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8. 박은신 작가

기자명 구담 스님

선 중심 불화에 회화적 영감 불어넣어

▲ ‘눈물의 우주’, 장지에 분채, 145×107cm, 2016년.

봄 매화를 보기 위해 선운사로 간다. 뼛속 사무치는 추위를 이겨낸 향기 따라, 어린 민초의 삶을 돌아보고, 고통에 대한 아픔을 생각한다, 우리는 어떻게 역사 속에 동참하고 있는가, 수많은 선재 선재들이여, 작가 박은신에게 있어 꽃은 수행자의 마음이다.

서양화 전공에도 동양화 관심
현대불화 열망하는 작가에게
새로운 모색의 모범답안 제시

부친이 한때 신부를 지망할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으나, 성장하면서 차츰 과학이나 천문학 등 철학적 사유와 잘 어울리는 불교에 빠져들게 되었다. 작품 주제의 관념적인 경향에 대해 작가는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대개가 불교와 관련이 있거나 중생들의 고통으로 점철되어있다는 점, 또 현대적 시사에 있어 내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그림의 주제로 집약되었다라고 말한다.    

만해 한용운의 시 고적한 밤에서 모티프를 얻은 ‘눈물의 우주’는 수월관음도를 재해석했다.  어디엔가 걸터앉은 부분 도상에 청색 바탕의 배경이 이채롭다. 우주의 별자리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밤하늘을 수놓는데, 그림에서 가장 상징이라 할 선재동자 자리에는 꽃 한 송이만이 선연할 뿐이다. 투명한 사라 천의 사이로 영락 구슬과 문양이 화려한 가운데 기존의 오방색이 아닌 밝은 색 계열과 청색이 어우러져 전통 불화와 다른 묘미를 선보인다. 또 관음상의 손과 발은 마치 실제 사람의 인체처럼 사실적인데, 이런 세부 묘사는 고전적인 32상 80종호의 살집이 통통한 상징적 이미지와 격을 달리한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전통 불화의 특징인 선묘 중심의 기법을 잃지 않으면서 청색 바탕의 실감나는 서정적인 세부묘사를 표현하는 등 불화의 현대적 수작이라고 논할 수 있겠다. 동시에 선재동자를 대체하는 꽃잎의 상징적인 처리와 우주 별자리는 화엄경의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을 잘 담아내고 있다.

박은신은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서양화를 주로 하면서도 늘 동양화에 대한 관심으로 한지 기법과 먹을 사용하는 표현을 즐겨 사용해왔다.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입시 미술학원을 운영하면서 독학으로 공부한 미술사를 여러 곳에서 강의를 하였고, 또 한국화 교수를 찾아가 기초부터 배접이나, 먹과 색의 사용에 대한 내공을 쌓았었다. 이러한 노정의 결실일까, 서양화 출신이라는 한계는 오히려 더 풍부한 물성을 다루는 섬세함으로, 초점과 감정을 중시하는 작가의 노력이 그대로 전달된다. 이는 현대 불화가 기존 선묘 중심에서 어떻게 회화적 느낌을 살려야 하는가의 물음에 대한 모범이 될 수 있다.

불화는 전통 도상을 굳건히 지키는  불교미술 장르임이 분명하다. 관련 전시회를 보면 젊은 작가들의 창의적 해석을 위한 여러 노력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어떤 불화 작품은 마치 프린팅 된 인쇄물처럼 획일적이거나 회화적 소양이 부족함을 간혹 느끼게 된다. 그래서 현대 불화를 열망하는 작가에게 서양화의 기법은 어쩌면 현대 불화의 다양성과 발전을 위한 또 다른 모색이 될 수 있음을 새삼 참고할 만하다.

박은신에게 불교는 종교이면서 철학이고 실사구시와 같다. 마치 화엄경의 선재 구도자처럼 그간 정체되어온 듯 겪었던 여러 방황들이 차곡차곡 쌓여 작품을 위한 밑거름으로 전개되리라 믿는다. 늘 곁에 후원자인 남편의 지극한 바라지가 있어 앞으로 작업 하게 될 주악비천상 또한 현대 불화의 든든한 공양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전 불일미술관 학예실장 구담 스님 puoom@naver.com


[1420호 / 2017년 1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눈물의 우주’, 장지에 분채, 145×107cm, 2016년.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