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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설악산 신흥사-금강굴-귀면암

천불(千佛)이 굽어 살피는 길에서 ‘나’를 만나다

▲ 비선대.

설악산(雪嶽山) 천불동은 한라산 탐라계곡, 지리산 칠선계곡과 더불어 한국 대표 3대 계곡으로 손꼽힌다.

거암 덩어리 미륵봉이 품은
천봉만암·청수옥담 계곡에는
삼세(三世)의 천불설법 가득

23.1m² 작은 성지 금강굴
설악이 조성한 천혜 토굴
공룡·화채능선 조망 ‘장관’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을 기준으로 동쪽을 외설악, 서쪽을 내설악이라 하는데 외설악은 백담사와 수렴동(水簾洞)을, 내설악은 신흥사와 천불동(千佛洞)을 품고 있다. 가을 단풍에 방점을 찍는다면 단연 수렴동을 추켜세워야겠지만 전경(全景)을 논한다면 비선대(飛仙臺)에서 대청봉(大靑峰)으로 오르는 7km의 계곡 천불동에 ‘엄지 척’이다. 와선대(臥仙臺)를 시작으로 비선대, 문주담(文珠潭), 이호담(二湖潭), 귀면암(鬼面岩), 오련폭포(五連瀑布), 양폭폭포(陽瀑瀑布), 천당폭포(天堂瀑布) 등 ‘천봉만암(千峰萬岩) 청수옥담(淸水玉潭)’의 세계가 환상적으로 펼쳐져 있는 이 곳을 일러 사람들은 “천하의 절경을 한데 모아 놓은 듯하다”며 “산악미의 극치를 자아내는 곳”이라 평한다.

▲ 미륵봉은 하나의 거대한 바위덩어리다. 비선대와 천불동을 굽어보고 있다.

신흥사에서 약 2.3㎞의 숲길을 걸으면 누워있는 사람 형상의 바위를 만난다. 와선대다. 그 옛날, 마고(麻姑)라는 신선이 저 곳에서 도반들과 바둑을 두고, 거문고를 연주했는데 가끔 누워 설악산이 빚어 낸 산수 경관을 즐기기도 했다. 마고는 언제 적 신선일까?

중국 요왕(2300년 전) 혹은 순왕(2200년 전)이 아들 교육을 위해 바둑을 창안했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2000년 전의 중국 문학작품에 바둑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도 하니 요순왕의 기원설을 간과할 수만은 없겠다. 우리의 기록으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등장하니 삼국시대(서기 전 57∼688)에 바둑이 전해진 것만은 분명하다. 고구려의 왕산악이 중국의 칠현금을 개조해 가야금을 만든 게 대략 552년이다. 마고 신선이 노닐던 때는 최고(最古)로 잡아 볼 때 약 1500년 전이다.

누워있던 마고 신선은 와선대에서 일어 나 300m 위의 바위에서 노닐다가 하늘로 올라갔다. 비선대다. 녹음방초 속에 비라도 한 줄기 내리면 반석위로 흐르던 물줄기가 네댓 번 씩 크게 꺾여 내려가는 장관을 연출하니 사람들은 ‘우의(羽衣) 자락이 펄럭이는 것 같다’고 했다. 꽃향기 가득 들어차는 봄이나, 하얗게 눈 내린 설경 또한 아름답기로 소문난 계곡인데 가을 단풍도 이에 뒤질세라 멋지게 물들어 있다.

▲ 미륵봉 중턱에 조성된 금강토굴. 신흥사 부속 암자다.

암반에 새겨진 ‘비선대(飛仙臺)’는 조선 영조 때 서예가인 윤순(尹淳)이 썼는데 아쉽게도 ‘비(飛)’자가 거의 안 보인다. 속초의 권정남 시인, 비워진 ‘비’자를 시상으로 잡아 ‘겨울 비선대’를 지었다. 

‘겨울 비선대에 올라/ 비선대를 보지 못했네/ 바위에 새겨졌던 飛자는/ 어디론가 날아 가버리고/ 눈 위에 새 발자국만 남아있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 산을 흔드는 바람 소리/ 허공으로 날아간 飛자는/ 산비탈 겨울나무 가지마다/ 화두話頭가 되어/ 바람부는 쪽으로 흔들리며/ 매달려있었네’

그 화두 어느 가지에 매달려 있겠나! 비선대에 머문 시선을 들어 벼랑 끝에 간신히 서 있는 나무를 부여잡고 사운거리는 가지들을 헤아려 보는데 한 줄기 빛이 묵직한 봉우리에 쏟아져 내린다. 거대한 바위 한 덩어리로 서 있는 봉우리! 가을 아침의 빛줄기를 황금빛으로 바꿔놓고 있는 범상치 않은 저 봉우리가 미륵봉(彌勒峰)이다. 중턱에 금강굴(金剛窟)이 있다 했다.

▲ 금강굴에서 바라본 이른 아침의 공룡능선 풍광.

비선대 철제다리를 지나자마자 두 길이다. 왼쪽길은 천불동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금강굴 오르는 길이다. 원효(617∼686) 스님도 이 산길을 거슬러 올라 가 그 토굴에서 정진했다. 와선대서 거문고 타던 신선, 비선대서 하늘로 올라 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던 마고 신선 만났을까? 그랬다면 불교와 도교간의 정수를 놓고 촌철살인의 법담이 오갔을 터다.

