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인생 삼백살을 발원합니다-하
92. 인생 삼백살을 발원합니다-하
  •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 승인 2018.01.0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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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로 되돌릴 수 없다는 간절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 휠체어를 탄 성운 대사가 2017년 12월 9일 봉행된 불광산 수륙대법회에 동참해 불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대만 불광산 제공

"다쿠앙 선사는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잠깐의 시간이라도 귀한 보석처럼 여겨라”라고 설하셨습니다. 시간을 잘 쓸 줄 아는 사람의 시간은 정신적 시간이라서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에 고금으로 통달합니다. 시간을 잘 쓸 줄 모르는 사람의 생명은 흐리멍덩하여 보잘 것 없고 한계가 있게 됩니다."

2015년 4월 중국 강소성 감진도서관(鑑真圖書館)과 대각사에서 ‘채식박람회’가 거행되었는데 한 달 전부터 준비업무가 시작됐습니다. 보통 수십 명이 모여 사전회의를 하고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지만 저의 경우에는 단지 두세 사람 정도가 모여서 2~3일만에 기획안을 완성시킬 수 있습니다. 일이란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해야 하는 것으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빈승은 생각합니다.

인생의 짧음을 잘 드러내서 고금(古今)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을 잘 보여준 ‘당백호(唐伯虎 : 1470~1524년, 명대 유명 화가이자 시인. 역자 주)의 타유시가 있습니다.

“사람이 70년을 살기는 예부터 드물다(古稀)고 하는데 내 나이 70은 뜻밖이로다.

앞의 10년은 어렸었고 뒤의 10년은 노쇠하다네.
중간에 단지 50년이 있는데 절반은 또 밤에 잠자면서 보내버렸네.
계산해보니 단지 25년을 세상에서 살았는데
동분서주 수고와 번뇌를 셀 수 없이 겪었네. (人生七十古稀 我年七十為奇 前十年幼小 後十年衰老 中間只有五十年 一半又在夜裡過了. 算來只有二十五年在世 受盡多少奔波煩惱.)

우리들이 운용할 수 있는 인생은 실제로 아주 한계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만약 생명의 의의를 잘 안다면 길게 빛날 수 있는 생명의 가치를 다른 측면으로 드러낼 수 있습니다. ‘니구타(尼拘陀)’ 나무가 씨앗 한 알로 무한한 생명력을 키워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생명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시간적 제한에 얽매이지 않고 공간적 장애를 받지 않습니다.

빈승의 ‘인생 삼백 살’은 “부지런히 일하면서 시간을 아껴야지 대충 끌면서 허송세월을 보내지 말자”고 격려하고 싶어서입니다. 젊은 시절은 쉽사리 사라져 버리고 세월은 덧없으며 ‘기다림’은 생명의 살인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설사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걸레질을 하더라도 천천히 한다면 그것도 생명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저는 바닥을 쓸고 걸레질을 해야 했는데 날마다 쌓이는 먼지 때문에 매일 청소로 많은 시간을 써야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해야 탁자 위에 있는 먼지를 빠르게 청소할 수 있는가를 궁리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선 총채로 먼지를 털고 나서 이틀이나 사흘을 기다렸다가 한 번에 몰아서 물을 뿌리고 탁자를 닦고 바닥을 쓸고 바닥 걸레질을 했습니다. 그러면 바닥의 먼지도 없어져서 시간이 절약되고 청결의 효과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책을 보더라도 저는 보통 첫 쪽부터가 아니라 대체로 맨 마지막 쪽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결과를 먼저 알게 되면 주제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순조롭고 빠르게 읽을 수 있었고 심지어 몇 쪽을 건너뛰어도 관계가 없습니다. 경전을 보더라도 이해가 되는 것부터 먼저 보아도 되듯이 처음부터 봐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뒤쪽에서부터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서하산’에서 공부할 때 저에게 가장 강렬한 훈련이 되었던 일은 발우공양에서 행당(行堂 : 발우공양을 위해서 대중의 밥그릇과 젓가락을 펼쳐 놓고서 음식을 덜어주고 공양 후에는 빈 밥그릇 등을 거두어 설거지를 하는 일. 역자 주) 업무로 기억합니다. 당시 서하산에는 대중이 400~500명 정도 있었는데 밥 때가 되면 각 처소에서는 각자 가져갔지만 필히 발우공양을 해야 하는 불학원과 선방, 염불당은 인원이 보통 150명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점심공양이 12시인데 규찰 스님은 저희들이 오전 11시 30분에 들어가서 준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45분에서야 재당(齋堂 : 사찰의 공양하는 공간. 역자 주)에 들어가서 밥그릇과 젓가락을 펼쳐 놓게 하였습니다. 단지 4명이 15분 안에 이 일을 해야 했기에 속도가 아주 중요했고 늦지 않아야 했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한 명은 향판(叫香板 : 두드려 소리를 내서 때를 알리는 목판. 역자 주)을 두드리는 소임을 맡아서 큰 도량의 이곳저곳을 돌면서 대중들에게 공양시간을 알려야 했습니다. 다른 한 명은 물을 긷고 탁자를 닦고 밥그릇과 젓가락을 놓아야 했고 나머지 두 명은 공양간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담아 와야 했습니다. 어쨌든 우리들 네 명이서 일을 분담해야 했으니 동작이 빨라야만 그 일을 시간 안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불광산사 본산의 행당은 30~40분 일찍 재당에 미리 들어갈 뿐만 아니라 수십 명의 인원이 서로 쳐다보고 서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실로 생명을 낭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통상적으로 대중들이 ‘공양주(供養咒)’를 염송할 때 제 몫의 음식을 행당 자리에 놓아두었다가 ‘공양주’ 염송을 마치면 밥과 반찬도 적당히 식기 때문에 저는 대중들과 같이 식사를 하였습니다. 종종 제가 밥을 다 먹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릇을 내밀기 시작했기 때문에 저는 일어나서 곧바로 대중들의 밥과 반찬을 추가해줄 수 있었습니다. 어떤 규찰 스님은 결재(結齋 : 발우공양을 마치는 의식. 역자 주)이전에 우리들이 밥그릇과 젓가락을 거두지 못하게 하였는데 만약 허락하는 규찰을 만나게 되었을 때는 ‘결재게(結齋偈 : 발우공양을 마치는 게송. 역자 주)’ 염송이 끝났을 때면 언제나 저는 밥도 먹었고 탁자와 의자도 닦았으며 밥그릇도 다 씻어놓는 기록을 가졌기에 대중의 줄을 따라서 같이 자리를 떠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시간을 아끼는 정도는 이렇기까지 하였습니다.

