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출가자의 삶
38. 출가자의 삶
  • 성원 스님
  • 승인 2017.10.2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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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태우고 지는 촛불같아

 
가을이 완연하다. 봄이 남으로부터 온다면 가을은 먼 북녘으로부터 오는 게 분명한 것 같다. 육지의 단풍이야기를 듣고 한참 지나서야 한라산의 낙엽을 겨우 볼 수 있다.

약천사 4년 주지소임 내려놔
모든 것 잘 갖추어진 사찰에
머물며 살았기에 감사할 뿐
촛불의 헌신, 온전하게 실천

한여름 모든 열정 다해 잎 무성히 꽃피우고 열매 맺어 떨구고 한 철 삶을 마감하는 단풍이 어디인들 아름답지 않을까마는 한라산의 단풍은 정말 아름답다. 특이하게도 제주는 부락이 모여 있는 해변가에서 단풍을 보기 힘들다. 자칫 바쁜 삶에 쫓기다 보면 가을이 깊어진 줄 알지 못하고 지나가 버릴 때가 많다. 사시사철 푸름에 둘러 싸여 있다 보면 계절을 잃어버린다.

서귀포가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살률 또한 매우 높다. 한번은 지역의 높은 자살률을 주제로 토의한 적이 있었다. 여러 지적 중에 좁은 지역의 폐쇄성 때문에 살다가 한번 저지른 잘못이 마치 원죄같이 계속 회자돼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또 한 가지는 계절과 상관없이 항상 푸르기만 한 환경이 우울증을 유발하는 것 같다는 의견도 많았다. 육지의 깊은 산사에 머물다보면 영원할 것만 같은 푸른 앞산이 어느 날 완전히 붉은 잎으로 물들었다가 얼마 안 있어 모두 낙엽이 되어 떨구어져 버리고는 민둥산 같이 되어 적나라하게 속까지 드러나 보인다. 이러한 전경도 잠시 어느새 하얀 눈으로 뒤덮여 버린다. 계절의 변화는 우리의 정신적 감정의 흐름에 너무나 아름다운 빛을 던져 주곤 한다.

어린아이들은 참으로 신기하다. 계절과 이웃의 이야기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산다. 자신의 삶이 너무나 신기하고 그 삶을 즐기기에 늘 잠자는 시간까지 쫓기는 것 같다.

6살짜리 윤재는 정말이지 일분일초 가만있지 않는다. 지금은 많이 얌전해 졌다고 하지만 같이 머물면 모두가 정신을 잃을 정도다. 어릴 적에는 엄마가 아예 절에 데려오지 못했다. 법당이든 차실이든 윤재가 지난 자리는 그야말로 초토화 되어 버린다. 그런데 신기 한 것은 다도를 가르치자 찻잔 앞에서는 조심에 조심을 더하면서 진지하게 행다를 했다. 언제나 차를 마시자고 하면 정좌하고 찻잔을 대하는 것을 보면서 어릴 때 일수록 지도편달이 정말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토록 자유분방하고 즐겁기만 한 어린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계절에 더 의존하는 것을 보고 성숙하다고 해야 할 것인지 알 수 없다. 우리들이 성장 한다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고독의 성(城)에 스스로 갇혀가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좋아해 함께 노니는 것을 보고 아직 힘이 남아서 그렇게 한다고 한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그것과 관심이 줄어들어가니 이것이 신체적인 변화와 연관이 없다고 어떻게 말 할 것인가?

이번 주말 약천사 4년 주지소임의 이임식을 갖는다. 정말 잘 갖추어진 사찰에 몸만 가서 4년을 잘 머물고 살았다는 생각에 고맙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성원에 보답하고자 제주시내에 ‘신제주 불교대학 보리왓’을 열어 불자들의 교육에 전념하고자 준비했다. 이제 찾아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보다 적극적인 불교활동을 해야 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개척적인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염려한다. 하지만 출가자의 삶이란 마지막 한 점 기름마저 태우고 꺼지는 촛불과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수행에 매진하고 사회에 헌신하겠다며 젊은 날 좌우명으로 정한 ‘매진(邁進)과 헌신(獻身)의 삶’을 어쩌면 이제야 온전히 실천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설렘이 자꾸 더해진다.

성가시게만 생각했던, 쉬지 않고 뛰어다니던 윤재가 이제 내 새로운 삶의 지침이 될 지도 모르겠다. 이래서 사람들이 어린이에게도 배울게 많다고 했던가보다.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412호 / 2017년 10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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