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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의 몸을 낳아 길러주시는 은혜

기자명 금해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7.12.27 09:47
  • 수정 2017.12.27 09:48
  • 댓글 0

새로운 삶 시작하는 출가 제자에게
스승은 오랜 시간 공들여 제자교육
평생 외길 걸어온 스승 모습에 숙연

지난 12월19일, 조계종에서 처음으로 승가교육 공로자에게 감사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30년 이상 승가교육에 헌신하신 열 분의 어른스님들께 존경을 표하는 자리였습니다. 세속에서도 그렇지만, 불가의 스승과 제자는 매우 특별하며 귀한 인연입니다.

‘사리불문경(舍利弗問經)’에 이르길 “출가자가 부모가 있는 생사(生死)의 집을 버리고 법의 문에 들어와 미묘한 법을 받았으면 그것은 스승의 힘이다. 법의 몸을 낳아 길러주시고 공덕의 재능을 일으키며 지혜의 가르침을 기르게 하니 스승의 공보다 더 큰 것은 없다”고 합니다.

세속의 삶과 완전히 다른 삶을 시작하는 출가제자는 먹고 말하고 입고 쓰는 일상의 법까지 새로 배워야 하고 스승은 서른, 마흔 살이 넘은 아이 아닌 아이를 받아들여 다시 태어나게 하고 성장시켜야 합니다.

이미 세속에 익은 제자는 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고, 자기가 옳다는 고집이 있어서 가르침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니 가르치는 스승도, 배우는 제자도 서로가 힘듭니다. 때로는 열심히 정성 다해 가르쳤는데 밤새 인사도 없이 사라지기도 하지요. 세세한 것에서부터 별의별 일이 다 있으니, 상좌의 입장에서는 시집살이라 할 만하고, 스승의 입장에서는 상좌 하나에 지옥 하나라고 말할 만합니다.

이렇게 출가자의 스승이자 부모가 되는 것은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며, 포기하지 않은 끈기와 인내력, 고집 센 아이를 다루는 지혜까지 요구하는 일입니다.

저는 내성적인 성격에 융통성도 별로 없어서 배우는 것이 항상 늦었습니다. 일상의 물건을 상, 하복으로 나누는 것에서부터 물건 쓰는 법, 공양간의 소임, 어른 모시는 법까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틈이 생기면 실수가 산더미처럼 쌓였지요. 빗자루 질, 빨래하는 법 같은 일상의 소소한 모든 것에 대해 어른스님이나 선배님들의 가르침과 감독을 받았습니다. 전의 습관이 툭툭 나올 때마다 우왕좌왕했습니다.

행자시절 어느 날 저녁, 공양 상을 받은 뒤 어른스님께서 ‘전혀 다른 국을 끓여도 같은 맛이 나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이후 국을 끓일 때마다 고민했지요. 나중에서야 재료 특유의 맛과 향을 알게 되었습니다. 송이국은 송이의 향이, 무국은 무의 맛이 살아있어야 했죠. 그 이후로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의 색깔과 특징을 수용하게 되고, 다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상의 작은 변화가 삶 전체를 바뀌게 했습니다.

만약 배우는 모든 순간에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하는 의문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을 겁니다. 다행히도 제가 만난 모든 스승님들께서는 기다려 주셨습니다. 늦게 태어나고, 늦게 자라는 제자를 포기 않고 지켜봐 주셨지요. 그렇게 스승은 우리를 새로운 수행자이자 화합 승단의 일원으로 성장하게 해주십니다.

승가대학에서 학인스님들과, 사찰에서 신도님들과 지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전해주고 싶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기다려야 하고, 떠나가면 슬픔을 접고 보내야 합니다. 다시 돌아오면 기꺼이 안아주어야 하지요. 또한 흔들리는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항상 앞을 바라보며 이끌어야하는 어려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 금해 스님
저의 스승이며 ‘승가교육 공로자 포상식’ 행사의 주인공이신 삼선불학승가대학원 묘순 원장스님을 뵈며, 기쁘면서도 눈물 날 만큼 숙연해졌습니다. 아마도 평생 외길을 걸어오신 스승의 마음을 지금에서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스승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만큼 성장하기까지, 긴 시간 동안 자비심으로 살펴주시는 세상 모든 스승님들께 삼배 올립니다. 또한 스승의 자비심을 닮아, 모든 이들에게 진리를 전할 수 있는 제자들이길 발원합니다.

금해 스님 서울 관음선원 주지 okbuddha@daum.net


[1421호 / 2017년 1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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