성공대학교 총무처장인 ‘염로(閻路)’ 교수는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전문가인데 수업을 해달라고 수산불학원에서 초청했습니다. 그 분 수업의 교재는 항상 도해(圖解) 한 장이었는데 수업종이 울리면 칠판 한쪽에 도해를 그리기 시작해서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릴 때가 되면 강의 내용을 칠판 한편에 다 적었는데 그 공력이 대단하여 사람들은 탄복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본래 대학 교수의 자격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26세에 광공업 회사 정식엔지니어였는데 그 당시 교육부 법규에 정식엔지니어와 학교의 정교수는 동등한 자격을 인정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대학교의 초청으로 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되어서 많은 시간을 들여 교재를 준비하였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강단에 선지 20분 만에 준비한 내용의 강의가 끝났다고 합니다. 조급한 그는 온 몸을 땀으로 적시면서 어찌할지를 몰랐고 힘든 훈련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큰 거울을 하나 샀으며 거울을 통해 자신의 표정과 자세를 관찰하면서 일분에 얼마의 말을 하는지 50분이라는 시간 동안에 얼마만큼의 이치를 강의하여야 하는지를 계산하면서 2년 동안 힘들게 훈련했다고 합니다. 염교수의 학습법은 표해를 통해서 단계별로 강의하는데 수업 한 번에 표해 한 장으로 시작하여 끝나기까지 50분 수업을 하였는데 역학, 전지학, 전문화학 등등을 포함한 풍부한 내용으로 학생들의 많은 호응을 받은 명교수였습니다. 이러한 신비스러울 정도의 교수법으로 시간을 정확하게 사용한 염 교수는 시간을 잘 쓸 줄 아는 스승이었으니 어찌 성공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일본 ‘다쿠앙(澤庵)’ 선사에게 한 관리가 시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제 관직은 아주 재미가 없어요. 날마다 사람들의 아부를 들어야 하는데 그 아부하는 말들이 하나같이 똑 같아서 듣다보면 너무 따분해서 하루가 정말 일 년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이 시간들을 어떻게 잘 보내야 할까요?”

다쿠앙 선사는 그 사람에게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잠깐의 시간이라도 귀한 보석처럼 여겨라(此日不復 寸陰尺寶)”라는 두 마디 말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시간을 잘 쓸 줄 아는 사람의 시간은 정신적 시간이라서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에 고금으로 통달합니다. 시간을 잘 쓸 줄 모르는 사람의 생명은 흐리멍덩하여 보잘 것 없고 한계가 있게 됩니다.

인생은 시간과의 달리기 시합입니다. 올림픽은 사람들이 가진 잠재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높이뛰기, 멀리뛰기, 달리기 시합의 운동 경기를 거행하는데 그 목적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더 잘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잘 살펴보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바로 생명력을 드러내는 무대입니다. 한포기 풀도 생명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돌 틈을 비집고 자라서 빗물을 맞고 햇살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무에 기생하는 넝쿨조차도 생명을 이어가고자 담벼락을 기어오르고 바람에 흔들리며 뻗어가는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때를 놓치지 않고 노력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삼백 살의 인생’을 누리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빈승이 80세였을 때 이미 삼백 살이었는데 지금 90이 되었으니 삼백 살 목표를 초과했다고 하겠습니다. “출가자 노릇을 오늘까지 하더라도 오늘까지는 종을 친다(做一日和尙, 撞一日鐘)”는 말이 있듯이 자신이 아미타 부처님처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격려하면서 저는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422호 / 2018년 1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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