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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단풍, 철새 그리고 연어의 계절

기자명 최원형

계절 변화 속에 깃든 모든 유·무정물의 연기

숲이 알록달록 물드는 계절이다. 산꼭대기부터 노랗고 붉게 번져가는 단풍이 곱다. 단풍이 들고 잎을 떨구는 일은 나무가 겨울을 지내려는 현명한 방법이다. 잎을 떨구는 일을 게을리 했든 집착 때문이든 만약 나무가 겨우내 잎을 달고 있게 된다면 잎사귀로 물과 양분을 쉼 없이 공급해야한다. 물관에는 물이 계속 이동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러다 기온이 크게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물관이 얼어 터지는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일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나무는 적절한 때에 잎과 줄기 사이에 있는 연결 부위를 차단한다. 이렇게 해서 떨켜가 만들어지고 나무에서 잎이 떨어져 나간다. 엽록소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색소들이 물 공급이 끊어지는 과정에서 드러나게 되는 것이 단풍이다. 그러니 단풍은 나무의 월동 준비인 셈이다. 단풍이 지고 낙엽 지는 것은 나무에게만 좋은 일이 아니다. 낙엽은 계곡에 사는 다양한 수생생물들에게는 주요한 먹이 공급처가 된다. 풍부한 수생태계는 물고기가 살기 좋은 환경이 된다. 그리고 강이 살아난다는 것은 또한 새들에게 풍요로운 환경을 의미한다. 서울에는 한강도 있지만 곳곳에 지천이 많다. 몇 년 전부터 하천을 정비하고 지천을 되살리는 일을 지자체가 발 벗고 나서더니 수생태계가 살아나고 있다. 물이 살아나니 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천이 흐르는데 그곳에 왜가리, 백로, 흰뺨검둥오리 등 많은 새들이 날아온다. 새들이 온다는 것은 그곳에 물고기를 비롯한 먹이가 있기 때문이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는 새들을 통해 숲으로 들어가 양분이 되고 울창한 숲을 키운다. 숲은 내를 만들고 천을 이루어 결국 바다에 가 닿는다.

나무 겨울나기 위해 낙엽 생성
수생물들의 주요한 먹이 공급처
철새 움직임 또한 단풍과 맞물려
순환될 때 우리 삶도 지속 가능

겨울철새의 도래 소식이 곳곳에서 전해져 온다. 단풍물이 들기 시작하는 때에 맞춰 지난봄에 떠났던 새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새들이 단풍드는 걸 손꼽고 있다가 맞춰 돌아올 리 없다. 다만 기온의 변화에 따르다보니 겨울철새의 움직임이 단풍과 맞물리는 사이클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은 떠났던 새들이 날짜와 장소를 정확히 기억하고 찾아온다는 것이다.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어김없이 찾아오는 또 한 생명이 있다. 바로 연어다. 지금 강원도 양양 남대천에는 돌아오는 연어 떼로 퍼덕인다. 캄차카 반도를 지나 베링해를 건너 알래스카까지 가서 살던 연어들이 다시 고향을 찾아온다. 그들이 순탄하게 남대천 상류로 올라가 알을 낳고 일생을 마감하는 일을 빌어 본다.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상류로 오르는 일은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특히 경사가 가파른 곳에서는 힘껏 뛰어오르느라 지느러미가 찢기기도 하고 심할 경우 목숨을 잃는다. 문제는 그런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는 일이다. 높은 보나 댐 같은 인공물을 만날 때가 바로 그러한 때다. 미국 서북쪽에 위치한 워싱턴 주에는 엘와강이 흐른다. 태평양에서 회귀하는 연어들은 엘와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간다. 오랜 시간 그곳에서 살고 있는 선주민들과 연어 사이에는 깊은 문화가 형성돼 있었다. 그런데 백여 전에 엘와강에 댐이 들어섰다. 제지 공장에 필요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댐은 연어의 길을 막았고 연어와 지역주민의 만남을 가로막았다. 엘와강은 태평양 연어 5종의 주요 산란지이자 서식지였다. 댐이 들어서면서 연어 서식지가 90% 가까이 사라졌다. 연어가 올라오지 못하자 지역주민의 삶도 형편없이 망가졌다. 연어와 지역주민의 삶이 얼마나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2011년 엘와 댐이 철거됐다. 끊겼던 연어의 길이 열리자 연어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의 삶에도 다시 활력이 돌기 시작한 건 당연했다. 연어가 돌아오면서 연어를 중심으로 생태계가 다시 복원되고 있다 한다. 연어를 먹이로 삼는 곰, 여우를 비롯한 다양한 생물들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이토록 모든 유정물과 무정물들이 서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이치를 단풍을 통해 본다. 제때 단풍 들고 낙엽 지고 철새가 찾아오고 연어가 돌아와 알을 낳는 일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인 듯 보이나 실은 기가 막히게 조건이 맞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구온난화로 동해바다의 수온이 오르면서 냉수종인 연어의 회귀율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소식을 접했다. 기진맥진하며 먼 거리를 힘겹게 날아온 철새들이 맘 놓고 지낼 서식지가 사라져버렸다면 새들이 또 찾아올까? 톱니바퀴가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는데 가장 큰 훼방꾼은 다름 아닌 우리들이다. 톱니바퀴가 제대로 돌아갈 때 우리 삶도 지속가능하다. 이 지당한 이치를 잊지 말아야 한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12호 / 2017년 10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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