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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배우고 닦아 설한 찬탄법문-하

“찬탄 한마디가 세상을 구하고 서로를 따사롭게 만듭니다”

▲ 성운대사는 평소 찬탄의 한마디가 사람을 구하고 세상을 구한다고 강조한다. 대만 불광산 제공

"찬탄의 말은 쉬우면서도 가슴에 와 닿습니다. “좌선하는 모습이 부처님 같습니다” “걸음걸이가 마치 바람이 지나는 것 같습니다” “그 위의가 마치 소나무와 같군요” 등과 같이 문학적인 비유의 말은 진부하지 않으면서도 공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수십 년의 경험 속에서 저는 사람을 칭찬함에 있어서 적절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들거나 건성으로 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상대로 하여금 조롱당했다고 느끼게 된다면 말하지 아니함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든다면 예전에 어떤 사람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구멍 일곱 개 가운데 여섯 구멍은 이미 통했네요”라고 말했는데 그 뜻은 당신은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주련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은 ‘정판교’(鄭板橋 : 청대의 유명한 서화가. 역자 주)는 ‘일이삼사오육칠(一二三四五六七) 충효인애예의렴(忠孝仁愛禮義廉)’이라고 글을 써 주었는데 이는 “치(恥 : 염치)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는 남을 욕하고 비꼬는 말로, 이를 보고 솔직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실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을 칭찬하려면 상대가 칭찬을 받을만한 조건을 확정해 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는 이 칭찬으로 인정을 받는 것 외에도 더욱 발전하려고 하는 원동력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어느 한번은 신도 ‘뢰유정’(賴維正) 선생이 무역으로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저는 ‘품패’(品牌 : 브랜드라는 의미. 역자 주)’라는 두 글자를 써서 주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무슨 뜻인지를 몰랐고 심지어는 제가 자신을 평가하는가 하는 오해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연히 한 작은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를 그 신도에게 해주면서 마음 속 궁금증을 풀어주었습니다.

어느 한 남자가 돈을 버는 사업을 하고 싶어서 남보다 앞선 생각으로 컨설팅 회사를 세웠지만 간판을 내걸고 두 달이 넘도록 누구하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느 하루 한 사람이 찾아왔지만 상대방의 누추한 차림새를 보면서 말투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성씨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으니 상대방이 “이씨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오셨나요?”라고 물으니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을지 도움을 받으려고요.”라고 다시 답했습니다.
“직업이 어떻게 되시는데요?”라고 묻자 “저는 걸인입니다”라고 답합니다.

이 대답을 들은 사업가는 무시하는 어투로 “걸인도 부자가 되고 싶나보죠?”라고 되물었습니다.

걸인 이씨는 사업가의 무시하는 말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사람들한테 돈을 구걸하는 게 걸인인데 당연히 부자도 되고 싶지 않겠어요”라고 다시 받아쳤습니다.

사업가는 이것도 컨설팅 회사의 첫 일거리라는 생각에서 더는 따지지 않고 걸인 이씨의 부탁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걸인 이씨에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중산공원 입구에 자리를 잡은 뒤 ‘인자하신 분들께서는 제가 생활할 수 있도록 5전만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작은 간판을 써서 놓으세요. 만약 누군가 1원을 주더라도 반드시 그 사람에게 5전을 거슬러주어야 합니다. 가령 2원을 주거나 더 많이 주더라도 당신은 절대 다 받으면 안 되고 끝까지 오직 5전만 받아야 합니다”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걸인 이씨는 받아들일 수 없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남들한테 구걸하는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겁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업가는 “그러면 당신은 돈을 벌 수 없어요. 돈을 벌려면 필히 ‘브랜드’가 있어야 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사업가의 한바탕 가르침이 있고 나서 걸인 이씨는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 떠나려 하였습니다. 이를 본 사업가는 “상담료는요?”라고 말하며 걸인 이씨를 불러 세웠습니다.

