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신곡’의 지옥과 순례자 ②
42. ‘신곡’의 지옥과 순례자 ②
  • 김성순
  • 승인 2017.11.2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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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부패 향한 날카로운 비판

불교의 지옥에서 흔히 등장하는 고통상 중에 ‘잿물의 강’ 혹은 ‘납물의 강’이 있다. 아직 불씨가 남은 재가 강물처럼 흐르는 강이나, 납의 용액이 흐르는 강은 죄인들이 형체도 없이 녹을 정도로 뜨겁다. ‘신곡’의 지옥에서도 붉은 핏물이 끓는 강이 등장하는데, 폭군과 약탈자들이 그 안에서 눈썹까지 잠긴 채로 고통을 당하게 된다.

지옥서 고통받는 죄인 중에
교황이나 추기경 자주 등장
불교와 같이 ‘신곡’ 지옥편도
교단 지키기 위한 저자 열망


자살한 사람들의 영혼은 숲에 떨어지는데, 마치 잡초씨앗처럼 싹을 틔워서 야생의 나무가 된다. 하나님이 주신 육신을 멋대로 훼손했기 때문에 그 영혼도 형체를 잃어버리고 나무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무가 된 영혼은 그 잎과 가지들이 뜯길 때마다 고통을 느끼지만 최후의 심판이 있을 때까지는 그 육신을 찾으러 가지도 못한다.

불비를 맞으며 잠깐의 쉼도 없이 영원한 행진을 하고 있는 죄인들도 등장하는데, 이들은 잠깐이라도 대열에서 빠져나가면 백 년 동안 불비를 피하지 못한 채 누워있어야 한다. 성직자나 유명한 인사 중에 인색하고 질투심 강하고, 교만한 이들이 이 영원한 벌을 받게 된다고 한다.

세상의 변소에서 가져온 듯한 똥물 속에 잠기는 구렁도 있는데, 이는 알랑거리며 아첨하던 자들, 즉 불교적으로 표현하자면 기어(綺語)의 구업을 지은 자들에게 해당되는 형벌이다. 또한 역청이 끓고 있는 구렁에는 남들에게 사기 치고, 민간인을 갈취하는 탐관오리들이 들어가게 된다.

전체적으로 ‘신곡’의 지옥편은 기독교 교단의 내부적 모순과 부패상황에 대해 유독 날카로운 비판의 눈길을 보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죄인 중에 교황과 추기경 등의 사제들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성물과 성직을 매매하던 자들은 거꾸로 처박힌 채로 발을 심지로 삼아 끊임없이 불타는 형벌을 받다가 다음 죄인이 오면 자리를 넘기고 더 아래 지옥으로 내려가는 것으로 묘사된다.

온갖 종류의 뱀들이 뒤엉켜있는 구렁도 있는데, 벌거벗은 죄인들이 그 안에 던져져서 뱀에 물리게 되면 몸에 불이 붙고 타버리게 된다. 여기서 특기할만한 점은 불교의 지옥에서 물리적인 죽음이 불가능하듯이, 이 독사의 구렁에서도 타버린 재가 땅에 스러졌다가 또다시 제 스스로 모여서 순식간에 이전의 형상대로 자라난다는 것이다.

여덟 번째 구렁에는 온갖 모략과 술수로 이간질을 한 수도사와 사제들이 등장한다. 생전에 달변과 기만적인 논리로 많은 이들을 속여 죄악을 행하게 만들던 이들은 불의 옷을 입고 고통 속에 지내게 된다.

간사한 말로 전쟁을 부추기고 살육하게 만든 자들이 몸체에서 잘려나간 자신의 머리를 등불처럼 들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죗값을 알리는 구렁도 있다. 생전에 권력자의 옆에서 위세를 떨치던 자들이었지만 사람들을 반목하게 한 죄가 깊어서 비참한 모습으로 지옥의 고통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살아있을 때 환술(幻術)이나 연금술 등으로 세상 사람들을 미혹시킨 자들도 지옥의 구렁에 떨어지게 된다. 이곳의 죄인들은 마치 창병에 걸린 환자처럼 온몸에 부스럼이 생겨서 끊임없이 손톱으로 딱지들을 떼며 스스로를 할퀴고 있다.

불교에 8대 근본지옥이 있는 것처럼 ‘신곡’의 지옥에는 모두 열 개의 구렁이 존재하는데, 각기 그곳에 떨어지게 되는 죄의 성격이 다르다. 이는 불교경전에서 각 근본지옥의 업인을 달리 제시하는 것과 유사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다음 지구 중심부에 위치한 최하부 지옥 디스에는 하느님에게 배역한 죄로 추하고, 거대해져 버린 거인왕 사탄이 등장한다. 이곳의 죄인들과 거인왕은 모두 거꾸로 들린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이들이 신앙을 배신한 자들임을 상징한다. 불교의 지옥교설에서 궁극의 아비지옥에 승가와 비구, 비구니를 훼멸한 업인을 배치한 것처럼 ‘신곡’의 지옥 역시 가장 고통스러운 최하부에 배역자들을 넣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신곡’의 지옥편 역시 교단과 신앙을 지키고 싶어 했던 저자의 열망이 깃든 서사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김성순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shui1@naver.com  



[1416호 / 2017년 1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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