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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고럼바 부인의 침착성

“저는 당면한 사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 그림=근호

2001년 9월11일 화요일, 미국 뉴욕에 있는 세계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이슬람 과격분자들에 의해 폭파되어 5000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했을 때 루돌프 줄리아니는 뉴욕 시장이었다. 곧바로 사태 수습에 착수한 그는 현장에 머물며 사흘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열정적으로 시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했다.

화재로 아들 잃은 고럼바 부인
장례와 결혼식 의연하게 치러내
삶을 깊이 바라보는 지혜로부터
담연히 받아들이는 평정심 생겨

상황이 조금은 안정된 금요일, 1000만 명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는 뉴욕시 시장은 기자들을 만나 그동안의 경과에 대해 인터뷰를 가졌다. 그때 그는 시민들의 지원과 노고를 치하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용기가 남아 있습니다. 그 용기로써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가신 분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우리는 가신 분들의 삶까지 살아야만 합니다. 가신 분들은 가셨지만 오늘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새로운 한 쌍의 남녀가 사랑을 시작하고, 오늘도 새로운 부부가 탄생합니다. 저는 다가오는 일요일에 젊은 한 쌍의 결혼식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기자들은 아직은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 공직자가 비록 일요일이기는 하지만 개인을 위해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기자들은 시장에게 왜 그가 결혼식에 참석해야만 하는지를 물었고, 시장은 사정을 설명했다.

20일쯤 전인 8월28일, 줄리아니 시장은 마이클 고럼바라는 소방관이 화재를 진압하다가 죽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공무원이 시민을 위해 일하다가 희생될 경우 반드시 그를 찾아가겠다고 결심한 바 있었던 시장은 결심을 지키기 위해 곧 죽은 소방관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의 시신 안치소에는 소방관의 어머니 고럼바 부인이 도착해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녀의 침착하기 그지없는 행동이었다. 그녀는 두 시간 전에 아들을 잃은 어머니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의연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열 달 전에 남편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고럼바 부인은 시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친척들과 아들의 장례 절차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녀의 친척들은 간간히 흐느껴 울었고, 고럼바 부인은 그런 친척들을 위로했다. 겉으로만 보아서는 누가 아들을 잃은 쪽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때 한 친척이 고럼바 부인에게 “그럼 결혼식을 예정대로 하겠다는 거예요?”하고 물었고, 고럼바 부인은 “물론이에요.”하고 대답했다. 알고보니 고럼바 부인에게는 장성한 딸이 있었고, 그녀의 결혼식이 다음 달 16일로 잡혀 있었다. 하지만 오빠가 죽은 직후에 결혼식이라니? 그런데도 고럼바 부인은 딸의 결혼식을 예정대로 치르겠노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줄리아니 시장은 감탄해 마지않았다. 아들이 죽은 지 불과 두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여느 어머니 같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 때문에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대었을 텐데 고럼바 부인은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것일까.

시장이 고럼바 부인에게 물어보았다.

“부인의 침착성과 용기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대체 그런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고럼바 부인이 대답했다.

“저는 당면해 있는 사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 일에 집중하여 슬픔을 달래기 위해 힘을 다하고 있고, 딸의 결혼에 대해서도 딸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기 위해 힘을 다할 것입니다.”

고럼바 부인이 다시 말했다.

“인생에는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습니다. 이 둘은 늘 함께 다닙니다. 우리는 이들과 친해져야만 합니다. 저는 기쁨과 행복에 대해서는 그것을 친구로 알고 즐겁게 맞아들입니다. 그렇지만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도 그것을 원수로 보아 내치려 하기보다는 친구로 알고 담담히 맞이하고자 합니다. 저는 기쁨에 대해 정직하고 충실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여 왔고, 슬픔에 대해서도 정직하고 충실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튿날, 줄리아니 시장은 죽은 소방관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이 진행되기 전, 고럼바 부인이 딸을 데리고 시장에게 다가와 죽은 당신의 남편을 대신해 딸의 결혼식장에서 딸의 아버지 역할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고, 시장은 영광스럽게 여기겠노라며 그녀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며칠 후인 9월16일 일요일, 부루클린의 개리슨 비치에 있는 한 교회에서 고럼바 부인의 딸의 결혼식이 열렸다. 그날 아침 결혼식장에 도착한 줄리아니 시장은 깜짝 놀랐다. 신문 기사를 통해 사정을 알게 된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 주변에 모여 있었던 것이다.

초대를 받지 않은 사람들, 그러나 기쁜 마음으로 결혼식장에 참석한 그 사람들은 이름 모를 뉴욕의 시민들이었다. 그들은 시민들을 위해 일하다가 죽은 젊은 소방관 마이클 고럼바의 희생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아들을 잃은 고럼바 부인을 위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치며 새 부부의 탄생을 축하해주었다.

행복은 감정이고, 감정은 변화무쌍하다. 따라서 감정으로서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물론 잠깐의 행복에 도달할 수는 있을 테지만 감정이 변화무쌍한 이상 그 행복은 머지 않아 행복 아닌 것으로 바뀌고 말 것이기 때문에 그의 행복은 견고하지도 영원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할까. 요점은 모든 감정에 대해 담연해지는 것이다. 행복이 찾아왔을 때는 이 행복이 머지 않아 변화되리라는 것을 기억하여 행복에 취하지 말고, 불행이 찾아왔을 때에도 이 불행이 머지 않아 변화되리라는 것을 기억하여 불행에 번민하지 않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평등심이며, 감정에 영향받지 않는 이 평등심은 삶을 깊이있게 들여다보는 통찰지혜로부터 생긴다. 통찰지혜에 의해 담연침착하게 제어되는 감정, 그리하여 수많은 감정이 들고나더라도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중심, 그것이 불교가 말하는 평등심, 즉 우페카(upeka)인 것이다.

고럼바 부인은 굳건한 침착함에 바탕을 둔 용기있는 행동을 통해 삶의 가장 깊은 경계가 감정을 초월해 있다는 것과 그 마음을 가능케 하는 것은 삶에 대한 심오한 통찰지혜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점에서 그녀는 넓은 의미의 불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불교인이라든가 기독교인이라든가 하는 것은 단지 이름일 뿐, 그 진정한 알속은 그 안에 지혜로운 통찰이 있는가 없는가, 그럼으로써 해탈의 경지를 누리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인 것이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411호 / 2017년 10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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