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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겨울 길목에 만난 벌레

기자명 최원형

벌레가 추위 피해 집 들어오는 건 인지상정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이 지났다. ‘이제 추워질 일만 남았구나’라는 생각만으로도 한기가 느껴진다. 추위를 많이 타긴 하지만 겨울철 집안 온도는 18도에 맞춰져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집수리를 할 때 단열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현관과 거실 사이에는 중문을 달아서 바깥으로 온기가 나가는 일도, 바깥 냉기가 들어오는 일도 가능한 차단했다. 단열이 잘 되니까 실내온도가 18도로 내려가도 새벽에 살짝 한기가 느껴질 뿐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전에 살던 아파트는 중앙난방이어서 한겨울에도 집안에서 반팔을 입고 지내야 했다. 저녁에 귀가한 식구들은 답답하다며 창을 열어젖힐 정도였다. 그 집에서 그만 이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는데, 겨울을 겨울답게 지내지 못하는 일이 못내 불편했기 때문이다.

벌레를 ‘해충’으로 규정하는 건
결과로 단정 지은 기울어진 관점
생태계 파괴로 ‘해충’ 또한 늘어
개발서 비롯된 이상 기온이 원인

늦가을 시작을 온도보다 먼저 알려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다. 바로 벌레들이다. 특히 노린재와 무당벌레 그리고 고마로브 집게벌레는 가을이 한창 깊어질 무렵부터 어디서 들어오는지 쉼 없이 들어온다. 단열에 신경 쓰느라 창문도 빈틈이 없는데 도무지 벌레들은 어디로 들락거리는 걸까 여전히 미궁속이다. 집어다 바깥에 내놓아도 어느새 다시 집안에 기어 다니는 벌레들이 눈에 띈다. 다행스럽게도 식구들 모두 벌레를 싫어하지 않아 벌레의 잠입이 크게 신경 쓰이진 않는다. 산 아래에 있는 집이다보니 벌레들이 제법 많다. 여름은 모기와 함께 시작한다. 2년을 고생하다 올해는 드디어 모기장을 장만해서 살생의 업을 덜 짓고 여름을 날 수 있었다. 모기의 입장에서 보면 모기장이 원망스럽기도 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집안에 벌레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는 게 느껴질 즈음이면 앞산에 단풍물이 들기 시작한다는 걸 2년쯤 살고 나서야 알게 됐다. 기온이 내려가면 따듯한 곳으로 찾아드는 건 사람이나 벌레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집으로 벌레가 들어왔을 경우 가능하면 비닐봉지로 생포해서 바깥에 풀어주곤 했다. 그런데 벌레들이 추위를 피해 집안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로 들어온 벌레들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일이 점점 망설여진다. 이러다 벌레집이 되지 않겠냐며 바깥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의견과 먹을 게 없는데 이곳에서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냥 내버려두자는 의견이 식구들 사이에 분분하다. 노린재는 창가에만 주로 있는 것 같다. 고마로브 집게벌레는 다용도실이나 베란다처럼 습기가 있고 어두운 곳에 주로 산다. 어쩌다 물건을 옮기려다보면 화들짝 놀라 달아난다. 무당벌레는 밤에도 가끔 나타나 전등갓에 와 부딪히며 존재감을 확인시켜주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려 행방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집안 곳곳에 살고 있는 벌레의 종류와 수도 물론 알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몇 달째 상주하는 거미도 있다. 화분에 심어진 나무줄기 아래쪽에 집을 짓고 사는데 과연 먹이를 구할 수 있을까 싶다. 가끔 물이 부족할까 봐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주는 정도로 동거인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할 뿐이다. 벌레에 대해 대부분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식은 부정적이다. 벌레는 곧 해충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박멸이라는 말과 해충은 늘 같이 쓰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해충의 기준은 뭘까? 벌레도 어엿한 생태적 지위를 갖고 있다. 생명 가진 모든 것과 심지어 생명 없는 것들까지 지구에서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일은 서로에게 중요하다.

우리 식구들이 특별히 생태적이어서 벌레에 대해 관대한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주변에서 다양한 생물들을 볼 기회가 많다 보니 집으로 들어오는 벌레들도 같이 사는 생물 가운데 하나로 여기는 게 아닌가 싶다. 자주 보고 오래 봐야 할 이유다. 모기로 인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모기가 많아지게 된 것은 상위 포식자가 사라지게 된 때문이고 개발 때문이며 더 근원적으로 기온 상승과 관련이 있다. 생태계 균형이 깨지면서 작물에 피해를 주는 소위 ‘해충’들이 늘어나게 됐고 그래서 더 많은 살충제를 뿌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그 악순환의 최대 피해자는 아마도 우리들이 될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내버려둔 채 단지 결과만을 놓고 해충으로 단정 짓는 일은 생명을 바라보는 기울어진 관점이 아닐지. 추운 겨울로 접어드는 길목에 모든 생명은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사실과 불살생계를 다시 생각해 본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15호 / 2017년 1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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