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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현승조

기자명 구담 스님

종교적 자각의 미적 형상화

▲ ‘피어나다1(인드라망)’, 2014년.

텅 빈 무채색의 공허함 속에 오래된 강렬한 원색의 표현이 도상화 되어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잔잔함을 보여주는 것이 현승조의 불화다. 중앙의 반가부좌를 한 미륵보살은 여유로운 자태의 당당한 풍미로 묘사되었고, 오래 묵은 황토빛깔과 대비되는 차분한 단색의 명징한 배경으로 구성지었다. 그림은 어느 사원의 실제 불상 같기도 하고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도상화된 형상 같기도 한 여러 중층 의미망을 지닌 다소 아이러니한 장면이다.

무채색 공허함 속 원색의 강렬함
유려한 선묘·차분한 색면 대응해
인드라망의 추상적 형식에 접근

은은한 미소를 띠고 반쯤 앉은 듯 살짝 굽어진 상체의 기울임이 더 안락한 여유로 다가온다. 오랜 세월 탓인지 박락된 채색이 벌거벗은 윗몸을 더 환히 비추고 그 아린 손끝으로 휘엉찬 넝쿨이 피어나와 춤을 춘다. 고즈넉이 아름다우면서도 적당히 낯선 이러한 묘사 방식은 작품 제목인 ‘피어나다, 인드라망’에서 알 수 있듯 불교의 연기적 사상을 표현하기 위한 의도된 연출 기법으로 보인다.

작가는 유려한 선묘와 차분히 대응되는 색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드라망이라는 추상의 형식에 접근하고자 장식적 특성을 활용하고자 애 쓴다. 날줄과 씨줄이 얽히듯 화려한 색감의 넝쿨은 마치 정적을 일깨우는 절집의 새벽 도량석처럼 매력적으로 화면을 찢으며 색점(色点)을 수놓는다. 분명 불상의 표현이되 한 걸음 더 나간 경계의 모호함을 안고 있다. 이러한 전체적인 조망을 어떤 종교적 숭고미라고 부를만하다.

종교적 숭고미란, 이른바 내적 자각을 형상화 것이다. 작가가 꿈꾸는 불교미술의 가치를 이 작품에서 읽어내기란 어렵다. 그러나 톨스토이가 “가장 위대한 예술은 그 시대의 종교적 지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듯이, 현승조는 자신의 미적 가치를 불교회화에서 구현하기 위해 살짝 절대적 진리로 향하는 밑둥을 건드려 보았다. 그의 예술이 주목받는 이유이자 동시에 자신의 어떤 인계점을 보여주고 있는 실정이다.

불교미술의 예술적 가치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불교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장엄 공덕에서 찾을 것인가, 부처에 관한 미적 황홀감을 작품에서 만날 것인가. 아니면 작가의 말처럼 머리와 손이 따로 놀지 않는 사상의 간극에서 찾을 것인가. 현대 불교미술에서 과거의 화려했던 화룡점정 시절을 주억거릴 순 없겠으나 그간 전통 불교미술에 대한 공감의 논의 없이 롤러코스터 타듯 현대미술로 넘어온 감각적 사태에 관한 반성부터 해보면 어떨까 싶다. 

불교만큼 진지한 성찰의 정신세계가 있냐고 묻는다면 너무 피상적인가, 어쨌든 시대를 통틀어 작가의 사상과 미학을 형성케 한 뿌리가 불교인 것만은 당연한 사실이다. 내용과 형식을 담아내기 위한 그의 불화는 현재 진행형이며, 동양이라는 큰 스펙트럼에서 불교회화를 아우르고자 하는 그의 행보는 반갑기 그지없다.

항상 고전에 관한 임모(臨摸)와 실경의 사생(寫生)을 끈질기게 놓지 않는 창작이야말로 그가 말한 불교회화의 법고창신이 아니겠는가. 그래서인지 생명의 기운이 움트는 넝쿨처럼 성큼 장엄 세계로 가는 길목에 자리할 것을 믿고 싶다. 어릴 적 입시미술학원에서부터 불화의 꿈을 발원한 탓인지 불화 전공의 후배들에 대한 아낌이 남다른, 불꽃같은 불화의 삶을 감히 기대한다는 바람을 전하고 싶다.

구담 스님 전 불일미술관 학예실장 puoom@naver.com


[1412호 / 2017년 10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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