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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불교계 양심수들

‘화쟁’ ‘생명평화’ 외치며
멸빈자 외면은 위선 불과
대탕평 이번엔 이뤄져야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12월13일 기자회견에서 종단을 정치 집단화시킨 근본 원인으로 선거제도를 꼽았고 이를 적극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또 “종단이 반목을 끝내고 대화합을 이뤄 새 출발할 수 있도록 대탕평의 시간을 갖겠다”며 최근 몇 년간 논의돼온 멸빈자(체탈도첩자) 사면 의지를 밝혔다. 설정 스님이 1994년 종단개혁 당시 개혁회의 법제위원장을 지냈다는 점에서 이번에는 멸빈자 사면이 실현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1994년 종단개혁과정에서 멸빈 처분을 받은 스님들을 구제하기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시도됐다. 총무원장이었던 법장, 지관, 자승 스님이 사면을 위해 무던히 애썼고, 전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과 전 원로의장 밀운 스님은 사면을 당부하는 유시를 발표했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을 지닌 중앙종회의 벽을 번번이 넘지 못했다.

설정 스님을 비롯해 종단 중진스님들이 줄기차게 사면을 주장했던 것은 1994년 징계 결정으로 ‘스님 아닌 스님’으로 20년이 넘는 세월을 아프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재판을 담당한 호계위원회가 멸빈을 결정한 스님은 3선을 강행했던 의현 총무원장을 포함해 9명이다. 이 중에는 의현 스님 측근이라는 이유로, 총무원 집행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이들이 적지 않다. 율장에서조차 세간의 사형에 해당하는 멸빈은 음욕죄를 저지르고 숨기거나 반복적으로 저지르는 출가자 이외에는 적용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달이 지나면 세수로 83살이 되는 원두 스님과 종원 스님도 그때 멸빈을 당했다. 당시 원로회의 사무처장이었던 원두 스님의 멸빈 사유는 집행부 비방 및 개혁종단 부정‧비판 석명서(釋明書) 발표였다. 불국사 주지였던 종원 스님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의현 총무원장이 고용한 폭력배들의 호텔 비용을 내줬다는 이유로 제적됐다. 그러나 스님은 호텔 숙박자의 내용과 비용을 전혀 알지 못했고, 해당 호텔 영업부장의 증언을 담은 사실확인서를 제출했다. 호계원은 이를 받아들였음에도 공권정지 1년의 징계에 처했다. 종원 스님은 6개월 남은 불국사 주지 임기를 마쳐야겠다는 생각으로 법원에 ‘주지지위보전 가처분’과 ‘사찰진입금지 가처분’을 제기하자 호계원은 사회법에 제소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곧바로 멸빈 징계를 내렸다.

동국대 이사장을 역임한 진경 스님도 총무원장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을 제기해 똑같은 멸빈을 당했다. 심지어 개혁종단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지면에 실었다는 이유로 멸빈 처분을 받아야 했던 스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이행돼야할 법 절차가 상당부분 무시됐고, 이 때문에 호계위원에서 스스로 물러난 이들도 여럿이다.

▲ 이재형 국장

 

1994년 종단개혁은 민주화 물결 속에서 이뤄낸 혁명적 사건이다. 그렇더라도 이제는 개혁 과정에서 발생한 비불교적인 요소와 상처들을 돌아봐야 한다. 23년이 지난 지금까지 삶의 막바지에 이른 이들의 아픔과 억울함을 외면하면서 불교계 안팎을 향해 “종교간 화합” “화쟁” “생명평화” “사회통합” “양심수 석방” 등을 외치는 것은 지독한 위선에 불과하다.

‘대탕평’이 명백한 잘못까지 덮고 갈 수는 없다. 오히려 잘잘못을 철저히 규명해 종법에 걸맞은 징계가 이뤄져야 한다. 다만 적법한 절차 없이 징계 받은 이들의 한과 눈물을 이번에는 반드시 닦아주어야 한다. 그것이 화합승가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420호 / 2017년 1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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