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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마음은 눈이다

사람은 동물에게 없는 지력의 눈이 있다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 육안·천안·혜안·법안·불안부. 여시세존 여래유 육안·천안·혜안·법안·불안. 이소국토중 소유중생 약간종심 여래실지.

동물, 단안시서 쌍안시 진화
사람, 육안서 심안으로 발전
지력의 눈을 내부로 돌리면
법의 눈 되고 부처의 눈 돼

인간은 특이한 존재이다. 모든 감각의 70프로가 시각이다. 엄청난 양이다. 거의 모든 정보가 눈을 통해 들어온다. 시각의 중요성은 32상에도 나타난다. 부처님의 눈은 맑고 속눈썹도 길다. 바로 보려면 수정체가 맑고 먼지를 막아주는 속눈썹이 길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각에는 단안시(單眼視)와 쌍안시(雙眼視)가 있다. 전자는 사물을 이차원으로 보는 평면시(平面視)이고, 후자는 삼차원으로 보는 입체시이다. 삼차원으로 보려면 같은 물건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두 개의 눈이 필요하다. 그래서 쌍안시이다.

올챙이는 단안시이고 개구리는 쌍안시이다. 올챙이는 물속에서 살므로 물고기처럼 눈이 측면에 있다. 그래서 한 물건을 동시에 두 눈으로 보지 못한다. 그 결과 입체감을 느끼지 못한다.

생물종이 폭발적으로 많아진 캄브리아기(BC 5억 4100만~BC 4억 8800만)에 생물에게 눈이 생겼다. 바다가 맑아지면서 멀리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멀리 보게 되면서, 미래에 대한 예측 능력이 생겼다. 그전까지는 흐린 물속에서의 암중모색이었다.

하지만 물은 공기처럼 맑지 않으므로 잘 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통상 물고기들은 시력이 좋지 않다. 물고기들은 냄새·진동·소리에 의존한다. 소리는 공기 중에서보다 물속에서 빨리 움직인다. 거꾸로 빛은 물속보다 공기 중에서 더 빨리 움직인다. 육지 동물의 시각이 발달하는 이유이다. 진동도 그렇다. 한 물고기가 움직이면 그 여파가 상하사방 6방향으로 퍼진다. 다른 물고기는 그걸 옆줄에 있는 탐지기로 잡아낸다. 고래는 저주파를 이용해서 지구 반대쪽에 있는 고래와 통신을 한다. 인간보다 수십만 년이나 일찍 장거리 무선통신을 발명한 것이다.

뭍의 공기는 맑다. 공기의 밀도가 물보다 낮아, 소리는 물속에서처럼 빠른 속도로 이동하지 못하지만, 빛은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들이 시각을 개발하게 된 연유이다.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어 뭍으로 올라오면, 따로따로 놀던 좌우 눈이 둘을 연결하는 신경회로 건설을 통해 통합이 되면서, 입체를 보는 쌍안시로 바뀐다. 시신경이 두 눈이 시각정보를 교환함으로써 입체시인 쌍안시를 얻는다. 그러면 거리측정이 정밀해져 멀리 있는 파리를 향해 혀를 쏠 때 적중률이 높아진다. 그 결과 굶어죽을 위험은 줄어든다.

인간의 시력이 물고기나 파충류보다야 낫지만, 야간시(夜間視 밤눈)는 맹수보다, 원시(遠視)는 조류보다 못하다. 그럼에도 인간이 먹이사슬 최정상을 차지하게 된 것은 비물질적인 눈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자연과 생물의 변화와 행동에서 규칙 법칙 패턴을 찾고 추이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게 지력의 눈이다. 이걸 안으로 돌려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법안(法眼)이 된다. 그 결과 무아연기(無我緣起)를 깨달으면 혜안(慧眼)이고, 마음의 작동원리에 밝아져 '욕망이 격발하는 대로 끌려 살아가는 중생이 갈 길'이 환히 보이면 천안(天眼)이다. 모든 생의 마음의 고통에 공명하는 '비심(悲心)'과 그들을 구제하려는 '자심(慈心)'인 자비로 이어지면 불안(佛眼)이다.

육체의 눈은 단안시에서 쌍안시로 발달하고, 사람의 눈은 육안에서 심안으로 발달한다. 시간의 흐름을 보게 되면 사차원 입체시인 시공간시(時空間視)로 발달하고, 외경(外境)의 법칙을 발견하면 무정법안(無情法眼)을 얻고, 내경(內景)의 법칙을 발견하면 심안(心眼)을 얻게 된다. 일종의 식안(識眼)이다. 뇌 속에 있는 눈이다. 그게 천안·혜안·법안·불안이다. 의식의 진화는 심안의 진화이다.

부처님의 눈은 맑고 속눈썹이 길다. 외경에 속지 않고 (외경을) 왜곡하지 않고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 그 맑은 눈에 일체 중생의 마음이 비친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416호 / 2017년 1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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