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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걱정을 만드는 자 누구인가?[끝]

기자명 정운 스님

자신의 생각이 고통과 고뇌를 만든다

원문: 배휴가 물었다. “만약 무심이라면, 이 도를 행해서 얻을 수 있는 겁니까?” 선사가 답했다. “무심이 곧 도를 행하는 것이다. 다시 무엇을 더 얻고, 얻지 못한다고 말하는가? 다만 잠깐이라도 일념을 일으키면 문득 경계에 끌려간다. 만약 일념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곧 경계도 사라진다. 망심이 스스로 사라지면, 다시 쫓아서 구할 필요가 없다.” 배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삼계를 벗어나는 것입니까?” 선사가 답했다. “선악을 모두 사량하지 않는 것이 삼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신 것은 삼계를 깨뜨리기 위함이다. 만약 모든 것에 마음이 없다면 삼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 자체도 망상이자 번뇌
삼계는 물리적인 구분 아니고
삼계 머묾은 윤회존재 나눈 것
본래성 활용해 번뇌 여의어야

해설: 첫 번째 배휴와 선사의 문답 주제가 무심이다. 황벽은 청정심에 바탕을 두고 무심을 강조하고 있다. 송대의 자각 종색은 ‘좌선의’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생각이 일어나면 바로 자각하라, 깨달으면 그 모든 생각들이 실체가 없어진다[念起卽覺 覺之卽無].” 선사들은 ‘생각’ 그 자체도 망상, 즉 번뇌라고 하였다. 잠깐이라도 생각은 대상 경계를 통해 밖에서 들어오는 것보다 자신이 만들어낸다.

그래서 그 순간을 알아채어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실체는 사라진다. 법문하는 도중에 간혹 이런 말을 한다. ‘인간은 자기 생각으로 고통을 만들어낸다.’, 즉 자기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이 만든 실체가 없는 것으로 고통의 늪에서 허덕인다. 또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 발 더 나아가 패배의식·좌절감·열등감·두려움 등으로 고통을 더 가중시킨다. 그러니 선사들이 언급한 ‘그 한 생각이 망념’이라고 단정하신 것이 맞는 말씀이다.    

영국의 한 의과대학의 노먼 빈센트 필 박사는 인간이 웃음을 잃어가는 것은 쓸데없는 걱정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한 연구기관을 통해서 조사한 내용을 밝혔다. 사람이 하는 걱정 중 미래에 발생하지도 않은 사건에 대한 걱정이 40%,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걱정이 30%,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닌 작은 것에 대한 걱정으로 22%,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에 대한 걱정이 4%이다. 생각의 96%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점이다. 고대 로마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사람은 사물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생각 때문에 괴로워한다”고 하듯이 자신의 (부정적인)생각으로 끊임없이 고통과 고뇌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원문에서 ‘삼계를 깨뜨리기 위함이다. 만약 일체의 마음이 없다면…’ 이하를 보자. 삼계란 욕계·색계·무색계이며, 더 세분해 나눠서 ‘25유’라고 한다. 이 삼계는 물리적으로 나눈 세계가 아니다. 여러 의미가 있는데, 삼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생사 해탈하지 못하고 윤회하는 존재를 나눈 것이다.

첫째로 과거 전생에 선업의 결과로 인해 태어나는 중생의 각 세계를 뜻한다. 둘째로 현재 수행할 때 선정 상태에 따라 머무는 경지를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화엄경’에서 “삼계는 다만 탐욕으로부터 생기나니 12인연이 마음 가운데 있는 줄 알라. 이와 같이 생사도 마음에서 일으킨 것이니 그 마음을 멸한다면 생사조차 없다”고 하였다. 곧 삼계유심이요, 만법유식이다. 이렇게 공간적으로 머무는 세계는 자신의 마음에 따라 지옥도 만들고, 극락도 만드는 것임을 시사한다.

총무원장 설정 스님께서도 12월18일[음 10월1일] 봉은사 법문에서 자신의 마음을 강조하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은 바깥을 향해서 뭐든지 찾으려고 합니다. 나의 행복과 즐거움, 편안함, 보람을, 바깥을 향해서만 찾으려고 하는데 부처님은 그것을 착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고의 해답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 존재합니다. 눈과 귀로 보고 듣는 데에만 빠지지 말고 자신의 내부를 관찰해 육정[안·이·비·설·신·의]을 다스리는 데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무념(無念)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황벽의 ‘전심법요’는 조사선에 입각한 사상이다. 조사선 사상은 본래 성품에 입각한 진리를 강조한다. 본래성을 활용해 현 삶에서 번뇌를 여의고, 행복 찾는 길을 모색해보자. 법보신문 독자님, 참 좋은 인연이었습니다. 

정운 스님 saribull@hanmail.net
 


[1421호 / 2017년 1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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