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병고를 친구로 삼다 ②
84. 병고를 친구로 삼다 ②
  •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 승인 2017.10.3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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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은 빈승에게 가장 오래된 아주좋은 친구입니다”

▲ 성운대사가 시력을 잃은 이후에 쓴 일필휘지. 대만 불광산 제공

"질병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너무 무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질병을 친구로 삼아 서로 존중하고 자상하게 대해주면서 돌보면 질병과 신체는 공존하면서 잘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1955년께 나이 28~29세가 되면서 빈승은 중화불교문화관 영인판대장경의 대만지역 홍보책임을 맡으면서 20㎏ 무게의 녹음기를 자비로 준비했습니다. 우리는 대만 동북부 이란지역에서부터 동쪽 ‘화렌수화(花蓮蘇花)’ 국도를 따라 타이둥, 대만 남부 핑둥(屛東)에 이르기까지 줄곧 자갈길을 거쳐 왔는데 귀중한 녹음기가 망가질까봐 저의 무릎위에 올려놓고 보호했습니다. 보름이 지나서 핑둥 동산사(東山寺)에 도착하고 나서 불교예법에 따라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자 먼저 큰법당으로 갔습니다. 절을 올리는데 갑자기 두 다리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을 느끼면서 일어서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참는 것에 익숙해진 성격인지라 마음에 두지 않고 40일의 일정을 마치고 힘겹게 이란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이제는 통증 때문인지 자리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하면 저의 두 무릎은 마치 바늘로 찌르는 듯 한 통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신도는 지역 병원의 의사를 모시고와서 제가 검사를 받도록 했습니다. 진단을 마친 의사의 대략적인 설명은 급성 류머티즘 관절염이 전신으로 퍼져 사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니 두 다리를 절단해 상황이 심각해지는 것을 막아 목숨이라도 보전하자는 의견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빈승은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고 도리어 두 다리를 자르게 되면 바깥으로 돌아다닐 필요도 없고 걷는 수고도 덜게 되니 절에서 안주하면서 공부와 글쓰기에 전념하는 것도 인생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리를 절단하려면 필히 사전에 준비해야 하는 절차가 있어서 대략 한달 정도 지나게 되었는데 두 다리의 통증도 조금은 줄어들게 되면서 다리를 절단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신도의 말을 듣자니 관절염은 따듯하게 보온을 해줘야 하고 찬바람을 쐬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줄곧 지금까지 빈승은 아무리 더운 여름 더위 속에서도 항상 두터운 내복을 입고 지내면서 내복을 벗은 적이 없습니다. 당시 저는 의사의 치료를 받지 않았고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 저의 두 다리는 아주 정상적으로 저에게 큰 도움을 주면서 잘 쓰이고 있습니다. 저는 두 무릎을 잘 보호하였고 두 무릎도 저를 힘들게 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질병을 친구로 삼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질병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너무 무서워 할 필요가 없이 친구로 삼아 서로 존중하고 자상하게 대해주면서 돌보면 질병과 신체는 공존하면서 잘 살아가게 됩니다.

불광산 개산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소변이 자주 마렵고 배가 자주 고프고 갈증을 느끼게 되었는데 어느 날 밤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사태가 심각하다고 느낀 제자들은 저를 가오슝 ‘완외과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완조영(阮朝英) 원장에게서 진단을 받고 상세한 검사를 마치고 나니 빈승이 당뇨병에 걸렸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당뇨병에 대한 상식이 없었는데 갈증이 잦고 소변이 잦으며 자주 공복감을 느끼는 ‘삼다(三多) 증상’이 있으며 이 것을 ‘소갈증(消渴症)’이라고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긴 위장을 가졌네요. 스님처럼 특수한 위장을 가진 사람은 500만명 가운데서도 찾기 어렵습니다”라는 완 원장의 말을 듣고 아마도 환자를 위로해 주려는 호의에서 하는 말인가 하고 빈승은 별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뇨병 판정을 받은 이후 몇 년간 빈승은 체력이 달리고 전신에 무력감을 계속 느끼게 되었는데 신도의 소개로 타이베이 ‘영민총 의원(榮民總醫院)’의 신진대사과(新陳代謝科) 채세택(蔡世澤) 선생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채 주임은 저에게 우선 약을 복용하라고 하면서 만약 혈당이 올라가면 다시 인슐린 주사치료를 하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빈승은 의사의 처방에 따라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면서 당뇨병과 평생을 함께 살아왔습니다. 저는 채의사가 알려준 당뇨병 지식에 의지하여 지나친 예방도 하지 않았고 당뇨병 역시 저에게 지나친 위협을 가하지 않았으며 친구처럼 서로 좋게 대해 왔는데 아마도 가장 오래된 친구이지 싶습니다.
물론 당뇨병으로 인해 생활 습관이 어느 정도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제자들에게 저의 신체를 돌보도록 일러 주었고 저에게는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고 어떤 음식을 피해야 하는지 음식에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주의를 아주 성가시게 생각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당뇨가 있는 사람은 혈당을 높이지 않도록 탄수화물을 많이 먹지 말라고 하는데 저는 밥과 국수를 먹지 않으면 배가 부르지 않으니 힘들게 느꼈습니다. 나중에 저는 너무 가리지 않았는데 밥이 있으면 밥을 먹고 국수가 있으면 국수를 먹으면서 인연에 따라 나날을 보냈습니다. 현재 빈승의 혈당 수치가 대략 100~200 가량 됩니다.

