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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에 들어가며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7.11.07 15:46
  • 수정 2017.11.07 15:47
  • 댓글 1

선거 거치며 종단현실 고민
아픔은 있었지만 후회 없어
새 집행부, 희망 주길 기대

얼마 전 해남 미황사에서 괘불재가 있었습니다. 참석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매년 가을이면 하는 법회지만 이번에 특히 미안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미황사 주지스님과 이번 총무원장 선거기간 동안 서울에서 함께 한 시간이 길었습니다. 함께 고민하고 먹고 자면서 나눈 정들이 특별해서입니다. 그 스님과는 1994년 종단이 정부의 손으로부터 진정한 독립이 될 때 승가대생으로, 저는 동국대생으로 함께 했습니다. 함께 하면서 서로를 알 수 있었고 믿는 인연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 1998년에도 함께 같은 방향으로 걸었고, 2002년쯤 청정선거운동도 함께 했었습니다.

한 사람은 서쪽 땅 끝에서 저는 동쪽 땅 끝에서 지내다가 오랜만에 종단을 위해 뭔가 해보자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온 경우였습니다. 물론 우리가 종단을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사실 이번에 종단 일에 가까이 가보니 어떻게 돌아가는지 더더욱 “모를 뿐”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래도 종단이 나아갈 방향이라도 함께 고민하고 외쳐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니겠냐고 서로를 위로하며 지냈습니다. 며칠 가까이서 스님을 보면서 항상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반대로 저는 많이 흔들렸습니다. 강한 줄 알았지만 약했고, 용기 있는 줄 알았는데 용감하지 못했습니다. 종단에서 이렇게 오래도록 살아온 것이, 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슬픔과 좌절에 빠져있을 때 아침 햇살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아침이 되면 해가 뜬다는 것을요. 힘든 시간도 지속되지 않는다는 진실을 매일 아침 뜨는 해가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종단의 일원으로서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쫓겨서 했던 일들이 시간 앞에서 너무 부끄럽고 초라한 일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시간이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대중의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저항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것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뭔가 해야만 한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저도 모르게 누군가를 힘들게 했다면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미안함은 있지만 후회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바보가 되었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얼마 전 총무원장 선거가 있기 전날 혼자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왜 그런지 그냥 그랬습니다. 이런 모습의 종단이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잘하고 못하고는 없습니다. 모두가 그만한 이유가 있었고 인연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에는 오직 슬픔만이 있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종단이 출범했습니다. 종단의 구성원으로서 아침 해를 맞이하는 느낌입니다. 저는 종단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고 지위도 없습니다. 다만 조계종 스님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기분이 오락가락 합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애썼겠지만, 아무쪼록 좋은 인연들이 많이 모여서 지혜를 모아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을 기원합니다. 그럴 때가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 하림 스님
저는 여러 인연들의 보살핌과 배려로 이번에도 동안거를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생을 떠나지 않고 자비로 안고 끝까지 함께 하는 분이 보살입니다. 조금 힘들다고 내 공부를 위해 안거에 들어가는 것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더욱이 안거 중에 신문에 글을 쓴다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고 선방스님들에게도 누가 될 것 같아서 이제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로 보잘 것 없는 원고를 실어주신 법보신문에 감사드리고 읽어주신 분들에게 부끄러운 마음과 고맙다는 말씀을 꼭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림 스님 행복공감평생교육원장 whyharim@hanmail.net

 


[1414호 / 2017년 11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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