“거지한테 상담료가 어디 있겠어요? 나중에 돈을 벌면 갖다 드릴게요!”라며 당연한 듯 한 말투로 걸인 이씨가 말했습니다. 이씨의 그런 태도에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은 생각에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걸인 이씨는 사업가가 일러준 방법 그대로 사람들이 1원을 주더라고 기다리라고 하고 5전을 거슬러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게 이상해서 다시 5원을 시험 삼아 줘 보아도 걸인 이씨는 4원 5전을 거슬러 주었습니다. 전부 다 주는 거라고 사람들이 말해도 걸인은 안 된다면서 자기는 단지 5전만 받으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어떻게 5전만 받으려고 하는 거지가 있느냐며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와서 너도 나도 5전씩 주면서 이 걸인의 모습을 보려고 하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은 비 오는 어느 날, 걸인 이씨가 다시 이 컨설팅 회사를 찾아왔습니다. 사업가는 그가 온 것을 보고서 “왜 또 오셨나요?”라고 묻자 “상담료를 내려고 왔어요. 제가 돈을 좀 벌었거든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업가는 걸인 이씨가 제법 신용을 지키는 사람으로 정말 ‘브랜드’가 조금이나마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년이 지난  어느 날, 사업가는 공원 입구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곳에 있는 걸인은 이씨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방을 둘러보면서 입으로 “걸인 이씨! 걸인 이씨!”하고 나지막하게 불러 보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그 곳 입구에 앉아있던 걸인이 이를 듣고서 “제 사부님을 찾으시는 건가요?”라고 대답하였는데 “현재는 제자가 이어서 구걸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당신 사부님은요?”라는 사업가의 질문에 “사부님은 백화점에 가게를 열어서 현재 부자가 되셨어요. 그렇지만 이 자리는 브랜드가 있는 곳이고 지리적인 위치도 좋은 곳이라서 저한테 대신 이곳에서 구걸하라고 하셨어요.”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무슨 사업을 하던지 간에 이렇게 ‘브랜드’가 매우 중요하다고 ‘뢰유정’ 선생에게 일러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는 매우 기뻐하면서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면서 저에게 “‘품패’ 글자를 몇 장 더 써달라”고 청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기쁘게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든 물건이든 글자까지도 그 무엇이든 ‘브랜드’가 중요하고 절실합니다. ‘브랜드’의 중요함은 마치 사람을 칭찬하는 것과도 같은 것으로, 이 사람은 바른 사람이고 이 사람은 솔직한 사람이고 이 사람은 공정한 사람이며 이 사람은 그 어떤 브랜드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처럼 적절하기만 하면 찬탄법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 제불보살 가운데 찬탄법문을 수행하지 않은 경우가 없습니다. 시아본사 석가모니불과 미륵보살이 함께 수행하였지만 부처님께서 미륵보살보다 아홉 겁 일찍 성불하신 것은 어떤 연유일까요? 그것은 부처님께서 찬탄법문을 하나 더 수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天上天下無如佛 十方世界亦無比)”나 혹은 보현보살님의 “일자예경제불 이자칭찬여래(一者禮敬諸佛 二者稱讚如來)”, 심지어 아침저녁 예불에서 “아미타불신금색 상호광명무등윤(阿彌陀佛身金色 相好光明無等倫)”이라고 염송하며 48대 원력으로 중생을 제도하심을 찬탄하거나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면서 “대자대비구고구난 광대영감 관세음보살(大慈大悲救苦救難 廣大靈感 觀世音菩薩)”이라고 하고 ‘사대보살(四大菩薩)’의 비지원행(悲智願行) 역시 보살의 화현하신 형상에 대한 찬탄이 아닐까요? 그 의미를 깊이 새겨봐야 합니다.

당초 부처님께서 교화하실 때를 생각해보면 부처님께서는 바사닉 왕과 빔비사라 왕 등 왕궁 대신들에게 수행자의 초연한 모습을 의연하게 보여주셨지만 어느 정도는 그들을 찬탄해 주시어 ‘전륜성왕’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심지어 제자들 각자마다 공부에 치중하도록 하시어 이 제자는 설법이 제일이고 저 제자는 지계제일이며 ‘십대제자’ 각자마다 뛰어난 특징을 찾아 칭송했던 것입니다. 부처님도 제자들에게 칭찬을 하셨는데 하물며 우리들이 도반과 신도들과 우리에게 기여를 해주는 공덕주들에게 어찌 찬탄해 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한 사람이 만약 예술적인 찬탄의 멋진 말 백 마디를 생각해 낼 수 있다면 이 사람은 필히 성공할 것이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물론 “발심이 대단하세요” “공덕이 무량하십니다” 등 진부한 말은 아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좌선하는 모습이 부처님 같습니다” “걸음걸이가 마치 바람이 지나는 것 같습니다” “그 위의가 마치 소나무가 우뚝 서 있는 것 같아요”와 같은 말입니다. 저도 충성적으로 외호를 하는 신도는 ‘아비발치’(阿?跋致 : 불퇴전 보살)’라고 찬탄한 적 있는데 불퇴전의 정신을 가진 신도에 대해서 우리가 매우 감동하였다는 의미입니다.

