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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손 절단되고 남편은 암으로 세상 떠나

  • 상생
  • 입력 2017.12.01 16:33
  • 수정 2017.12.11 11:20
  • 댓글 2

조계사·화계사·법보신문 이주민돕기 공동캠페인

▲ 딸이 그린 가족 앨범을 보는 채령씨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벼랑 끝 선 이주여성 채랭씨
하나 남은 손, 노동도 불가능
감당키 힘든 병원비에 한숨
8세 딸과 매일 눈물만 흘려

“여보, 저 병원 다녀올께요.”

캄보디아 이주민 채랭(38)씨는 책꽂이 한켠에 놓인 남편의 영정 사진에 인사를 하고 병원으로 향한다. 갑작스런 췌장암 판정 후 2개월이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 남편이 아직 곁에 있는 것만 같아서다.

채랭씨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한국행을 결심했다. 신발공장에 다니며 내장질환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의 병원비와 가족들의 생활비를 벌었지만 역부족이었다. 한국으로 시집가면 나아질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으로 두렵지만 선택한 결혼이었다. 2009년 남편을 만난 채랭씨는 선한 인상과 믿음직스러운 모습에 금세 마음이 갔다. 특히 남편의 사려 깊은 행동에 사랑의 감정은 점점 커졌다.

그렇게 만난 남편은 시작부터 많은 배려를 해줬다. “한국에 가면 캄보디아로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병든 어머니를 돌볼 수 있게 1년의 말미를 줬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한국으로 왔지만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열심히 배웠다. 한국말과 한국요리, 그리고 남편 일을 돕기 위해 흑염소 키우는 법까지 익히느라 매일이 바빴다. 그런 중에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남편은 두말하지 않고 여비를 내주며 다녀오라고 했다. 딸을 본 어머니는 조금 회복됐고 채랭씨는 안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보름도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슬픔으로 하루하루 보내던 중 새 생명이 잉태됐다. 그렇게 태어난 딸은 어머니가 보내준 선물 같았기에 더욱 소중했다. 식구가 늘어나자 흑염소를 키우는 일로는 생활이 빠듯했다. 떡집, 김밥공장, 김치공장 등에 다니며 생계를 책임졌다. 남편은 딸아이 보육을 전담했다. 일을 다녀오면 몸이 녹초가 됐지만 딸의 얼굴을 보면 피로는 눈 녹듯이 사라졌다.

“아침 일찍 나가 하루 종일 일을 하고 피곤에 지쳐 돌아온 저에게 딸아이가 다가와 안기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습니다. 그저 우리 세 식구 배고프지만 않게 산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어요.”

채랭 씨가 생계를 위해 김치공장에 취직한 건 5년 전이었다. 무엇이든 열심히 배우고 성실하게 일했기에 작업반장을 도와 주도적으로 김치를 만들었다. 사고가 있던 날도 일이 다 끝났지만 남은 시간에 다음날 만들 김치 속을 준비했다. 양파, 무, 생강 등을 기계에 넣고 갈았는데 그날따라 잘 돌아가지 않았다. 천천히 돌아가는 틈을 타 기계를 만지는 순간 갑작스레 돌아간 칼날에 채랭씨의 오른손이 반 이상 잘리고 말았다. 곧바로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검지 손가락은 살리지 못했다.

불행한 일은 그치지 않았다. 남편의 간호를 받으며 통원치료를 하던 어느 날 남편이 배가 아프다고 호소했다. 검사를 해보니 췌장암 말기였다. 수술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 약을 먹으며 연명하던 남편은 1달 후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8살 딸아이와 함께 남겨진 채랭씨는 앞으로 살일이 막막하다. 봉합수술을 했지만 검지 손가락은 이미 신경이 죽어 잘라버렸고 나머지 손가락도 감각을 살리려 매일매일 물리치료를 하고 있다. 몸이 건강하다면 타고난 성실함으로 아이를 건사할 수 있겠지만 왼 손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곤 쓰러져가는 집과 쌓여가는 병원비 뿐이다.

“소중한 가족을 만들 수 있었던 한국은 저에게 제2의 고향과 같아요. 어린 딸과 함께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일일시호일. 02)725-7014

조장희 기자 banya@beopbo.com

[1418호 / 2017년 1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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