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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고통의 보편성과 연민 수행

기자명 재마 스님

나와 남 평등하게 보는 자세와 지혜 필요

지난주에 지방으로 내려가는 도중 설사병이 걸려 지인이라고는 없는 소도시의 한 병원에서 장염진단을 받고 약을 사서, 다시 조금이라도 연고가 있는 목적지인 지방으로 내려가 그곳 대학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습니다. 병실이 날 때까지 링거를 맞으며 기다렸습니다.

마음 열어 타인 입장 되어보면
모든 존재가 고통스러움 자각
건강할 때 마음 훈련 지속하면
약해졌을 때 남 이해·수용 가능

그동안 너무 무리한 일정 등의 원인과 찬바람 등의 조건이 만나 몸에서 일어난 현상인데, 샨티데바 스님의 말씀처럼 제 몸이 ‘오물자루’인 것을 여실하게 본 며칠간이었습니다. 다행히 다인실 병실로 옮겨 치료를 받았습니다. 검사를 위한 혈액 채취로 인해 손목과 팔은 멍이 시퍼렇게 들고, 혈압은 낮아져서 춥고, 정신은 하나도 없는 가운데, 어쩌면 이렇게 삶이 마감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아파 예민해서 그런지 병실 TV소리와 사람들 목소리, 전화벨 소리와 통화하는 소리들이 섞여서 마치 장터를 방불케 한 상황이 계속되자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나의 상황을 이해해준다면 낮은 목소리와 분위기를 위해 노력을 해 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겼는데, 이를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계속 삼키고 있다 보니 화(火)로 발전한 것이었습니다. 별별 망상이 다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기도한답시고 다인실에서 제 목소리가 너무 크지 않았나부터 시작해 환자들의 입장을 얼마나 헤아리려고 애썼나 하는 반성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애써 누군가에게 조용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모두 각각의 입장이 있기 때문일 텐데요, 이틀이 지나고 나서 제 옆 침상에 있었던 환자는 귀를 수술해서 잘 들리지 않아 더 목소리가 컸던 것을 알게 되니 그냥 웃음이 났습니다. 제가 그분께 조금만 관심이 있었다면 그 분의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었고 그러면 큰 소리를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요. 아니라면 제가 그분이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 싫다는 감정이 올라오기 전에 그분께 소리가 크게 들린다고 표현할 수 있었다면, 그도 저도 아니면 그냥 그분을 한 존재로 신뢰하고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저는 평화로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저의 아픔 속에만 머물러 주변을 돌아보거나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신을 조금 차리고, 그분의 입장이 되어보니 그분이 그렇게 크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충분히 있었던 것이죠. 귀를 수술해서 스스로도 적응이 안 되어 사람들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것은 깨어있고 마음이 열려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고통의 순간에 있는 존재들은 자신의 마음 중에서 가장 여리고 유약한 마음이 발현되는 경험을 합니다. 이때 페마 쵸드론이 말한 ‘용맹한 전사의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자신의 고통 속에만 머물기 쉽습니다.

자신의 고통 속에만 갇혀 있다면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보려는 마음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이때 ‘고통의 보편성’에 대해 자각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고통 받고 있을 때, 나 혼자만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은 조건에 의해 고통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고통스럽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지요. 그곳은 다행히 병실이었고, 모두가 아파서 온 것이라는 자각이 들자 제 자신 뿐 아니라 병실에 있는 다른 분들의 고통에도 귀와 마음을 열 수 있었습니다.

연민수행에는 지혜의 마음, 나와 타인을 평등하다고 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샨티데바 스님은 ‘입보살행론’에서 “우리 몸의 신체부위가 각각이지만 한 몸을 이루듯이, 세상에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모두가 자신이 보호해야 할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약해졌을 때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건강하고 마음이 자연스럽게 열려있을 때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한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재마 스님 jeama3@naver.com


[1413호 / 2017년 1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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