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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기자명 조정육

“사람의 천진불성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지”

▲ 고권, ‘간절한 뱀’, 210×150cm, 장지에 아크릴릭, 2017. 제주의 섶섬에는 빨간 귀가 달린 뱀의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뱀은 용이 되고 싶어 용왕님께 빌었다. 용왕님은 뱀의 간절한 기도를 듣고서 바닷속에 숨겨놓은 여의주를 찾으면 용이 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뱀은 여의주를 찾기 위해 100년 동안 바다 속을 헤매었으나 실패하고 죽고 말았다. 작가는 뱀의 전설을 그리면서 좌절 대신 자족감을 그렸다. 여의주를 찾지 못해도 찾아가는 과정으로도 충분하다는 긍정에 대한 찬사다.

“지금 뭐하세요? 저녁은 드셨어요?”

지방대 출신 아들 카이스트 입사
연구원 발탁 자랑하는 것도 잠깐
석박사 부하직원 입사에 스트레스
그만두고 싶다는 아들 위로 격려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에 대해
인광대사, 견성성불 가르침 설파
“복덕과 지혜로서 성불도 완성해” 

어젯밤에 큰아들이 전화를 했다. 시시때때로 카톡을 하면서 별로 궁금할 것도 없는데 새삼스럽게 안부인사가 길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이럴 때는 스스로 고민을 털어놓을 때까지 계속 얘기를 들어줘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주위를 빙빙 돌듯 겉돌기만 하더니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지잡대(지방의 잡 대학) 출신 1년차 직장인이 겪을만한 고민이었다.

큰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운 좋게 바로 취직을 했다. 작은 중소기업이었지만 자신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직장이라 만족스러워했다. 그곳에 다닌지 석 달도 되지 않아 더 운 좋은 일이 생겼다. 대학 때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카이스트에 있는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발탁이 된 것이다. 개인에게도 영광이었고 대학으로도 자랑거리였다. 대학 졸업식 때는 큰아들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가 학교 건물외벽에 걸렸다.

“너희들이 지잡대라고 생각하는 이 학교에서도 열심히만 하면 카이스트 같은 ‘엄청난’ 학교에 취직할 수 있다.”

어깨가 쳐진 학생들에게 선배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는 그런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 같았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취직하고 나서부터가 문제였다. 입사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큰아들 밑으로 직원 두 명이 충원 되었다. 카이스트 석사 출신과 박사 출신이었다. 두 사람은 가방끈이 긴 만큼 큰아들보다 연봉이 많았다. 전문지식 또한 학부 출신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차이가 났다. 지잡대 학부 출신이 카이스트 석사와 박사를 부하 직원으로 거느리게 됐으니 그 고충이 미루어 짐작될만하다. 연구소장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카이스트교수다. 저간의 사정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 큰아들이 학부출신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금만 문제가 있어도 인정사정 봐 주는 법 없이 다그쳤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받은 미션은 무조건 기한 내에 완벽하게 제출하게 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카이스트 석박사생 앞에서 발표까지 시켰다. 내일 아침에도 회의시간에 자신이 발표를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교수가 내 준 문제를 다 풀지 못했단다. 대학에서 배운 알량한 지식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문제였다.

큰아들은 자신이 받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부하직원인 박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자존심을 생각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공개해야 하는 수치스러움을 감수하면서 박사 직원에게 물으면 그 대답이 너무나 간단했다. 조금만 들어가도 금세 바닥이 드러나는 학부출신에게 한 두 번의 설명으로 이해될 문제가 아니었다. 박사에게는 문제도 아닌 상식이 학부출신에게는 난해하기 그지없는 수학공식이었다. 박사도 자신의 미션을 수행하느라 바빠 학부 출신 상사에게 차근차근하게 설명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 과정에서 큰아들은 자괴감을 느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고 했다. 그동안 뭐하면서 살았는지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했고 공부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해서 차라리 조금 편한 곳으로 옮길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마침 친한 친구 한 명이 대기업을 다니다가 힘들어서 공기업으로 옮겼는데 아주 편하다고 했다면서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다. 아들의 얘기를 들은 나는 즉각 대답했다.  

“우리 아들 대단하네. 직장생활한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벌써 네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말이야? 그것이야말로  진짜 네가 공부가 많이 됐다는 거야. 생각해봐. 네가 대학 다닐 때는 이런 고민을 했는지. 그때는 네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몰랐잖아. 지금은 적어도 네가 무엇을 모르는지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대단한 거지. 그럼 명확하네. 이제부터 모르는 것을 공부하면 되잖아. 그리고 네 교수가 너를 갈구는 것은 네가 미워서가 아니야. 오히려 네가 가능성이 있으니까 너를 키우기 위해서 그러는 거야. 만약 너를 심부름만 시킬 직원으로만  생각했다면 귀찮을 텐데 굳이 이것저것 어려운 문제를 내면서 확인하겠니? 그러니까 내일 프리젠테이션을 완벽하게 하지 못해도 그것을 탓하지는 않을 거야. 대신 네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공부 정도를 점검할 테니까 너는 지금까지 아는 범위 내에서 성실하게 발표해봐. 대신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했다가는 박살이 날 수 있으니까 괜히 선수 앞에서 속일 생각하지 말고. 그래도 정 여기를 그만두고 싶다면 언제든지 그만 둬.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일단 네가 여기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된 후 업무 수행에 대한 자신감이 생길 때 그만둬야지 지금 그만 두면 안 돼. 그렇게 도망치듯 그만 두면 그 좌절감이 평생 너를 뒤따라 다니게 되니까 일단 여기서 끝장을 내야 돼.”

아들한테 한 얘기는 나 자신에게 한 얘기나 마찬가지다. 한때 나는 깨달음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깨달음을 얻으면 곧바로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화신과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여겼는데 그 이후에도 여전히 부처의 모습과는 상관없는 내 마음 상태를 들여다보고는 몹시 실망했다. 확철대오가 아니라서 그런가, 나는 아직 멀었을까? 온갖 의구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광대사(印光大師, 1861~1940) 가언록인 ‘단박에 윤회를 끊는 가르침’에서 찾았다. 인광대사는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온 까닭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부처님의 마음 새김(佛心印)을 전하고 사람 마음을 곧장 가리켜서(直指人心), 본성을 보고 부처가 되게(見性成佛)하기 위함이었소. 그러나 여기서 보고 이룬다는 것은, 우리 사람들의 마음에 본래 갖추어진 천진불성(天眞佛成)을 가리켜 말함이오, 사람들에게 먼저 그 근본을 알아차리게 하면 수행과 증득의 법문은 모두 그 인식을 바탕으로 스스로 나아갈 수 있으며 마침내 더 이상 닦을 게 없고 더 이상 증득할 것도 없는, 궁극의 경지에서 저절로 그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오. 한번 깨달음과 동시에, 곧장 복덕과 지혜가 함께 나란히 갖추어지고 궁극의 불도(佛道)가 원만히 이루어진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라오.”

오늘 점심 무렵 아들이 다시 전화를 했다. 준비한 만큼 발표했더니 이것저것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주고 무사히 넘어갔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아들의 목소리에는 뿌듯함이 담겨 있었다. 나도 아들처럼 공부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420호 / 2017년 1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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