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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김정민

기자명 김영욱

삼법(三法)으로 선(禪)을 깨우치다

▲ ‘미제’, 캔버스에 안료, 50×50cm, 2017년.

캔버스의 바탕에 부처가 그려진다. 이내 붉은색이 감싸고 푸른 먹이 뒤덮는다. 붉은색은 부처의 가사와 생성을, 푸른빛을 띤 검은 먹은 부처의 열반과 소멸을 상징한다.

캔버스 바탕에 그려진 부처
붉은색 감싸고 먹으로 덮어
생성과 열반·소멸 상징하다

그의 작품은 현묘하다. 아득하고 미묘하다. 그 이면을 헤아릴 수 없다. 시선은 검은 작품으로 향했다. 캔버스 위로 먹이 가득하다. 먹빛은 검고 푸르다. 그리고 붉다. 살펴보니 색이 뒤섞여 있다. 시선은 다시 옆으로 이동한다. 옆 작품처럼 검푸르고 붉다. 화면의 오른쪽 테두리에 캔버스의 미색이 보인다.

주제는 ‘삼법각선(三法覺禪)’이다. 먹색은 심연의 혼돈이다. 미색은 찰나의 생성과 소멸을 상징한다. 나는 혼돈의 생성과 소멸을 간직한 공간에 서 있다. 우두커니 감상하는 시간은 더욱 적막하기만 하다. 시선의 흔적 뒤로 두 그림이 지닌 먹색의 차이가 보인다. 흔적을 뒤따라가니 그 차이는 더욱 선명하다. 이제는 선명해진 두 작품을 두고 걸음 떼어 물러났다.

탁자 위에 놓인 자그마한 다기에서 우려진 보이차의 구수한 향이 진동한다. 첫 잔에 담긴 홍색은 이내 잔을 거치며 서서히 검게 변한다. 차는 본연이나 그 색은 변한다. 찻잔에 담긴 차는 사라지나 그 향은 남았다. 내가 마신 차의 본질은 보이차이다. 내가 본 차의 색깔은 여러 가지이다. 차를 마신 이후에는 차 맛의 여운, 그리고 그 향만이 뇌리에 남아있다. 곧 실체는 사라졌다.

벽에 걸린 두 캔버스와 보이차는 같다. 모두 불가의 삼법각선이다. 작가는 말한다. 불가의 선(禪)을 깨닫기
위해서는 삼법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삼법은 곧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이다. 그 색은 무상하고, 무상한 것은 괴롭고, 무상하고 괴로운 것에서 나의 존재는 없다는 것이 삼법의 핵심이다. 삼법에서 나는 없으니, 이는 공(空)이다. 작업의 시작은 내가 존재하지 않으며 나의 인식이 적용되지 않는 공의 본질 유무에 대한 물음에서 비롯되었다.

캔버스의 바탕에 부처가 그려진다. 이내 붉은색이 감싸고 푸른 먹이 뒤덮는다. 붉은색은 부처의 가사와 생성을, 푸른빛을 띤 검은 먹은 부처의 열반과 소멸을 상징한다. 생성과 소멸은 인연이다. 그 인연의 무상에 집착하면 괴롭다. 하지만 이내 실체가 없는 실체를 깨닫는 자신을 반추한다. 이윽고 부처의 존재를 인지한다. 이러한 과정 자체가 김정민 작가의 작업 목적이다. 즉 부처 존재에 대한 답은 없다. 그러기에 먹의 선(禪)으로 혼돈을 가득 채워 그 현묘한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다. 차를 권한 것 또한 차의 본질에 빗대어 자신의 작업을 나에게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그도, 나도 불자(佛者)는 아니다. 그는 먹을 통한 참선으로 자신의 마음과 마주하여 부처의 존재를 찾고자 한 것이다. 나는 그가 수행한 참선의 결과를 보고 이해한 부처의 존재를 글로 남길 뿐이다. 절집 찾아 부처에게 절을 하든지, 한적한 경당에서 경전을 읽든지, 혹은 참선을 하든지, 장소 불문하고 염불을 외든지, 그림으로 부처를 마주하든지, 글로 부처를 담아내든지. 행위의 실체는 변하고 다르지만, 그 의미는 오히려 한 가지가 아닌가. 의미를 깨우치면 말을 잃어버린다. 그저 그 순간을 음미하면 된다. 마치 보이차 한 잔 마신 것처럼.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17호 / 2017년 1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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