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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북한문화재의 외화벌이용 밀반출 루트

기자명 이숙희

두만강·압록강 접경 중국도시 통해 국내 유입

▲ 중국과 북한이 마주한 두만강 접경지대.

1990년대에 들어 북한의 경제사정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북한 주민들이 생계유지 수단으로 고분을 도굴하여 문화재를 중국으로 밀반출하는 횟수가 크게 늘어났다. 2005년 이후에는 문화재가 돈이 된다는 이유로 북한 전 지역에서 북한 주민은 물론이고 당 간부들까지 고분 도굴과 밀반출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도굴 행위는 주로 황해도, 개성, 함경남도에 있는 옛무덤에서 이루어졌는데 특히 함경남도 양덕에서 많은 유물이 나왔다. 북한에서 도굴된 문화재들은 대개 신의주를 통해 낮은 가격으로 중국 고미술상과 거래되고 그중 일부만 고가에 우리 고미술상들에게 팔리고 있다. 1990년대에 시작된 북한 문화재의 밀거래는 몇 년 만에 거대한 시장이 되었다.

북한 경제 상황 어려워지면서
고분 도굴 문화재 반출 급증

돈 된다는 이유로 전 지역서
주민 물론 당 간부까지 가담

개성·함남 양덕 등 무덤서 진행
공공기관 소장 문화재도 거래

중국은 북한 문화재 밀반출과
불법거래·유통 이뤄지는 시장

북한에서는 도굴문화재 외에 박물관 등 공공기관에 소장된 문화재까지도 밀반출되고 있다. 1990년에는 황해남도 신원군 장수산 일대의 남평양 유적지에서 발견된 고려 동경과 조선시대의 숟가락 등 많은 유물이 일본으로 밀반출되었다. 1992년에는 평양시 외곽에 있는 사찰에 보관된 불상, 벼루, 팔만대장경 번역본과 개성 고분에서 발굴된 청자 등 고려시대의 유물이 중국으로 밀반출된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평양력사박물관’에 있는 조선시대 유물이 도난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하였다.

북한의 국보급 문화재가 어떻게 반출되어 국내로 유입될 수 있었을까? 북한의 경우는 1994년 4월7일에 제정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문화유물보호법’(약칭 문화유물보호법)에 의거하여 문화재를 보호, 관리하고 있다. 문화재의 범위는 역사적 물질·문화에 치중하여 문화유적과 문화유물로 분류되었으나, 2012년 개정되면서 비물질문화유산(무형문화유산을 의미)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문화재 자체로서의 가치에 대한 인식보다는 혁명과 체제유지라고 하는 국가의 핵심적 가치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정치·사회적 기능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은 1990년 이후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문화유물의 발굴과 복원, 보존사업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왔던 것이다. 

북한 문화재는 주로 두만강과 압록강의 접경지대를 통해 중국 단동, 연길, 심양, 북경 등으로 흘러들어온 후 밀거래가 이루어지면서 우리나라로 유입되었다. 10년 전만 해도 중국 단동, 심양, 연길에 가면 북한 문화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밀매업자와 이를 내다 파는 조선족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중국으로 밀반출되는 북한 문화재는 상당수 북한 관계 당국의 직·간접적인 지원 또는 묵인 아래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정무원 기관별로 운영되는 각 외화벌이 사업소에서 직접 고분을 발굴하거나 각 가정에 있는 골동품을 매입하여 해외로 반출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할당된 외화를 벌기 위해 서로 심하게 견제하는 등 내부적으로 많은 알력과 문제점이 있다.

북한 문화재가 유출되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압록강을 통해 중국 단동으로 유입되는 경로와 함경북도 무산에서 두만강을 건너 중국 남평과 용정을 거쳐 연길로 유입되는 경로이다. 특히 압록강을 통해 단동으로 들어오는 경로가 문화재 밀반출에 가장 많이 이용되었던 길이다.

▲ 압록강 철교.

2005년 12월에 문화재청에서 기획한 ‘해외의 문화재 반출·입 유통 및 감정제도’ 실태조사를 했을 때 그곳에 간적이 있다. 중국 단동과 남평에서 직접 바라본 압록강과 두만강은 머릿속에 늘 그려왔던 그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너무도 광대해서 근접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압록강과 두만강은 마냥 넓기만 한 것이 아니고 상류지역으로 올라가면 강의 폭이 거의 100m 정도로 좁아지면서 수심이 얕아지는 곳이 있었다.(사진 1) 한여름에 비가 온 뒤 물이 꽉 차서 멱을 감고 놀았던 우리 동네의 개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좁고 얕은 강 길을 따라 여름에는 헤엄을 쳐서 건너오고 겨울에는 영하 20도가 넘는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강 위를 단숨에 뛰어서 중국 땅으로 넘어오는 것이다. 국경선이라고는 해도 북한 초소가 군데군데 있고 북한 군인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간혹 보일 뿐 철조망과 같은 경계선이 없어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중국 단동에서 압록강 쪽을 바라보니 철교 건너편으로 멀리 북한 땅인 함경북도 신의주가 보였다. 낡고 초라한 집들과 함께 드문드문 일하다가 손을 흔드는 북한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반면에 단동의 압록강변에는 아파트와 관광호텔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렇듯, 중국과 북한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너무나 다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압록강 철교는 일제강점기인 1943년에 만들어진 것이다.(사진 2) 기찻길과 차도가 함께 놓여 있으며 지금은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라고 부른다. 이 철교 바로 옆에 1950년 한국전쟁 때 미군의 폭격에 의해 끊어진 단교가 또 하나 있다. 압록강 단교는 원래 배가 지나갈 수 있도록 다리의 상판을 올릴 수 있게 만들어졌는데 중국 쪽만 일부 복원되어 있고 북한쪽에는 교각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신압록강대교는 2014년 10월에 완공되었으나 아직 개통되지 않았다. 앞으로 개통된다면 단동에서 신의주로 그리고 평양까지 고속도로로 연결될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길인 중국 남평진에서 두만강변 도로를 따라 호암산(虎岩山)에 올라서서 보면, 눈으로 덮인 산길 속에서도 멀리 아득히 굽이굽이 흐르는 두만강의 모습이 그대로 펼쳐졌다. 왠지 멀리서 보는 두만강에서는 쓸쓸한 정취가 느껴졌다. 이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는 북한의 철광도시인 함경북도 무산시가 보인다. 무산시는 아시아 최대의 노천 철광지로 알려진 곳이나 지금은 채굴과 선광에 필요한 각종 설비가 심하게 낙후되어 이전보다 생산량이 줄어든 상태다. 겉으로는 여느 다른 도시와 별반 차이가 없지만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삭막하다 못해 황량하기까지 하다.

몇 년 전에 중국이 두만강 상류에서부터 하류지역까지 철조망을 설치하였다. 이는 국경을 통한 마약밀수나 문화재 밀반출, 인신매매 등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지만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막으려는 목적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압록강과 두만강은 그냥 강이 아니라 우리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넘을 수 없는 커다란 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북한 사람들이 문화재를 밀반출하는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사실인가? 가난과 배고픔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문화재를 밀반출하는 북한 사람들에게는 경제적인 부를 꿈꾸면서 넘어오는 길일 것이다.

이 글은 해외 문화재의 반·출입과 유통과정을 조사하러 갔을 때 알게 된 내용을 간략하게 적은 것이다.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러갔고 그 사이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 설령, 중국과 북한의 관계에 변화가 오더라도 북한 체제 특성상 북한 문화재의 밀반출과 불법거래, 유통이 이루어지는 유일한 시장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의 역할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418호 / 2017년 1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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