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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 한 그릇이 위로 될수 있다면”

  • 상생
  • 입력 2018.01.03 17:02
  • 수정 2018.01.0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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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통일짜장’ 무료급식 운천 스님

▲ 포항 지진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곧바로 포항으로 향한 운천 스님은 “한 두번의 무료급식으로 이재민들을 위로할 수 있겠냐”며 “당분간은 포항에 있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짜장’에는 세계가 한 송이의 꽃’이라는 세계일화(世界一花)’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재료가 섞인 이 요리에는 차별없는 화합의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포항 지진피해 주민들도 피해의 많고 적음을 떠나 하루 속히 일상으로 복귀하실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중국 유학시절 학생들에게
짜장 요리 해주며 포교 발원
“모든 재료 하나되는 짜장엔
세계일화 가르침 담겨있어”

칼바람이 몰아친 12월 말, 포항 흥해실내체육관은 겨울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지진으로 기울고 무너진 집을 떠나 체육관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는 주민들에게 겨울 한파는 더 시리고 차가웠다. 하지만 체육관 일대에는 추위를 녹이는 온기도 분명 존재했다. 마당에 위치한 여러 채의 천막부스에서 각각 메뉴가 다른 무료 급식이 제공되고 있었다. 이 가운데 ‘통일 짜장’이라는 안내문이 적힌 부스가 눈길을 끌었다. 유일한 ‘중식’이기도 했고, 특식처럼 인기를 모았다. 마침 ‘통일 짜장’ 대표 운천 스님이 이제 막 삶아진 뜨끈뜨끈한 면을 연신 그릇에 담으며 말했다.

“오늘 메뉴는 짬뽕입니다. 매일 짜장을 만들었더니 자주오시는 주민들께서 다른 메뉴도 먹고 싶어 하시기에 제 고향인 수원의 중국음식 전문가들을 긴급 초청 했습니다. 짜장도 좋고 이렇게 새로운 메뉴도 가끔 만들어서 드시는 분들이 지루하지 않게 해드리고 싶어요.”

운천 스님이 포항에서 통일짜장 공양을 펼친 지도 한 달이 훌쩍 넘었다. 지난 10년 동안 전국 곳곳을 찾아가 봉사를 전개했다면, 지난 11월15일 포항에서 진도 5.5의 지진이 발생한 다음날부터 지금까지 스님은 매일 점심 ‘통일 짜장’을 만들어 이재민들과 나누고 있다. 스님은 “부산의 한 복지시설에서 짜장 봉사를 하던 중 지진을 느꼈다. 그 순간 무조건 포항으로 가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음날 일이 정리되자마자 모든 장비를 들고 포항으로 이동해 지금까지 대중공양을 전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를 입은 분들은 얼마나 상심이 크겠습니까. 무료급식이라는 명목아래 한, 두 차례 봉사하고 가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었어요. 특히 피해 주민들 중에는 입맛이 없고 소화 능력이 떨어져 끼니를 거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당분간은 이곳에서 봉사를 지속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피로누적과 정신적 충격으로 소화력이 떨어진 이재민들에게 스님의 짜장은 인기만점이다.

“짜장스님이 포항에 나타났다”는 소식에 오히려 체육관 밖에서도 짜장면을 먹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스님의 짜장면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요청하자 이날 포항을 찾은 중식 전문가들도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었다. 비법은 스님의 유학시절에 있었다.

“출가 후 강원을 졸업하고 중국서 유학생활을 할 당시 여러 나라 학생들이 함께 살았지요. 다함께 먹기 좋은 메뉴로 짜장을 자주 만들었는데 모두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짜장은 갖가지 재료를 볶아서 하나의 음식이 됩니다. 전체가 하나가 되고 그 하나로 각국 유학생들이 소통할 수 있음을 경험하면서 한국에 돌아오면 짜장으로 포교하고 나누겠다는 발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2009년 8월 전북 남원 선원사 주지를 맡은 운천 스님은 그 발원을 실천에 옮겼다. 3개월 뒤 짜장면 대중공양을 시작한 것이다. 특히 파계사 영산율원 출신인 스님은 선방이나 강원에 공양할 수 있도록 육류와 오신채를 뺀 채식 짜장 메뉴를 개발했다. 콩으로 만든 햄과 마른 콩단백을 사용했고 고구마, 감자, 양파, 배추, 양배추 등 채소도 가득 넣었다. 사찰과 복지시설을 막론하고 대중공양을 요청하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지 찾아갔다. 쉼 없이 공양을 이어 온 세월이 자그마치 10년이다. 지금까지 대중공양 1100회, 70만명에게 짜장을 공양했다. 지난해에는 ‘짜장 공양 10년’을 맞아 민족통일을 발원하며 ‘통일짜장’이라는 이름도 새롭게 달았다.

“세계일화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제는 ‘통일짜장’입니다. 앞으로 이곳 포항에서 지진의 아픔을 씻어내며 매주 일요일마다 ‘짜장데이’ 행사를 가질 예정입니다. 짜장면을 드시는 모든 분들이 통일을 염원한다면 통일은 우리 모두의 현실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포항=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422호 / 2018년 1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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