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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황동규의 ‘풍장(風葬)’

기자명 김형중

1982년부터 1995년까지 70편 연작
자연회귀 통해 죽음 친화를 읊은 시

풍장은 서남해지방 있던 풍속
애지중지한 육신에 대한 집착
시신 자연스런 소멸해체 통해
생사 자유로운 해탈 염원 담아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퉁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바람 속에서 빛나게 해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죽음은 철이 없을 때는 쉽게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 많아서 가장 쉬운 일인데, 나이가 들면 가장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천하를 주고도 피하고 싶은 것이 죽음이다. 자신의 죽음을 상상해 보라. 어느 날 갑자기 사마(死魔)가 들이닥치면 인간은 한없이 무력하고 처참해진다.

집착은 모든 고통을 만드는 근원이다. 수많은 집착 가운데 가장 큰 집착이 죽음 앞에서 마지막까지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집착이다. 법상(法床)에 앉아 주장자를 짚고 대중을 향하여 “나 간다. 잘들 살아라” 하고 떠나는 선사의 모습은 죽음을 초탈한 품위 있는 죽음이다. 멋있는 죽음이다.

수행이 완성된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죽음 앞에서 쩔쩔매고, 재물과 여색에 집착한 사람을 고륜중생이라고 한다.

사후의 세계는 알 수가 없다. 죽었다가 살아 온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후세계는 증명할 수도, 실체를 확인할 수도 없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종교가 생겼고, 살아있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믿는가에 따라 극락과 천당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장례 방법도 민족과 지역에 따라 토장(土葬), 봉분(封墳), 화장(火葬), 조장(鳥葬), 수장(水葬),수목장(樹木葬), 풍장(風葬) 등으로 다양하다. 풍장은 시신을 지상에 노출시켜 자연히 소멸시키는 장례법으로 중국의 서역지방과 우리나라의 서남해지방에서 행해졌던 풍속이다.

무상게(無常偈)에서 “영가여, 머리털과 손톱과 이발과 가죽과 살과 힘줄과 뼈와 해골은 모두 땅(土)으로 돌아가고, 가래침과 고름과 피와 진액과 눈물과 대소변은 모두 물(水)로 돌아가고, 더운 기운은 불(火)로 돌아가고, 움직이는 기운은 바람(風)으로 돌아가서 사대(四大)가 각각 서로 헤어지나니 오늘 없어진 몸은 어느 곳에 갔을고?” 하였듯이 시인은 ‘풍장’의 마지막 절에서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하였다.

황동규(1938~현재) 시인의 ‘풍장’은 1982년에 시작하여 1995년까지 발표된 저력과 내공이 깃든 70편의 연작시이다. “내 세상을 뜨면 풍장시켜 다오”(풍장1)에서처럼 자신의 죽음에 대한 유서 형식으로 쓴 시이다.

시인은 죽음과 맞대결하는 비장한 어조로 죽음을 초탈하는 과정인 자연회귀를 통한 죽음에 대한 친화를 읊고 있다. 평생을 애지중지해 왔던 육신에 대한 집착을 시신의 자연스런 소멸해체를 통해 생사의 자유로운 해탈을 얻으려는 염원이 나타나 있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19호 / 2017년 12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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