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김일용
30. 김일용
  • 임연숙
  • 승인 2017.09.2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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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형상으로 전하는 인간 존엄

▲ ‘날숨, 들숨’, 50×60×90cm, 합성수지, 2000년.

몸으로 하는 말. 요즘은 허공을 떠다니는 말들을 들으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이고, 어디까지 진정성을 갖고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스러울 때가 많다. 복잡한 생각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이성적, 감성적 판단을 거쳐 나오는 표현이 말이기에 때로는 진실이 왜곡되거나 내 마음과는 다른 표현이 툭 나가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그래서 말로 하는 언어가 아니라 몸으로, 얼굴 표정을 통해 마음으로 느끼는 그대로가 더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각기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
삶의 기록 담긴 몸으로 표현
라이프캐스팅으로 무게 덜어


우리 미술, 그 중에서도 전통미술에서 조각이라는 장르는 인체를 중심으로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기념비화 한 그리스 미술로 대변되는 서양미술과는 비중이 다르다. 조각의 재질이 되는 화강암이 단단하기도 하지만 기술과 힘을 필요로 하는 조각을 우리의 여건에서 서양처럼 웅대하게 펼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지 못했다는 환경적 요인과 미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김일용의 ‘날숨, 들숨’은 깊은 사색에 잠긴 반가가유상의 모습을 연상한다. 왼쪽다리는 내리고 오른쪽 다리를 올린 채 턱을 괸 모습은 삶을 관조하는 모습이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하는 일이라는 것이 몸을 움직이기 보다는 머리를 쓰는 게 대부분이다. 학문 연구로 머리를 쓰는 것과는 다른 이런저런 일들을 닥치는 대로 처리하다보면 오후 끝 무렵엔 머리가 복잡해진다. 거기에 이런저런 생활적인 일까지 더해 생각은 더욱 복잡해진다. 반가사유상처럼 사색의 시간이 필요한 타이밍이다.

조각이라고 하면 흔히 물성을 연상하게 된다. 무게감과 덩어리로 존재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말이다. 라이프캐스팅 기법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마치 종이처럼 얇디얇은 존재의 가벼움을 연상시킨다. 반가사유상의 모습을 한 여성의 몸이지만 중성의 이미지처럼 육감적인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모든 형태가 온전하지 않고, 마치 바람에 흩어져 없어진 것처럼 머리도, 턱을 괴었을 것 같은 팔도 없다. 그리스 조각처럼 완벽한 비례의 인체는 아니지만, 또한 아니기 때문에 물성으로 조각 작품의 감탄을 얻기보다는 보는 이에게 질문과 사유를 던진다.

라이프캐스팅 기법은 실제의 모델에게 포즈를 잡게 하고 석고를 부어 떠내는 작업과정을 거친다. 어떤 모델을 보고 연상하게 되는 이미지가 있고 그에 따라 작품의 포즈가 달라질 터인데, 아마도 이 몸의 주인공은 사색의 여유가 있는 모습일 거라 상상해 본다. 반가사유상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기 전 태자였을 때 고뇌에 찬 모습에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특히 미륵신앙이 성행했던 삼국시대 유물에서 발견되었기에 미륵신앙과 연관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일용 작가는 주로 ‘몸’을 주제로 작품을 다루는 작가다.

“신체는 유사하면서도 각기 다른 개인성을 갖고 있다. 마치 사람들의 얼굴에서 저마다 다른 인생경험을 읽을 수 있듯이 몸 또한 개개인의 인생을 담고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중략- 내가 하는 라이프캐스팅 작업은 이런 각기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다. 개인의 삶의 무게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몸은 나의 끝없는 관심사고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소재이다.”(작업노트 중에서 발췌)

작가의 말처럼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해 개개의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로 작품은 이어진다. 작가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작가의 모델이 되는 대상은 다양하다. 마르고 늘씬한 몸을 비롯해 보통수준 보다 훨씬 크고 듬직한 여성의 몸, 남성의 몸, 가족의 몸, 그냥 있는 그대로를 떠내기도 하고 부분을 떠내기도 한다. 그리고 다 만들어진 작품을 조각내어 새로운 조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가 허공을 떠도는 가벼운 말로 ‘죽었다’ ‘살았다’ 하는 세상에서 몸의 언어는 보다 무겁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몸의 형상을 통해 삶을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 볼 때가 아닌가 싶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전시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09호 / 2017년 9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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