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연재를 마치며 [끝]
47. 연재를 마치며 [끝]
  • 김성순
  • 승인 2017.12.2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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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지옥은 징벌보다 참회 더 중시

지난 일 년 간 ‘지옥을 사유하다’라는 주제로 일주일에 한 편씩 칼럼을 써왔는데 어느 덧 마감할 때에 이르렀다. ‘사유하다’라는 개념에는 지옥사상이 파생시킨 문화현상에 대한 파악이나 지옥교설의 경전적 지식의 전달을 넘어서는 통찰이 전제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아함부 경전에서부터 훨씬 뒤에 나온 대승경전에 이르기까지 지옥교설의 층위는 두터웠고, 서로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가 싶다가도 판이하게 다른 용어와 내용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갈수록 복잡하게 죄악상을 반영하고, 계율과 교의의 그물을 촘촘하게 엮어갔던 흔적이 발견된다. 다시 말해, 지옥교설의 단단한 층위 안에는 인간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계율과 죄악의 개념이 켜켜이 쌓여있는 것이다.

지옥교설의 여러 층위에는
인간세상 죄악개념 반영돼
지옥징벌 대상은 항상 남성
지옥서 물리적 죽음 불가능


경전이든, 문물이든 간에 한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권으로 전달될 때는 피전달자의 문화적 배경에 따라 가장 설득력 있는 형태로 재해석의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더위로 인해 고통 받을 일이 많은 문화권에서는 ‘팔열지옥’의 교설이 훨씬 체감의 정도가 강했을 것이고, 추위에 시달리는 문화권에서는 ‘팔한지옥’이 더 고통스럽게 다가왔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더불어 경전을 파급시키고, 신앙을 알려야 하는 포교사의 입장에서는 해당 지역의 사람들이 가장 절실하게 지옥과 인과보응의 교설을 두려워하게 할 만한 극적인 장치가 필요했으리라 생각된다. 동아시아불교는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지옥변상도가 그려진 두루마리를 펼쳐가며 경전의 지옥 교설을 실감나게 풀이해주었던 포교승들의 공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 막 불교를 접했던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불교신앙을 가져야 할 이유를 알려준 존재가 바로 거리의 포교승들이었으며, 그들 뒤에는 풍부한 지옥교설의 서사가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지옥 교설을 훑어보면서 새삼스럽게 발견한 점이 하나 있다면, 지옥에서 생전의 죄업을 고통으로 갚고 있는 징벌의 대상자로 대부분 남성들이 묘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간음의 죄업 같은 경우에는 상대방 여성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해당 남성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보조 징벌자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상대 여성이 나타나 그 남성을 유혹하면서 칼날 잎이 잔뜩 박힌 나무를 오르내리게 한다던가, 금속 녹은 물이 가득 찬 뜨거운 호수에 남성을 끌어들인다던가 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남성이 성별을 넘어서는 일반적인 인간(Generic Man)으로 서술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경전 서술자의 시각에서 볼 때 남성 대 여성이 억압자 대 피억압자의 구조로 정형화되어 있기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여기에 대한 교의적·문화적 분석은 좀 더 확장적인 연구를 진행해야만 가능하겠지만 적어도 불교 경전의 지옥교의에서 여성이 직접적인 피징벌자로 묘사되는 경우가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다음으로 불교뿐만 아니라, 여러 타 종교 문화권의 지옥사상에서 거의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지옥교의가 하나 있는데, 바로 지옥에서는 물리적인 죽음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죄악을 저지른 인간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체인 지옥에서 어쩌면 너무 당연한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지옥에서 당해야 하는 형벌은 어느 죄인도 피할 수 없고, 평등하게 당해야 하는 것인데, 일회적인 죽음만으로 그 형벌을 면하게 한다는 것은 교의적으로 설득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옥교설과 관련하여 또 하나 정리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불교의 지옥은 고통으로 죄업을 갚고 나면 언젠가는 벗어날 수 있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불교의 지옥교설에서는 징벌보다는 참회를 더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전 곳곳에서 ‘너는 왜 죄를 뉘우치지 않는가’라고 일갈하고 있으며, 당송대 이후에는 시왕신앙, 참회의식과 결합하면서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이 칼럼을 통해 불자 내지 독자들에게 꼭 하나 던져져야 할 질문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과연 지옥은 존재하는가?” 물론 서슴없이 긍정적인 답변을 할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적어도 이러한 대답 정도는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신앙 안의 세계에서는 지옥도, 극락도 실재(實在)일 수 있는 거라고.

김성순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shui1@naver.com
 


[1421호 / 2017년 1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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