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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바리데기와 지옥서사

기자명 김성순

효를 최고 가치 삼았던 시대상 반영

‘바리데기’는 한국의 대표적인 서사무가로서 탄탄한 구성과 상징성을 갖추고 있으며, 분포된 지역도 넓다. 업비대왕의 일곱 번째 공주로 태어난 바리가 옥함에 넣은 채로 버려졌다가 석가세존에 의해 구제되는 서두 부분에서부터 이미 이 서사무가가 불교와의 진한 친연성을 갖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 서사무가지만
불교와의 친연성 근본바탕
자신버린 부모구제 나선 건
효 중심의 불교 신행상 반영

비리공덕 할아비와 할미에 의해 키워진 바리가 15세 되던 해에 그의 친부모가 한 날 한 시에 죽을병에 걸리게 되고, 치료약을 구해줄 수 있는 이는 오직 바리뿐임을 알게 된다. 바리를 버린 부모가 자신들의 병 치료를 위해 찾아오자, 그녀는 열 달 뱃속에 들어있었던 은공을 갚겠노라고 망설임 없이 약을 구하러 떠난다. 무쇠주령을 짚고 수천리 길을 한 번에 휙휙 가던 바리는 도중에 석가세존을 만나 낭화 세 가지와 금주령을 건네받는다.

신적인 존재들의 도움을 얻어가며 힘겹게 칼산지옥, 불산지옥, 독서지옥, 한빙지옥, 구렁지옥, 배암지옥, 물지옥, 흔암지옥, 무간 팔만사천지옥을 넘어선 바리는 ‘구름이 쉬어 넘고 바람도 쉬어 넘는 곳’에 다다르게 된다. 그곳에서 갖은 고생을 하지만 석가세존에게서 얻었던 낭화로 위기를 극복하고 뜻밖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 바리가 낭화를 흔들자 지옥이 무너져 내리고 지옥에 갇혀있던 죄인들이 풀려나게 된 것이다. 바리는 부서진 지옥에서 나온 죄인들에게 “서방정토 극락세계 삼십육만인 십일만 구천 오백 동명 동호 대자비 아미타불 극락세계 시왕 가리, 시왕 가고 극락 가리 극락 가소서”라고 천도의 공수를 내린다. 무속의 신녀라고 할 수 있는 바리가 지장보살이 갖고 있는 파지옥(破地獄)의 원력과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니 ‘짐승의 깃도 가라앉고 배도 없는 곳’에 도착한다. 길이 끊긴 바리가 석가세존에게 받은 금주령을 던지자 한 줄 무지개가 생겨나 그것을 타고 건너가게 된다. 도착한 곳에서 무장승을 만난 바리가 부모님을 구할 약수를 묻자, 삼년 동안 자신과 혼인하여 아이를 낳아줄 것을 청한다. 그렇게 무장승과 혼인하여 일곱 사내아이를 낳고 살던 중에 꿈을 통해 부모의 위독함을 감지한 바리가 급히 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무가에서는 돌아오던 바리가 정반대의 방향으로 향하는 두 척의 배를 보게 되는 장면을 빌어, 지옥행과 극락행에 대한 설명을 전개하고 있다. 즉, 고운 향기가 가득하여 맑은 기운을 띠고 오는 배는 망혼이 세상에 있을 적에 나라에 충신이요, 부모에 효도하고, 동기간에 우애 있고… 선왕제, 사십구제, 백일제 받아 극락세계로 왕생천도하여 가는 배이다. 이와 반대로, 활을 든 자, 총을 든 자, 창을 든 자, 머리 풀어 산발하고… 모진 악기(惡氣) 가득 차서 오는 배는 나라에 역적이요, 불효하고, 우애 없고, 만법 궁수에 비방한 죄로 한탕지옥 칼산지옥으로 가는 배이다.

이 부분은 바리공주 서사무가에서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업인이나, 극락행의 선인에 상당부분 유교적인 기준을 담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바리공주 무가가 만들어졌던 시기의 한국불교에서도 당시 사회의 중요한 가치였던 ‘효’를 제고하는 목련존자설화나 관련 경전 등을 적극적으로 유포하고, 민간에서 활발하게 천도재를 설행했던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무속인의 구송을 통해 바리가 지옥을 파하는 장면이 설행되면서 망자 천도의식이 절정에 이르게 되면 굿판에 모인 망자의 가족들 역시 정신적인 카타르시스를 얻게 된다. 이처럼 망자에 대한 천도가 산 자들의 정신적인 부담감, 그리움, 원망 등을 풀어내는 구제의식과 다름없다는 점이 바리데기의 서사무가의 생명력이 질기게 이어지게 되는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돌아오는 길에 부모의 상여행렬을 만나게 된 바리가 이미 죽은 부모의 시신에 약수를 뿌리자, 뼈와 살, 혼이 다시 살아나게 된다. 부모는 바리에게 보상을 해주고 싶어 했으나, 그녀는 모든 것을 마다하고 인도국왕 보살이 되어 죽은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이는 결국 신녀 바리데기가 지옥을 파하는 지장보살에 이어 인로보살의 기능까지 담지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김성순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shui1@naver.com
 


[1417호 / 2017년 1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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