습이 한발 물러나 바라보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잘 알게 되는 것 같다.

어린아이들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한데 요즘 아이들은 핸드폰에 몰입하며 자신들이 꼭 해야 될 숙제마저 할 시간이 없다고 하니 우리들의 옛적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들은 훗날 성인이 될 때 우리들보다 삶의 여유를 더 잃고 헤매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내가 지금 어린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그들은 또 그들만의 고민이 있을 것이고,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여유를 잃어가고 있는 삶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세상을 향해서 여유로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출가 사문으로서 뿐만 아니라 존경하는 큰스님의 자호를 빌려 명칭 한 삼여다실의 주인노릇을 하며산다는 일이 얼마나 부끄럽겠는가! 이 가을에는 부디 가을보다 조금 더 여유롭게 살아야겠다.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409호 / 2017년 9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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