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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불자가 되었는가?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누구나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의욕적으로 실천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고 또 자신이 아무리 무능해도 초심만 지킬 수 있다면, 소망한 바를 언젠가는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 초심을 지켜내지 못한다. 그것이 자신의 기존 삶의 방식과 다를 때에는 초심을 더욱 쉽게 포기해 버린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초심이 곧 궁극의 깨달음이다. 깨달음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해석을 요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윤리적 실천적 의미는 누구나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오늘날 한국불교계 지도자들이 망각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불자들마다 고유한 발심의 직접적인 계기들이 있다. 불자가 되기로 한 데에는 세속적 욕망과 세속적 삶의 원리에 대한 염리(厭離)의 마음이 공통적으로 있었을 터인데, 출가와 재가를 떠나서 오늘날 한국의 불자들 대부분이 그 염리의 마음을 버린 것으로 보인다. 불교계 지도자들이 특히 그렇게 보인다.

한국사회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뜨겁게 욕망으로 들끓는 곳인데, 한국불교계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 불교계에서 욕망의 충돌로 가장 소란스런 곳이 한국불교계다. 명상으로 유명한 불교계가 있고, 자비공덕으로 유명한 불교계가 있고, 기도로 유명한 불교계가 있고, 거대 불사로 유명한 불교계가 있는데, 한국은 소란으로 유명할 것 같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통틀어 그간 한국 현대불교사가 남긴 가장 선명한 이미지는 분쟁이다. 그 이면에는 욕망의 충돌이 깔려 있다. 불사(佛事)를 내세우고, 정의를 내세우고, 교화를 내세우지만, 그 동기는 욕망이다. 아무리 서원심이라고 하고, 청정심의 발로라 하고, 자비심의 발로라 하지만, 그 모든 마음의 밑바탕에는 욕망이 깔려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욕망은 불교인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다. 욕망을 밑바탕에 두고서 불교를 실천할 수는 없다. 욕망은 염오(染汚)의 마음에서 비롯되고, 염오의 마음은 무명의 결과이자 번뇌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불사를 못할 수도 있고, 교화를 못할 수도 있고, 정의를 바로세우지 못할 수도 있지만, 욕망에 사로잡혀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 한국 불교계의 지도자들은 욕망의 마음으로 불사를 하고, 정의를 실천하고, 대중을 교화하려 하고 있다.

지난 20~30년에 걸쳐서 한국불교는 많은 불사를 이루었고, 많은 부정과 비리를 폭로하고 고발하였으며, 수많은 대중교화 프로그램들을 운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도 수는 급감하고 있다. 불교 지도자들은 사회적 신뢰를 잃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방법상의 문제들도 있었겠지만, 이런 일들을 하는 불교지도자들의 마음가짐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런 일들을 추진하는 불교 단체들의 대표자나 핵심 구성원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했다. 열정적인 사업가도 있고, 스타 강사도 있고, 사회운동가도 있지만 이 사람들이 정말 불자다운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분을 만나기가 어렵다. 그러니 그들이 하는 일들을 통해서 감동을 받을 리가 만무하고, 함께 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데려 올 리가 만무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불교의 지도자들은 정말 초발심을 저버리지 않고 있는지 반성해 보았으면 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 욕망의 발로인지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도 굳이 내가 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욕망의 발로일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이 이제 그만하자고 하는데도 굳이 계속한다면 그것은 욕망의 발로일 가능성이 크다. 무슨 감투 건 계속해서 쓰고 있거나, 이 감투 저 감투 번갈아 쓰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욕망의 발로일 가능성이 크다.

초발심이 곧 바른 깨달음이다. 불교의 초발심은 세속적 욕망을 멀리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깨달음의 완성이다. 아무리 많은 경론을 읽었고, 아무리 오랜 세월 동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더라도, 다시 세속적 욕망에 사로잡혀 불교를 사칭하며 온갖 일들을 벌인다면 무명중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김종인 경희대 객원교수 laybuddhistforum@gmail.com
 


[1412호 / 2017년 10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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