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아비지옥과 그 별처지옥들 ②
39. 아비지옥과 그 별처지옥들 ②
  • 김성순
  • 승인 2017.10.31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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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의 재물을 함부로 쓰는 이는
무간지옥에서 무서운 고통 받아

아비지옥의 네 번째 별처지옥인 ‘야간후처(野干吼處)’는 일체의 지혜를 가진 이를 폄훼하고, 벽지불과 아라한을 비방하며, 불법을 훼손하고, 법이 아닌 것을 설법하고, 이를 남들에게 따르게 한 악업의 인연으로 떨어지게 되는 곳이다. 이 야간후처에서는 여우와 비슷하게 생긴 지옥짐승인 야간에게 온몸을 물어뜯기고, 비법을 전한 죄로 옥졸에게 혀를 뽑히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

아라한 비방하고 불법 훼손
온몸 물어뜯기고 혀도 뽑혀
재물은 지푸라기 하나라도
깨달음을 위해 쓰라는 경고


다섯 번째 별처지옥인 철야간식처(鐵野干食處)는 못된 마음을 품고 절에 불을 질러 불상과 불구, 세간 등을 태운 악업으로 인해 떨어지게 되는 곳이다. 전생에 지은 악업의 정도에 비례해서 지옥에서의 고통도 커지기 때문에 이 철야간식처의 고통상이 어느 정도 이리라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원을 태운 것도 악업이지만, 그 악행으로 인해 승가의 화합을 깨트린 업이 무척 위중하기 때문에 죄인의 몸에 붙은 불이 일십 요순에 달할 만큼 극열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그렇게 타고 있는 죄인이 입을 벌려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를 때면 입 속에서 또 불꽃이 튀어나와 다시 몸에 붙어서 불이 커지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이 철야간식처에서는 불에 타는 것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여름철 장맛비처럼 쏟아지는 쇳덩이에 온 몸이 부서지고, 불꽃 어금니를 가진 야간이 이리저리 흩어진 죄인의 육신을 뜯어먹는 고통이 계속 이어진다. 이곳 역시 다른 모든 지옥과 마찬가지로 죽었다가도 끊임없이 되살아나서 전생의 죄업이 다 소멸할 때까지 고통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

아비지옥의 여섯 번째 별처지옥인 흑두처(??處)는 불가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다 쓰고 돌려주지도 않으며, 주지가 되기 위해 시주했다가 다시 가져가고, 남에게 물건을 주어 보시하게 했다가 자기가 그것을 쓰는 등의 악업으로 인해 떨어지는 곳이다. 결국 흑두처의 죄인들은 끝없는 세월 동안 자신의 살을 파먹는 고통으로 불가의 물건에 함부로 손댄 죄업을 갚아야 한다. 복전 중에 가장 뛰어난 불타의 복전에 손해를 끼친 죄로 인해 제 살을 파먹고, 검은 뱀에게 잡아먹히다가, 마침내는 몸이 한 요순이나 되게 커져서 불꽃이 타고 있는 땅속으로 들어가 영겁의 세월동안 불에 타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 아비지옥의 일곱 번째 별처지옥인 신양처(身洋處)는 수차례에 걸쳐 불가의 재물을 가져다 쓴 이가 떨어지게 되는 곳이다. 신양처에 떨어진 죄인은 불타는 쇠로 이루어진 두 그루의 거대한 나무 사이에 서 있다가 거센 바람이 불어오면 나무들이 함께 부딪치는 나무들 사이에서 바스러지게 된다. 나무 밑에는 금강의 부리를 가진 쇠새가 있다가 조각난 죄인의 육신을 이리저리 쪼아 먹는다. 영겁의 세월 동안 이러한 고통으로 악업을 갚은 죄인이 요행히 이 신양처를 벗어나게 되더라도 이후 일천 생은 아귀도에 나서 주림과 목마름 속에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또한 그 다음 일천 생은 축생도에 나서 마갈어나 큰거북이 되어 바다속에서 늘 굶주리게 된다. 다음에 인간도에 나더라도 그가 사는 나라가 주변 국왕들의 싸움에 휘말려 애써 모은 재산을 강탈당하게 된다고 한다.

다음 아비지옥의 여덟 번째 별처지옥인 몽견외처(夢見畏處)는 사원에서 공양할 음식을 몰래 훔쳐 먹어서 많은 비구들을 굶주리게 만들고, 그런 짓을 자주 하면서도 참회하지 않는 자가 떨어지게 되는 곳이다. 몽견외처의 죄인들은 옥졸에 의해 쇠절구에 넣어져 마치 곡식처럼 뜨거운 쇠절구로 콩콩 찧게 되는데, 아예 형체도 없어질 무렵에는 다시 연한 새 몸이 생겨나 끝없이 절구질을 당하게 된다.

이상 아비지옥의 여덟 번째 까지의 별처지옥에 관한 교설을 보면 불가의 재물을 훔쳐 쓰기를 즐겨한 자가 후생에 받아야 할 업보를 강조함으로써 출가수행자는 물론 속인들에게도 강하게 경고하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불가에 속한 재물은 지푸라기 하나라도 깨달음과 중생의 구제를 위해 쓰여야 한다는 절대명제가 있기에 이를 훼손하는 것을 극중한 무간업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닐까.

김성순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shui1@naver.com
 


[1413호 / 2017년 1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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