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개미도 없고 군집도 없다
39. 개미도 없고 군집도 없다
  • 강병균 교수
  • 승인 2017.11.07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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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것은 임시로 붙인 이름일 뿐

‘인연으로 생긴 법을
나는 공이라고 한다
가명이라고도 부른다
중도이기도 하다’
- 용수 ‘중론’

팔불중도는 놀라운 관찰 결과
개인과 집단도 팔불중도 관계
끝없는 변화 속에 있기 때문

사회의 문화와 개인의 마음의 관계도, 집단지능과 개인지능의 관계도 팔불중도(八不中道)이다. 에드워드 윌슨을 빌려와, 팔불중도를 개미와 군집의 관계를 이용해 설명하는 것도 가능하다. 동물과 곤충세계에 대한 연구가 없었던, 옛날에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세상에는 이런 팔불중도 관계에 있는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모두 연기(緣起)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고 보면 모두 팔불중도이다.

개미 개체가 없어지고 군집이 생기는 게 아니다. 개미 개체가 어디론가 가고 군집이 어디선가 온 게 아니다. 군집은 많은 개체가 모일 때 나타나는 창발적인 현상이다. 알파고(AlphaGo)의 바둑 두는 능력은 개별 부품과 디지트에는 없는 창발적인 현상이다. 보잉747의 비행능력은 500만 개에 달하는 개별 부품에는 없는 창발적인 현상이다. 영국 왕립학회 회장 켈빈(Kelvin) 경이, 1895년에 라이트 형제와 여러 사람들이 비행기 제작에 실패를 거듭할 때, 말했듯이 “공기보다 무거운 기계가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는가?” 그래서 필자는 곧잘, 공기보다 무거운 새가 하늘을 날아가는 걸 보면서 “허, 거, 참, 어떻게 저런 일이?” 하면서 고개를 흔든다. 하늘을 나는 것은 그만큼 신비로운 일이다. 중력을 거스르는 일 아닌가?

개미 개체와 군집은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개개 개미에는 없는 능력이 군집에는 있다. 하지만 군집은 개체 개미들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으므로, 개체 개미와 군집은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이는 단순한 하등 의식에서 복잡한 고등 의식이 나타나는 좋은 예이다. 개체의 특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군집의 특성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개체는 군집을 만들고 군집은 개체를 만든다. 개체와 군집은 서로 상대방의 몸과 마음을 만든다. 명색(名色)을 만든다.

몸이 죽고 마음이 온 게 아니다. 몸이 죽고 몸이 태어나고, 마음이 가고 마음이 오는 게 아니다. 몸과 마음은 다른 것도 아니고 같은 것도 아니다. 몸과 마음과 분리된 존재도 아니고 연결된 존재도 아니다.

마음은, 눈이 보면 같이 보고, 귀가 들으면 같이 듣는다. 그러므로 마음은 몸과 분리된 것이 아니다. 때로는, 눈이 보고 귀가 들어도, 마음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빛알갱이가 망막을 힘껏 때리고 공기입자가 고막을 마구 흔들어도, 전자가 수백 조 개씩 떼를 지어 신경줄을 타고 거칠게 뇌로 돌진해도, 마음에는 아무 반응이 없다. 기름이 물 위를 미끄러져 흘러가듯이, 마음도 몸에서 유리(遊離)되어 흘러간다. 더 결정적으로는, 마취 시에 또는 기절했을 때 마음은 몸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음은 몸에 연결된 것도 아니다.

관념이 아니라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가명(假名)이다. 임시로 붙인 이름이다. 위에 등장한 정자·난자·수정란·씨앗·나무·몸·마음·빛·전자·신경세포·신경회로·개미·군집과 중생·부처 등이 모두 가명이다.

모두 끝없는 변화의 흐름 속에 있기 때문이다. 변화가 많이 진행되지 않은 짧은 기간에는, 우리의 둔한 감각과 인식에는, 대상이 마치 불변의 존재인 것처럼 비칠 수 있다. 실용적으로도, 짧은 기간이나마 불변인 양 존재하는 그걸 지칭할 필요가 있으므로, 임시적으로 이름을 붙인다. 그래서 가명이다.

용수의 팔불중도는, 그 출현시기가 아직 유전자가 발견되기 1700년 전인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관찰과 결론이다. 이런 일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할 수 있는 물리적인 증거가 없을 때, 이런 직관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건 더 힘든 일이다. 몸과 마음을 바쳐 평생 수행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414호 / 2017년 11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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