나중에 의사는 이 수치를 보고 “스님은 지금 연세가 있으시니 이 정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예전에 젊어서도 대략 100~200 정도의 수치였는데 어째서 더 일찍 알려주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뇨병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몸을 움직이고 일을 하며 운동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운동을 하면 당분을 써서 없애면서 혈당이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게 되므로 그리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물론 노년이 되면 당뇨로 인해 눈·귀·코·혀·몸·마음 모두 영향을 받게 됩니다. 친구들도 오래 교류하다보면 서로 의견 차이가 있게 마련이지만 조금만 참으면 모두 잘 지낼 수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도 지나고 나서야 할 수 있는 말일 것입니다.

당뇨병 이외에 50세 전후로 기억하는데 10년에 걸쳐 불광산 조산회관과 대웅보전 등 기본적인 불사를 했습니다. 어느 날 태풍으로 나무가 쓰러졌기에 쓰러진 나무를 바로 세우고자 저는 옥상에 올라갔는데 실수로 옥상에서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당시에는 며칠간 등에 통증이 있었지만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정부에서 중년에 들어서는 국민들에게 건강검진을 독려하였으며 제자들의 독촉을 받고 빈승도 타이베이 ‘영민총의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검사를 마치고 저녁 퇴근시간이 되어가던 즈음 검사결과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주임 의사가 관련된 의료진과 함께 진단을 위해 저를 찾아왔습니다. 우물쭈물 말을 꺼내지 못하다가 의사는 “스님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시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저에게 왜 갑자기 죽음이라는 의제에 대해 언급하는지, 질문이 너무 갑작스러웠습니다. 이는 매우 대답하기 어려웠지만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만약 제가 죽는 것이 두렵다고 한다면 쓸모없는 수행자라고 우습게 여길 것이고 만약 전혀 두렵지 않다고 한다면 그 또한 억지가 될 것입니다. 작은 개미조차도 살고자 애쓰는데 하물며 인간은 어떻겠습니까?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통증은 겁이 날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의사는 “스님의 등쪽에 의심스러운 검은 그림자가 보이는데 아마도 좋지 않은 종양이라고 생각됩니다. 만약 악성이라면 생존기간이 단지 두세달 정도가 될 것입니다. 내일 다시 오셔서 다시 검사를 받도록 하세요”라고 말을 했습니다.

빈승은 이 말을 듣고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았고 “그건 안되겠는데요. 내일 한 비구니 스님의 영결식을 주관하러 이란에 가야 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모레 즈음에 검사하자”고 하였지만 가오슝 불광산에서 공사실무자 회의를 하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 있어서 모레도 안된다고 했습니다. “스님의 건강도 중요하잖아요”라며 의사는 저를 나무랐습니다. 물론 저도 의사의 호의에 감사하지만 “가오슝에 다녀와서 다시 결정하자”고 하였습니다. 빈승은 확실히 자신의 색신(色身) 건강에 대해 그리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타이베이 보문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시간이 늦었기에 기다리던 제자들은 다들 조급하게 저의 검사결과가 어떠했는지 물었습니다. 오늘 조직검사를 했다고 하니 “왜 조직검사를 했냐”며 제자들은 의아해 했습니다. 저는 제자들에게 살 한 점을 잘라내서 칼로 한 조각 한 조각 썰어보는 검사라고 유머러스하게 말했습니다. 제자들은 긴장하여서 “어디에 있는 살점을 잘라냈느냐? 심각한건가요?”라며 물었지만 저는 단지 놀려서 웃게 만들려는 의도였습니다.

가오슝으로 온 저는 검사하는 일을 완전히 잊었습니다. 10여일이 지난 후 의사는 타이베이 보문사로 전화를 걸어 저의 일정을 캐물었고 저에게 꼭 병원으로 와서 검사를 받으라며 호의를 보였습니다. 빈승은 마음에 두지 않았고 심각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다시 병원으로 갔는데 의료팀 의사 1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작저술과 사찰불사, 포교활동으로 이미 약간의 유명세가 있었기에 빈승은 의료진의 특별한 보살핌을 받으며 철저한 검사를 받았습니다.

단층촬영 이후 “혹시 넘어진 적이 있으신가요?”라며 의료진은 저에게 물었지만 저는 전에 넘어졌던 일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의사는 스님의 등에 검게 보이는 것은 심각한 어혈이라는 설명을 하였고 설명을 들은 뒤에야 예전에 옥상에서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던 일이 기억났습니다. 암에 대한 한바탕 의혹이 사라지면서 이 새로운 친구는 알기도 전에 떠나갔습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413호 / 2017년 1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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