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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조경기행 36. 자연 친화적 배치형식 정족산 전등사

기자명 홍광표

情이 절로 붙는 ‘섬 가람’

《전등본말사지》에는 전등사가 창건된 시기를 고구려 소수림왕 때로 적고 있으나 전등사가 본격적으로 역사의 무대에 출현하게 되는 것은 역시 고려왕실이 자신들의 운명을 강화도에 기대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겠다. 역사를 뒤돌아볼 때 강화도는 우리 민족이 어려울 때마다 찾았던 피난처이며, 한편으로는 민족의 성지로 가꾸어진 땅이다. 그러하니 어떠한 형태로든 이 섬에 반듯한 절 하나 짓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바로 그 절이 전등사인 것이다.


전등사는 특히 충렬왕의 정비인 정화궁주의 한을 달래기 위해 중국에서 가져온 송나라 대장경을 모셔두었던 곳이기도 하다. 원나라의 제국공주에게 님을 빼앗긴 궁주의 원한과 실망이 어느 정도였을 것인지 우리가 짐작이나 하겠는가마는 지금도 대웅보전 네 귀퉁이 보머리 사이에 끼워져 있는 나녀를 보면 우리네 백성들이 궁주가 처해있던 슬픈 사정을 모른 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다. 역시 그때에도 지금과 다름없이 우리 백성들은 약한 사람들 편에 설 줄 아는 착한 사람들이었던 모양이다.

전등사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절들과 마찬가지로 몇 안 되는 건물들이 자연환경에 적합한 규모로 들어서 있는 정붙이기 좋은 고찰이다. 최근에 요사로 쓰기 위해 새로 지은 적묵당 건물이 명부전 너머 남쪽 편에 들어서면서 사역이 확장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절을 찾는 사람들은 지난 날 그러했던 것처럼 누각 밑을 지나 대웅전 마당으로 들어서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전등사에 대해서 사람들이 느끼는 이미지는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오래된 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찬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멀리 날아갈 듯 서있는 누각이 있고 그 밑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바로 앞에 대웅보전이 반듯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전등사의 장면들은 여느사찰들의 그것과 비교할 때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누각을 지나 당도하게 되는마당이 옆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는 것은 전등사에서 찾을 수 있는 독특한 공간형식이다. 또한 그 마당의 한 단 위에 대웅보전, 향로각, 약사전, 명부전 건물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있는 배치 역시 다른 절과는 다른 형식이다. 이와 같이 마당을 길게 만들고 거기에 맞게 건물을 나란히 옆으로 배치한 것은 전등사 뒷산이 훼손됨이 없이 계속해서 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 조영자의 의도였을 것이다.

이러한 공간의 이용과 건물의 배치는 함부로 산을 자르고 파헤쳐서 사람들의 요구만을 충족시키는 오늘의 우리들에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지혜가 아닐 수 없다. 거기에다가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주불전인 대웅보전이 다른 건물들보다 한 걸음 불쑥 앞으로 나와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대웅전 건물의 높이를 옆에 있는 다른 건물들보다 높게 하고 치장을 다르게 한 것 역시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대목이다. 대웅전을 다른 건물과 상관지어 배치하고 건물의 형식을 달리한 것은 절에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대웅전을 우선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함은 물론 대웅보전이 가진 계층적 질서를 구체화하기 의도로 해석된다.

이렇듯 전등사는 자연환경과 친화적인 공간의 구성과 건물의 배치를 통해 자연이 가진 생태적 질서를 승화시키는 친환경적 조영원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절임은 물론 한편으로는 그러한 배치의 형식적 틀 속에서도 대웅보전이 가진 중심성과 위계성을 분명히 드러내 보이는 규범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우리나라 전통사찰의 전형 중의 전형이다.


홍광표 /동국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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