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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보살들의 불이법문

기자명 이제열

존재의 실상에는 본래 생멸이 없다

“그때에 유마힐이 여러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보살들은 어떻게 해서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나이까? 각자 좋은 점을 말씀해 주소서.’ 법자재 보살이 말하였다. ‘생하고 멸함을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법의 본성은 생하고 멸함이 없으니 이렇게 무생법인을 얻는 것을 둘 아닌 법문이라 합니다.’ 덕정 보살이 말하였다.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이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더러운 것의 참 성품을 보면 깨끗함도 없나니 이를 둘 아닌 법문이라고 합니다.’ 진천보살이 말하기를 명과 무명이 둘이라 합니다. 무명의 참 성품이 명이며 명도 취할 수 없는 것이어서 모든 분별을 여의었나니 이 둘이 평등하여 둘이 없는 것이 둘 아닌 법문이라 합니다.”

모든 것 인연 따라 생겼으니
고유한 성품이나 이름 없어
번뇌와 열반의 본성, 공이니
망령된 마음 따른 분별일 뿐

‘유마경’은 불이법문으로 종취를 삼는다. 위 문장은 ‘유마경’의 정점에 해당하는 가르침들이다. 이 경의 주인공인 유마거사는 병을 통해 대승의 이치를 천명하고 불법의 궁극적 진리는 온갖 분별과 대립이 종식된 해탈·열반의 경계임을 드러냈다. 이제 그는 자신을 문병하기 위해 모여든 대중들에게 각기 불이법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간략히 설할 것을 권청한다. 법자재 보살은 모든 법이 생하고 멸한다고 하지만 법의 본성은 생도 없고 멸도 없으니 이것이 곧 불이 법문이라고 답한다. 우리가 볼 때 세상의 모든 만물은 응당 생기기도하고 멸하기도 한다. 피어난 꽃은 반드시 지며 태어난 생명은 기필코 죽는다.

세상 어떤 것도 생멸의 이치를 겪지 않는 존재는 없다. 그러나 보살의 안목으로 보면 모든 존재의 실상은 생멸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만물은 연을 따라 일어난 연기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연으로 일어난 존재에는 고유한 자기의 모습이나 성품이나 이름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은 생겨났다고 하나 진실에 있어서는 생겨났다고 할 수 없다. 제 모습이 없고 제 성품이 없고 제 이름을 지니고 있지 않은 존재를 어찌 생겨났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른 것들을 연으로 하여 생긴 것은 진실로 생긴 것이 아니며 진실로 생긴 것이 아니라면 멸할 것도 없다.

무생법인(無生法忍)이란 이러한 이치를 표현하는 말이다. 덕정 보살은 더러운 것의 참 성품을 보면 깨끗할 것도 없다고 말하였다. 이는 모든 존재는 본래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더럽다 깨끗하다는 것은 모두 중생의 마음에서 그린 것이다. 사람의 마음으로 보면 똥은 더럽게 보인다. 반면 구더기의 마음으로 보면 똥은 아주 깨끗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똥이라도 바라보는 중생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똥의 본성은 중생의 마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는 번뇌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번뇌는 더러운 마음이고 번뇌가 없는 열반은 깨끗한 마음이다. 이 때문에 번뇌에 물든 자를 중생이라 하고 열반을 얻은 자를 부처라 한다. 그러나 본성의 측면에서 보면 번뇌와 열반은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공하여 실체가 없다. 번뇌도 공성(空性)이며 열반도 공성이라 번뇌가 실로 더러움이 아니며 열반이 실로 깨끗함이 아니다. 번뇌와 열반의 본성인 공성을 깨치지 못하면 더러움과 깨끗함이 있으나 공성의 측면에서는 이 둘을 찾을 수 없다.

진천보살은 무명(無明)의 참 성품이 곧 명(明)이지만 명 역시 취할 바가 없다 하였다. 무명이란 중생들이 지닌 근원적 어리석음이다. 소승에서는 사성제와 삼법인을 알지 못하는 것을 무명이라 하고 대승에서는 공과 불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무명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 무명의 정체는 비실유체(非實有?)라 그 성품이 역시 공하여 실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무명이 실지 성품은 본래 비어서 없는 것이기 때문에 무명 그대로가 명이라는 뜻이다.

무명의 마음을 떠나 명의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무명의 실체가 없음으로 명을 삼는다. 근본적으로 법의 본성품인 법성 안에서는 무명도 취하지 못하고 명도 취하지 못한다. 무명이니 명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 중생의 망령된 마음을 따라 일어난 분별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420호 / 2017년 1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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