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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월구천의 원한과 복수

은혜는 쉽게 잊고 원한은 골수에 사무친다

▲ 그림=근호

국경이 인접한 오나라와 월나라는 이익을 놓고 자주 충돌했다. 그러던 어느 때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 간에 전투가 벌어져 구천이 패배했다. 오부차에게 월구천은 자신의 아버지 합려를 죽게 한 원수였다. 그래서 그는 구천을 처단하려 했지만 구천은 오왕의 신하 백비에게 뇌물을 바쳐 자신을 변호하게 함으로써 목숨을 부지하는 조건으로 항복할 수 있었다.

오왕 부차와 전쟁서 패한 월왕 구천
말 기르는 치욕을 참아 낸 끝에
부차 죽이고 복수에도 결국 성공
‘원한은 오직 용서로만 풀어’ 교훈

하지만 그가 받아들인 항복 조건은 매우 비참했다. 구천은 자신의 아내와 함께 오왕 부차의 종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구천은 반드시 복수를 하리라는 일념으로 항복 조건을 수락했다. 신하 범려가 주군을 수종하겠다고 자청했으므로 세 사람은 적국으로 향했다.

오왕은 구천에게 말을 기르는 직책을 주어 선왕인 합려의 무덤가에 있는 석실에 살게 했다. 구천 등 세 사람은 석실에서 두 달간 머물렀는데, 구천은 오왕이 그곳을 방문하면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수종했다. 또 오왕이 행차를 할 때면 지극히 유순하고 공손한 태도로 아내와 함께 맨 앞에서 걸어갔다. 그런 구천을 보며 오나라 백성들은 손가락질하며 비웃었지만 구천은 가슴속에 사무친 원한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오왕은 구천을 살려주기는 했지만 그의 속내가 궁금했다. 그래서 몰래 사람을 보내어 구천의 평소 행실을 살펴보게 했는데 구천은 누가 볼 때나 보지 않을 때나 묵묵히 노역에만 충실할 뿐 결코 오왕을 원망하는 말은 일체 하지 않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마침내 오왕은 구천을 믿게 되었고 그런 오왕을 구천의 뇌물을 받은 대신 백비가 거들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구천의 본국 송환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그 일은 오왕이 병을 얻음으로써 여러 달 지연되었다. 구천을 수종하던 범려가 주군에게 말했다.

“제가 점을 쳐 보니 오왕은 아무아무 날에 완쾌하겠습니다. 주군께서는 오왕을 문병하고 그의 대변을 맛보십시오. 그런 다음 오왕의 안색을 살피면서 아무 날에 완쾌할 거라고 말하면 오왕은 감동하여 주군을 풀어 줄 것입니다.”
“한 나라를 다스리던 왕이었던 내가 어찌 남의 대변을 맛보겠는가?”
“옛날 주왕이 서백을 가두고 그의 아들 백읍고를 죽여서 삶은 고기를 내리자 서백은 아들의 고기를 먹었습니다. 크게 성공하는 사람은 작은 일을 사양치 않는 법입니다.”

구천은 범려의 계책에 따르기로 하고 그 날로 입궐해 오부차 앞에 엎드려 절했다. 그때 마침 오왕이 설사를 했다. 구천은 곧 내려가 변기에서 변을 찍어 맛보았다. 좌우가 모두 얼굴을 찌푸렸지만 구천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태연하게 오왕 앞에 꿇어앉아 말했다.

“경하 드립니다. 대왕의 병환은 임신일에 완쾌될 것입니다.”
“어떻게 아는가?”
“신이 맛본즉 대왕의 대변은 쓰고도 시었습니다. 이로써 알았나이다.”

오왕은 감탄해 마지않았다.

“참으로 갸륵하지 않은가! 누가 대변을 보고 나의 병세를 말한단 말인가?”

오왕이 백비를 돌아보며 물었다.

“경은 능히 대변을 맛볼 수 있겠소?”
“맛볼 수 없습니다.”
“경뿐 아니라 태자라도 이는 불가할 것이오.”

오왕 부차는 곧 월왕 구천 부부를 석실에서 편한 처소로 옮겨 주었을 뿐 아니라 임신일에 쾌차하면 귀국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구천은 재배하고 물러 나온 다음 전과 다름없이 행동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오왕의 병은 과연 구천이 예언한 날에 완쾌되었다. 오왕은 매우 기뻐하며 구천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자기 신하들에게는 공대케 했다. 더하여 그는 구천을 본국으로 송환시킬 것을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떠날 때 오왕이 구천에게 말했다.

“그대는 나의 은혜를 잊지 말라.”
“대왕께서 하늘같은 자비로움으로 저를 불쌍히 여겨 귀국케 하시니 저는 전심전력 보은 할 뿐입니다.”
오왕은 자못 자부심을 느끼며 구천을 바라보고 말하였다.
“군자는 한 마디로 일을 결정하는 법, 그대는 갈지어다!”

그리하여 구천은 마침내 원수의 손에서 풀려나게 되었지만 주도면밀한 그는 본심을 감추고 떠나기를 아쉬워하는 듯 한 태도를 보였다. 구천이 계속 눈물을 흘리며 머뭇거리자 오왕은 친히 구천을 수레에 오르게 하여 떠나보냈다.

본국으로 돌아와 왕위를 회복한 구천은 자신이 기거하는 곳에 쓸개를 달아놓고 식사를 할 때마다 그 맛을 보며 오왕에게 당한 치욕을 되새겼다. 그리고 수년 뒤, 다시 두 나라 간에 전쟁이 벌어져 이번에는 오왕 부차가 월왕 구천에게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부차가 구천에게 하소했다.

“제가 대대로 월나라를 섬기고자 합니다.”

월구천은 옛 정을 생각하여 오부차를 살려주고자 했으나 신하들이 극력 반대했다. 구천은 부차로 하여금 자살을 할 것을 명령했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억울한 일을 한 번도 당하지 않았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해탈한 성자일 것이다. 마음에 아무런 자취가 없는 사람이 아닌 이상 삶이라는 것 자체가 어쩔 수 없이 억울함을 느끼는 일이 일어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거꾸로 삶을 살아가는 동안 은혜를 입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고마움을 모르는 철면피일 것이다. 나쁜 의미에서 마음에 아무런 자취가 없는 사람인 사이코패스에 비견할 만한 그런 사람이 아닌 이상 우리는 사는 동안 누군가로부터 은혜를 입게 마련이다.

문제는 은혜는 쉽게 잊혀지고, 원한은 골수에 사무친다는 데 있다. 그래서 “머리털 검은 짐승은 은혜를 모른다”는 말과 “원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생겨났거니와 오부차와 월구천의 일화를 통해 우리는 그 두 가지를 모두 본다.

중요한 것은 원한으로써 원한을 갚은 경우 그 순환은 끝없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불교는 그 순환이 금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금생은 내생으로, 내생은 그 다음 생으로 이어지며 원한은 원한으로 파도치며 일어나게 된다고 경전은 말하고 있다.

그 사례 중 하나가 ‘법구경’ 5번 게송의 배경이 된 이야기이다. 금생에서 원한을 품은 두 여인이 생을 이어가며 고양이와 암탉, 표범과 암사슴, 여인과 야차로 번갈아 태어나며 원수를 갚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법구경’ 5번 게송이 설해졌던 것이다. 그 게송에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원한은 원한으로써 갚을 수 없나니, 오직 용서로써만 원한을 풀 수 있다.”고.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410호 / 2017년 10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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