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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종식과 불살생계

얼마 전 사회봉사단체를 이끌고 있는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로힝야족 난민문제의 실상을 파악하고, 지원을 위해 방글라데시와 미얀마의 국경지대에 함께 가지 않겠냐고 했다. 갑작스런 제안이라 일정상 어렵다고 했다. 혼자 다녀온 그 선배가 현지에서 기록한 참상을 전해 받고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폭력과 총탄에 맞아 숨진 그 시신들의 형체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선배는 이러한 현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 그 고통을 멈추게 하지 못하는 인류가 원망스럽다고 했다.

이 일상화된 폭력과 살상은 증오를 낳고, 언젠가는 보복을 낳는 악순환하는 길로 들어선다. 그 원인은 불교인과 회교도를 이용한 국가권력에게 있다. 한 울타리 안에서 종교를 동원하여 분리시키고 배제하는 타자화의 작업인 것이다. 이 현실을 주도하는 세력이 상생을 주장하는 불교도들인 점이 고통스럽다.

무자비한 폭력이 난무하는 전쟁의 목표 또한 온갖 무기를 사용해 서로 소진할 때까지 몰아세우는 것에 있다. 전쟁은 한 마디로 인간의 야만성을 보여주는 것 외에는 없다. 한국을 보라. 전쟁을 잠시 멈춘 휴전상태임에도 매년 수백 명의 젊은이가 군대에서 자살과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대치상태의 폭력구조가 하부에 고착화된 결과다.

몇 년 전 군대에서 병으로 죽은 고교동창 아들의 천도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자식을 그리워하는 그 부부의 애절한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 평범한 직장인인 이들의 휑한 눈빛과 초췌한 모습에 그저 부둥켜안고 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가슴이 무너졌다.

과거의 세계대전, 한국이나 베트남 전쟁, 또는 현재의 시리아 내전처럼 대규모가 아닐지라도 원한과 증오가 끊어지지 않는 한 전쟁은 우리의 일상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으며, 그 압력으로 고통은 이처럼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다.

종교는 어쩌면 문명의 비인간화를 무너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상극의 인간관계라는 사회적 한계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평화를 위한 지혜를 모으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열린 사람들은 평소에도 폭력이나 전쟁의 기획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수많은 경험의 교훈에서 보듯이 전쟁은 무기의 축적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무기 경쟁은 전쟁의 가능성을 높인다. 여기에는 여러 이해관계와 힘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남성적 방식으로 상대방의 존재를 무화시키고야 만다. 평택 대추리의 미군기지와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건설 반대운동, 그리고 성주의 사드철폐운동에서도 목격하듯이 수많은 여성들이 앞장서고 있는 것은 남성적 완력을 제거하기 위한 여성들의 본능적인 반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성을 포함한 부모의 자비로움이 극대화된 불교에서 출가 재가를 막론하고 첫 번째 계율로 내세운 불살생계를 더욱 폭넓게 보고 적극적인 전쟁종식으로까지 내세워야 한다. 탐욕과 화냄과 무명이 사회화되고 서로의 은혜로움을 망각함으로써 일어나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때문에 불살생계 또한 개인의 계행을 넘어 적극적인 반전사상으로까지 끌어올려야한다.

현실적으로는 튼튼한 국방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일상의 탐진치가 전쟁으로 가는 길을 막지 못하는 한 마왕(魔王)이 유혹하는 전쟁의 길을 막을 수 없다. 군비축소는 물론 기업과 국가 동맹이 생산하는 전쟁 물자를 반대하며, 남북한을 비롯한 적대관계의 국가들이 평화협정을 맺도록 해야 한다. 또한 행복추구를 위한 기본인권의 파괴가 이루어지는 로힝야족 난민문제에 불교도들이 참회의 마음으로 개입해야 한다.

불살생계를 이처럼 반전(反戰)과 종전(終戰), 그리고 평화를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핵심가치로 삼아야 한다.

원영상 원광대 정역원 연구교수 wonyosa@naver.com
 


[1417호 / 2017년 1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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