‘링컨’이 미국대통령에 출마하기 이전에 주의원과 상원의원, 하원의원 경선을 하였지만 모두 실패하였는데 어떻게 미국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을까요? 그 것은 한마디 말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링컨’의 강한 경쟁자인 ‘더글라스’ 목사가 한 강연회에서 천당과 지옥의 가르침을 설교하면서 대중들 앞에서 ‘링컨’에게 어느 곳으로 갈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나는 단지 국회와 백악관으로 갈 것이오”라는 ‘링컨’의 대답에 자리에 있던 청중들은 열렬한 박수를 쳤고 링컨의 달변과 유머에 감복하였습니다. 이 말은 유명한 명언으로 여겨져 전 미국으로 알려졌고 민중들은 ‘링컨’을 백악관으로 보내주었습니다.

제가 ‘이란’에 있을 때로 기억하는데 어느 한 해군 군인이 저에게 라디오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저는 평소 라디오를 듣는 습관이 없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한밤중 문득 라디오를 켰는데 ‘케네디’가 암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그가 사망한지 몇 분 지나지 않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케네디’가 “개척자 정신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미국을 건설하자”는 공약으로 당선되었다는 신문 보도를 보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 말이 그리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미국인들은 역시 사상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발전하고자 새로운 것을 원했기에 새롭게 개척하는 세상을 갈망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이 미국인들의 입맛에 부합되어 ‘케네디’는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케네디’가 암살당한 그날 밤 저는 “새로운 세상이란 어떤 것인가”를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저는 새로운 불교운동의 실천을 더욱 열심히 펼치게 되었습니다.

여러 해 전 어떤 글에서 “언어는 햇살, 꽃송이, 맑은 물과도 같아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매우 쓸모가 있다고 마음 깊이 느껴져 마음 속에 담아두고 수시로 반성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서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매우 깊다는 생각이 갈수록 더해졌습니다. 경전에 “성내지 않는 얼굴이 공양이며 화내지 않는 입에서 오묘한 향기를 뿜는다(面上無瞋是供養 口裡無瞋出妙香)”라고 하였고 “좋은 말 한 마디는 삼동 추위에도 따듯하게 하고 악한 말은 사람을 다쳐서 6월에도 춥게 한다.(良言一句三冬暖 惡語傷人六月寒)”는 말이 있듯이 말 한마디를 적절하게 하여서 적절한 때에 뜻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 관건이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남의 의견을 잘 수용할 줄 아는구나” “사람들한테 아주 잘 하는구나”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도 자기 본분을 잘 지키는구나” “자비심이 있으니 틀림없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라고 하면서 자주 사람들을 찬탄합니다. 저는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찬탄이 사람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는 햇살이 될 뿐만 아니라 이 말이 근기에 맞는 설법으로, 계기를 주고 격려도 되며 축복과 유머까지 담게 되기를 항상 바라고 있습니다. 찬탄법문 역시 저의 한줄기 심향(心香) 공양입니다.

진정으로 찬탄은 예술적인 면을 필요로 합니다. 예를 들어 ‘선림보훈(禪林寶訓)’에 ‘주왕’(紂王), ‘유왕’(幽王) 같은 사람으로 불리면 좋아하지 않는 것은 그 왕들이 주색에 빠진 포악한 이미지와 같게 평가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백이숙제로 평가된다면 도리어 기뻐하는 것은 그들이 바른 길을 지키고자 수양산에서 굶어죽으면서 청렴결백한 도덕적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은 우리가 한 사람을 ‘악비’(岳飛)와 ‘문천상’(文天祥 : 두 주군을 섬기기를 거부하여 사형당한 남송의 정치인 : 역자 주)과 같은 사람이라고 하였다면 실패한 영웅일지라도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 인물이었기에 이 사람은 필히 절개가 있는 사람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비유의 말 속에서 우리는 이 사람이 도덕적인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지혜를 운용하여 적절하게 사람을 찬탄하는가는 이 사람의 수행의 예술에 달렸다고 하겠습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410호 / 2017년 10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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