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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목발 짚고 연습 온 다은이

기자명 성원 스님

오래 보지 않아도 사랑스럽다

 
어릴 때 발을 심하게 다쳐 대구 동산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으니 7살 때였던 것 같다. 한 달을 입원 했는데 그때의 하루하루 기억이 어제같이 새롭다. 옆 침상에 입원한 아이며 그 아이 어머니의 하소연까지 생생하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아버지가 술을 많이 먹어서 어머니가 마중 나간 사이 혼자 둔 아이가 도로로 나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그 아주머니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어린 내게 하소연했다. 하염없이 술 마시는 남편에 대한 원망과 시장에서 좌판을 벌여 살아가는 자신의 신세타령, 그리고 심한 대퇴부 골절로 누워있는 자식의 미래까지 더해서 나는 듣고 들어야했다.

언제나 환하게 웃어주던
큰누님 미소 닮은 아이들
언제 보아도 행복한 모습
수행의 길에 든든한 의지처

한번은 휠체어를 이용한 채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다. 휠체어를 돌릴 수 없어 들어간 채로 있었더니 먼저 탄 아저씨가 문을 닫지 않는다고 막 화를 냈다. ‘내가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처지인걸 알면서도 어른이 왜 저러실까’라고 생각하며 측은한 마음이 들었는데 지금도 그 장면이 뚜렷하게 기억난다. 외삼촌께서 병문안 오시면서 작은 장난감 트럭을 사주셨다. 어른들은 내가 곁에서 듣고도 모른다고 생각하는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많이 했다. 특히 내 병의 회복상태와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 할 때면 겁이 나기도 했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늘 유쾌했던 큰누님 모습이다. 그때, 그 일상의 유쾌함이 내 삶의 큰 바탕이 되었다. 간호를 해주신 큰누님은 유쾌했고 라디오로 들려오는 이미자 노래의 가사를 빠뜨리지 않고 어찌나 빨리 쓰던지 놀라웠다. 노래 책이 많지 않던 당시에 누나의 속기는 유효한 자산이었다. ‘누가사탕’이라는 말랑말랑한 사탕을 좋아했는데 누나는 병원 건너편 서문시장에 가셔서 사다주시곤 했다. 누나가 사탕을 사러 출발하면 마음속으로 누나의 동선을 생각하다가 ‘신호등을 건널 때쯤 되었겠다’ 여겨질 때 창 너머로 고개를 내밀면 어김없이 누나도 창을 올려다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기대와 그 기대의 저편에 믿음 저버리지 않는 반응은 나의 인생 내내 불안감 없이 항상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지금도 그렇다. 내가 누군가를 기대하며 바라볼 때 그곳에 반드시 그 대상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면서 신행생활을 해 가고 있다.

물론 아름답고 고요한 일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옆 침대에 피를 철철 흘리며 입원했던 아저씨가 며칠 후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병원의 일상은 매일 긴장의 연속이라는 것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그때 한글도 배웠고, 큰고모와 고모부를 비롯해 대구 사는 고종사촌누님과 외사촌들까지 많은 친지들이 병문안 와주셔서 아픔도 잊고 즐거운 입원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병원에 꼭 가보는 것을 무슨 의무감 같이 느끼곤 한다.

약천사에서 리틀붓다합창단이 연습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보러갔더니 언제나 밝게 놀던 고다은 단원이 양팔에 목발을 짚고 와 있었다. 순간 어릴 때 내 모습이 생각나서 다가갔더니 밝게 웃어주었다. 밝은 웃음에 그냥 사진이나 찍고 헤어졌는데, 위로의 말 한마디 안 해준 것이 생각나 너무 미안했다. 그래도 사진을 보니 밝게 웃고 있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웠다.

훗날 내가 발을 다쳤을 때보다 더 큰 다은이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그날 아픈 자신에게 무심했던 스님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고 노래했다. 하지만 우리 리틀붓다들은 주마등같이 보아도, 자세히 오래토록 보지 않아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어쩌면 내 맘이 온통 그들에게로 쏠려 있어서 그런지 누구보다도 더 자세히 오래토록 바라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미안한 마음과 함께 내 마음은 벌써 또 그들이 보고 싶어진다.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414호 / 2017년 11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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