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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바그너와 리스트의 심리적 성격

우리에겐 정녕 모순된 면이 없는 것일까

▲ 그림=근호

음악가 중 가장 오만했던 사람은 아마도 바그너일 것이다.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자신이 맡은 모든 일에 간섭했는데, 심지어는 극장 세트의 못 하나를 박는 일까지도 그의 허락이 필요했을 정도였다.

마음은 이론만으로 포착할 수 없어
예측 범주에서 벗어나는 경우 많아
마음 다스리는 것은 복잡·미묘한 일

이렇듯 혹독하고 철저한 성격은 그로 하여금 한편으로는 자신의 음악을 완성하는 위대한 작곡가가 될 수 있게 해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독불장군 성격을 가진 바그너는 다른 천재 음악가들을 잘 인정하지 않았다. 바그너가 성공을 거둔 것은 인생 후반의 일로, 그는 젊은 시절 무명의 설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젊은 시절 그는 당시 스타로서의 명성을 누리고 있던 리스트를 선망과 질투심에 사로잡힌 눈으로 바라보았다.

리스트는 젊은 시절부터 오늘날의 오빠 부대의 원형이라고 할 팬을 확보하였던 조숙한 천재였다. 그것은 현란한 피아노 연주 솜씨를 갖고 있었던 데서 얻어진 것이지만, 거기에 더하여 그는 청중을 압도하는 쇼맨십과 늘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진보적이고 창의성이 넘치는 음악 정신을 갖고 있었다.

피아노 교습서로서 오늘날에도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체르니는 리스트가 어렸을 때 그를 14개월 동안 지도한 적이 있었다. 체르니는 리스트를 가르쳐 본 뒤에 “이렇게 열성적이고 재능이 많고 부지런한 학생은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불과 열한 살에 불과했다.

이처럼 십대 시절부터 피아노의 비르투오소(최고의 실력을 가진 연주자)로서 명성을 쌓기 시작한 리스트는 작곡가로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에 비해 바그너는 30세가 넘어서야 자신의 주요 작품을 발표하였으므로 리스트에 비할 때 그의 출세는 매우 늦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그너는 훗날 이렇게 고백하였다.

“처음 리스트는 나 자신의 존재나 상황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으로 비쳤다. 리스트는 내가 나의 비참한 환경으로부터 도망가고자 하는 욕망의 대상이었던 파리인들의 세계 한가운데서 자라났고 대중의 사랑과 찬미의 대상이 되어 왔는데, 이곳에서 나는 아무런 공감을 얻지도 못하고 전반적인 냉담에 직면해 있었던 것이다.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나는 우호적이고 친절한 그의 태도를 편견 없이 볼 수 없었다. 그의 태도는 나를 약 오르게 할 뿐이었다. 나는 그를 방문하지 않았다. 그를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채, 나는 그를 낯선 사람, 적의를 가진 사람으로 생각하려고 애썼다.”

바그너는 리스트에게 적대적인 발언을 하기 시작했고, 그의 비난이 리스트에게 전해졌다. 당시 마침 바그너의 오페라 ‘리엔치’가 드렌스덴에서 공연되어 일반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는데, 리스트는 바그너에 대해 알기 위해서 먼저 ‘리엔치’ 공연을 보았다. 리스트는 바그너의 음악에 매혹되었고, 그때 이후 바그너의 예찬자가 되었다.

바그너의 예찬은 리스트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호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고, 그에 힘입어 대중은 바그너 쪽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이런 경과를 거쳐 바그너는 마침내 리스트의 우정을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운명은 그들을 가족으로 묶어 주었다. 리스트의 둘째 딸인 코지마가 남편 폰 뷜로를 떠나 바그너의 아내가 되었던 것이다.

1883년 2월 바그너는 장인보다 3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당시 리스트는 음악의 삶을 접고 성직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매우 복잡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한편으로는 성직자가 되고 싶어하고, 실제로 되었을 정도로 세속적인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명성을 갈망하는 속물 근성이 있었다. 리스트는 허영심과 함께 관대함을, 바람기와 함께 종교성을 지닌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이다.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 궁정에서 있었던 연주회에서 황제 니콜라스는 리스트가 연주를 하는 동안 옆에 앉은 어떤 여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것을 안 리스트는 곡이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시 건반 위에 손을 놓은 채 가만히 있었다.

음악이 그치자 황제가 피아니스트에게 물었다.

“왜 연주를 멈추는가?”
“황제가 말씀을 하실 때에는 조용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리스트는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여겨지면 황제 앞이라 할지라도 연주를 멈출 정도로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신감 내지 오만함이 있었다. 그런 한편 그에게는 진정으로 위대한 것 앞에 머리를 숙일 줄 아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 긍부 양면을 모두 지닌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마음에 대한 이런저런 심리학 이론을 알고 있다. ‘마음의 종교’라고도 불리는 불교 또한 이름에 걸맞게 수많은 이론을 제시하며 마음을 설명한다.

하지만 마음은 이론만으로는 모두 포착할 수 없다. 마음에 관한 이론은 마음이 움직이는 대강의 체계를 설명해줄 뿐 정밀한 구석구석까지는 드러내 보여주지 못한다. 마음이 운용되는 실제 현장에서 마음은 이론이 예측하는 범주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저런 행동을 하고, 저런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는 사례를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리하르트 바그너처럼 독선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의 행동 양상은 대체로 일관되므로 우리는 이론을 통해 그의 행동 방식을 거의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거룩한 성직자로서의 면과 함께 속물근성을 지녔던 리스트의 경우는 다르다. 나아가 세상에는 리스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더 모순된 성격을 가진 사람이 많다.

하도 희한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요즈음이다. 조신하고 온유한 성품을 가진 것으로 보였던 초등학교 여교사가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과 성적 문란행위를 한 사례가 그중 하나이다. 평소에는 점잖은 신사로 행동하던 사람이 갑자기 자신이 기르던 개를 우산으로 쳐서 죽이는 사례도 그중 하나이다.

부처님이나 신을 모셔 놓은 거룩한 공간에서 위대한 말씀을 전하는 종교 지도자들 중에도 그런 모순된 이가 있다.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리고, 우리들에게는 그런 모순된 면이 정녕 없는 것일까.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며,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하는 것일까.

마음을 알고 다스린다는 것, 그것은 한마디 말, 몇 가지 이론으로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미묘한 일이다. 그렇게 삶은 어렵다. 한 불교인으로서 올바르게 서서 걷는 일은 그렇게 어렵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417호 / 2017년 1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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