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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수행 장윤희-하

기자명 법보신문

▲ 53, 능견현
평소보다 더 부지런해지는 날이 있다.

수행에 의기양양하던 중
남편 병마 소식으로 상심
간절히 다라니기도·사경
불교로 오는 남편에 감사

다라니기도를 하는 날이다. 곧잘 미뤄두곤 하던 설거지도 즉각 해결한다. 다라니기도가 있는 날이면 오히려 시간을 더 아껴 쓰게 됐다. 미루던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면 쌓이던 피로도 물리칠 수 있었다.

기도를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을 넘겼다. 그러면서 언제부터인가 매월 다라니기도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게 됐다. 차츰 수행이 무르익어간다는 느낌도 있었다. 수행하는 스스로를 대견해하면서 의기양양 하루하루 보내고 있었다. 나름 ‘새로운 나’를 만난 느낌에 젖었다. 쉽게 부서지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적어도 내겐 결코 없는, 아니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여겼는데…. 불현듯 남편에게 병마가 찾아왔다.

부처님 가르침을 더 알고 싶어 입학한 불교대학. 그때 남편은 너무도 싫은 내색을 숨기지 않았다. 사실 남편은 불교라는 종교가 그저 샤머니즘, 그러니까 기복신앙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래서 아무리 유명한 천년고찰에 가더라도 법당에 발 디디는 것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바로 남편이었다.

남편은 매사에 늘 강했다.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인생을 뚜벅뚜벅 걸어가며 개척해온 사람이었다. 그런지라 남편도 나도 병마가 왔다는 현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남편은 많이 힘들어했다. 상심이 누구보다 컸으리라. 늦은 밤 훌쩍 집을 나간 남편을 찾아 온 동네를 헤매기도 했었다.

시간이 무심히 흘렀고, 상심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은 달라졌다. 조금씩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시간을 내 불교대학으로 수업 들으러 가는 나를 인정해줬다. 언제였던가. 남편이 넌지시 말을 꺼냈다. 불교대학이나 절에 가면 그저 마음속으로 되뇌는 말이었다고 했다. “우리 마누라 절에 다니는 거 아시지예? 부처님!” 그만 웃음이 났다. 남편과 함께 웃었다. 점점 불교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남편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지난 추석이었다. 놀랍게도 남편이 선뜻 이야기를 꺼냈다. 고향에 있는 다솔사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평소 산소에 가더라도 단 한 번이라도 먼저 절에 가자고 한 적 없었던 남편이었다. 그런 그가 절에 가자는 이야기를 꺼낸 것 자체가 내게는 상상하지도 못한 큰 변화였다. 어쩌면 변화는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한동안 집에서 신묘장구대다라니 사경을 할 때 남편은 어깨너머로 내가 쓰는 다라니를 보고 종종 읊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남편이 이렇게라도 다라니를 읽을 수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만 했다. 그 정도로 남편은 내 의지와는 달리 좀처럼 불교에 다가오지 않던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남편은 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반가웠다. 기복신앙이라고 치부하던 남편이 절에 가자는 말을 꺼낼 땐 청량한 가을바람이 스쳐가는 것 같았다. 절로 향하는 길을 꽃이 반겼다. 코스모스가 핀 둑길을 따라 남편과 걸었다. 절에 도착했지만 남편은 주춤거렸다. 아직 법당에 발을 들여놓기가 낯선 모양이었다. 그래도 찬찬히 경내를 거닐었다. 남편의 시선이 멈춘 곳이 있었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전탑을 한참 지긋이 바라봤다. 불교대학에서 수업 받을 때 수다처럼 되뇌곤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남편이 절에 오면 성불하는 거야.” 농담처럼 했던 말인데 남편과 절을 찾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머지않아 남편이 부처님 전에 삼배로 절을 하며 예경하는 날이 오리라 여긴다. 그리고 불교는 자기성찰의 종교이며 하심의 종교이자 실천의 종교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날도 곧 오리라 믿는다.

부처님의 가피가 있다면 지금 현재 나에게 닿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의 병마가 이만하기가 얼마나 다행인가. 무엇보다 아프고 나니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졌다. 이 모든 것을 알아차린 것 역시 가피일 것이다. 나 역시 남편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한다. 원망이나 아쉬움이 없는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하는 이 순간을 감사하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조금씩 불교에 대해 마음을 열어가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돌아오는 다라니기도 날짜를 손꼽아 본다. 지금에 감사하며 남편이 병마를 잘 견딜 수 있기를 부처님 전에 기원 올린다. 항상 격려해주시는 부산불교교육원장과 소중한 도반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삼보에 귀의한다.

[1416호 / 2017년 1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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