금강굴이다! 절벽에 걸린 토굴이 아니다. 설악(雪嶽)이 제 스스로 조성해 놓은 토굴이다. 화강암 바위를 뚫어 저토록 큰 혈(穴. 23.1m²)을 낼 당체(當體)는 산 밖에 없다. 하늘이 내린 토굴이요, 미륵이 내 준 토굴이다.

토굴 앞에는 설악능선이 늠름하게 서 있다. 천불동 사이로 왼쪽엔 공룡능선이, 오른쪽엔 화채능선이 1억3000여만년 동안 세워 온 등뼈를 올곧이 내 보이고 있다. 아직 빛이 들어서지 않은 공룡능선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운무를 뿜어내고 있고, 빛이 들어 찬 화채능선 부근의 산들은 형형색색의 단풍자태를 뽐내고 있다. 화채능선 오른쪽 방향으로 넘어가면 세존봉이 서 있다. 세존봉과 미륵봉. 그리고 천불동!

▲ 금강굴에서 마주한 화채능선과 단풍.

초기불교에서 ‘정등각자’ 부처님은 한 분이다. 정등각자는 법을 스스로 깨달은 존재로서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할 수 있다. 독각불도 홀로 깨달았지만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할 능력은 없다. 정등각자가 출현하는 순간 독각불은 사라지거나 반 열반에 든다고 한다. 하여, 삼천대천세계에서 부처는 딱 한 분뿐이다. 반면 대승불교는 수많은 삼천대천세계가 있다고 전제하며 한 삼천대천세계에 한 부처님이 각각 있다고 보았다. 초기불교는 ‘1세(世) 1불(佛)’을, 대승불교는 ‘1세(世) 다불(多?)’을 피력한 셈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3겁에 각각 천불이 난다고 하는 사상은 다불신앙에서 잉태됐다. 따라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현겁 천불 가운데 4번째 부처님이시고, 미륵불은 현겁 천불 가운데 5번째 부처님이시다. 마지막 1000번째 부처님이신 ‘루지불’이 오시면 현겁은 끝나고 미래로 넘어간다.

천불(千佛) 사상은 그림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중국의 병령사, 돈황석굴에 그려진 천불도상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산 장안사가 1만5천53불도(고려시대 추정), 설봉산 석왕사가 3천불도(고려말 조선 초 추정)를 소장했었다는 기록이 있다. 예천 용문사(보물 1644호), 고창 선운사는 1700년대의 천불도를 봉안하고 있고, 대흥사에는 1813년 건축된 천불전이 있다.

▲ 수렴동 단풍 못지않게 천불동 단풍도 수려하다.

불심 가득한 사람들은 범상치 않은 주상절리나 바위를 보고도 합장을 올렸다.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도 부처님 법문으로 들었던 소동파 마음과 다를 바 없다. 세존봉과 미륵봉 사이에 서 있는 기암괴석을 부처님이라 칭하고 천불동이라 했으니 설악산은 ‘소리없는 법음’이 가득 찬 성지(聖地)다. 오늘 마주할 천불은 과거의 천불이면서 현겁의 천불이고 미래의 천불이기도 하다. 1억3000여만년이 지나도 천불은 꼿꼿하게 서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백담사와 봉정암을 연결하는 수렴동 계곡은 절을 찾아 가는 길이다. 하여, 그 길에서 마주한 붉은 단풍이 제 아무리 찬란하다 해도 감탄할지언정 불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지는 못한다. 길 끝에 앉아 계시는 부처님 친견하러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반면 천불동은 ‘나’를 보러 가는 길이다. 천불(千佛)이 굽어 살피는 길에서 만나는 ‘나’이기에 어느 절벽 아래의 단풍나무 곁에 한없이 앉아 있어도 좋은 그런 길이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도·움·말]

 

 

길라잡이

들머리는 설악산 신흥사 주차장. 신흥사를 지나 2.6km 산길을 오르면 비선대다. 비선대 철제다리를 지나자마자 두 길이 나온다. 왼쪽 길은 천불동계곡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금강굴 가는 길이다. 비선대서 금강굴까지의 600m 구간은 가파르다. 30분 정도 잡고 쉬엄쉬엄 오르는 게 좋다. 금강굴서 비선대 철제다리로 다시 내려와 천불동계곡으로 가는 왼쪽  길로 들어선다. 천불동 계곡으로 들어섰다면 귀면암까지는 꼭 가보기를 권한다. 계곡과 기암괴석, 단풍이 빚어 낸 멋진 풍광이 펼쳐져 있다. 양폭, 오련, 천당 폭포도 멋지다. 설악산 주차장에서 금강굴을 참배한 후 귀면암까지 갔다가 신흥사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15.4km)에 소요되는 시간은 약 5시간. 금강굴까지만 갔다 원점회귀하는데는 3시간.

 

이것만은 꼭!

 
신흥사 극락보전: 1644년 조성된 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포계 양식이다. 포의 짜임새가 아름답기로 정평 나 있으며 공포마다 용 한 마리씩을 두었다. 꽃창살이 예쁘다. 계단 바깥쪽에 귀면(鬼面)과 삼태극, 구름문양 등의 문양을 한데 양각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14호로 지정돼 있다.

 

 

 

 
극락보전 아미타여래삼존상: 의상대사가 조성한 불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확실치 않다. 학계는 조선 중기 이후의 양식을 보이는 목조불상으로 보고 있다.

 

 

 

 

 
신흥사 보제루: 정면 7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양식으로 조성됐다. 신흥사가 왕실의 원찰(願刹)이었음을 보여 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보제루 앞에 서면 동쪽으로 고개를 돌려봄직하다. 달마봉과 마주할 수 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4호.

 

 

 


[1413호 / 2017년 1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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