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잔인함에서 자유로워질 연민수행
36. 잔인함에서 자유로워질 연민수행
  • 재마 스님
  • 승인 2017.10.24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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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수행 시작은 고통 받는 이에 대한 관심

무탈하시고 건강하신지요? ‘잔인함(해악, vihi?s?)’이라는 단어는 얼핏 보면 우리와 무관한 단어인 것 같은데요, 지난 추석 연휴기간에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의 이야기와 조선 마지막 황족을 다룬 영화를 몇몇 방송사에서 방영했는데, 폭력과 고문의 냉혹하고 잔인한 장면을 잘 보여주었어요. 일제가 물러가도 아직까지 우리나라 영토는 평화수호라는 이름아래 미군정의 전쟁화학무기고를 비롯한 해군기지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절집 역사에서만 봐도 10·27법난이 있었고, 군부독재시절 이념을 달리한다는 명분으로 지식인에서부터 학생·노동자들에게까지 가한 폭력의 역사는 아직도 많은 부분 완전히 청산되지 않고 있습니다.

나와 내 가족의 일이 아니라면
눈멀고 귀먼 상태로 사는 세상
공존을 위한 상호의존성 바탕
보편적 책임감 향상 교육 필요

잔인(殘忍)함의 잔(殘)에는 ‘해치다, 해롭게 하다, 손상하다, 멸하다, 멸망시키다, 무너지다, 허물어뜨리다, 죽이다’는 뜻과 인(忍)은 견디어내고 동정심이 없고, 용서하고, 잔인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글자를 합한 사전적 의미로는 ‘인정이 없고 모질다’로 풀이됩니다. 영어로는 ‘cruel, brutality’이 주로 사용되는데 ‘모질고, 잔혹한, 학대, 무자비한’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흔히 잔인함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가까이에 여전히 학교폭력과 가족 간의 갈등이 있고 강자와 약자 간, 혹은 자국의 이익과 관련해 국가와 국가 간의 미묘한 갈등이 개인의 의식구조와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중학생 폭력사건을 비롯해 미성숙하고 게임에 중독된 친부와 계모의 상습적인 학대로 인한 아동사망이나, 장애인이나 약자를 위한 시설의 신설 반대를 위해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는 뉴스들은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잔인함 중에 극히 일부분에 속할지도 모릅니다. 영화들에서도 현대의 끔찍하고 잔인한 사건과 이야기들을 다루어 세상이 무섭다는 것과 인간들의 폭력성을 폭로합니다. 또한 이 땅의 실업청년들이 삼각 김밥을 먹거나 식사권을 포기해도 내 아들 내 딸, 우리 가족이 아니므로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존권을 담보로 하고 있는 기업들은 기업의 윤리 감수성과 사회적 책임 등 공공성의 안목을 키우기보다 여전히 비정규직을 늘리면서, 제도적 문제라고 책임을 회피합니다. 우리가 각자 눈앞에 닥친 생계문제로 허덕이는 동안 발달장애인들이 실종되어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나와 내 가족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눈멀고 귀가 먼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이런 무관심과 무감각은 우리 안의 잔인함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요? 잔인한 성질 중 하나로 학대(abuse, 虐待)를 들 수 있는데요. 강자의 약자에 대한 가혹한 대우, 지배, 힘의 행사, 혹은 의도하거나 않거나 대상에게 신체적 정서적 심리적 고통을 주는 언어적 비언어적인 모욕이나 위협, 상해나 통증, 손해와 착취를 가하는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무관심은 학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얼마나 될까요? 혹은 내가 가진 힘은 약자나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얼마나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요? 나의 시간이나 금전적 손해를 끼칠 것 같은 자꾸 신경을 쓰게 하는 사회적 문제나 이웃의 일에 우리는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런데 또한 나와 관계가 멀다고 생각되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폭력 등의 잔인함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달라이라마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성인들과 성숙한 시민들에게 공존을 위한 상호의존성을 바탕으로 한 보편적 책임감(a sense of universal responsibility)을 길러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지구촌에서 누군가 잔인하게 취급받을 때 항의하는 것을 포함하며, 그들을 위해 도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야 하며 이는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말입니다. 나와 우리를 넘어서서 모든 인류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을 배우라고 합니다. 그 첫 번째가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 이것이 연민(憐愍)수행의 시작입니다.

재마 스님 jeama3@naver.com
 


[1412호 / 2017년 10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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