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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무엇인가?

기자명 임연숙

수행자 담백하게 표현해낸 수묵화

▲ 김대열 작 ‘이 무엇인가’, 120×96cm, 한지에 수묵채색, 1994년.

미술관에 들어서서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단번에 ‘아, 예쁘다’, 혹은 ‘징그럽다’ ‘따듯하다’ ‘무섭다’ 등등 짧은 인상을 받고는 쓱 스쳐 지나는 경우가 많다. 이나마도 어떤 느낌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작품은 한 사람의 역사이고, 철학이다. 한 사람의 에너지를 담은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모든 작품은 나와 교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 나가는 감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이 명상의 과정과 닮아있다. 

작품은 한 사람 역사·철학
수묵화 작업과정 선종 닮아
짙은 농묵으로 처리된 화면
조용히 내면 보는 이 대조

수묵화는 한번 그리고 나면 고칠 수가 없다. 특히 문인화계통의 그림은 밑그림도 없이 화면 전체의 구상을 머릿속에 담고, 때로는 그 구상도 없이 붓과 먹과 종이와 자신과 몰아 일체가 되어 화면을 채우는 행위를 한다. 그때의 먹으로 그어진 화면뿐 아니라 붓이 닿지 않은 공간까지도 작가의 내면을 담아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수묵화 작가들은 작업의 과정이나 기법이 선종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수행하고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나가는 것이라면 수묵화의 과정 또한 오랫동안의 수련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70~80% 깊이 내면의 표현과 영감을 위해 생각하고 짧은 시간 내에 표현해 낸다는 점에서 명상의 과정과도 같다.

작가 김대열은 끊임없이 선과 수묵을 통해 자아를 찾아 나가는 작가다. 오랫동안 선종을 연구하였고, 미술에서는 오랫동안 수묵, 문인화, 서예로 기본을 닦고, 현대회화로의 모색을 통해 전통을 낡은 것이 아닌 동시대 언어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해 왔다.

소개하는 작품은 짙은 농묵으로 처리된 화면과 조용히 내면을 들여다보는 한 사람으로 대조되어 있다. 수묵의 느낌은 마치 추운 날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수와 같이 속도감과 힘이 느껴진다. 겨울을 깨고, 얼음을 깨고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와도 같다. 똑같은 먹이고 붓이지만 그리는 작가에 따라 먹빛이 맑고 투명하게도 느껴지고 흐리고 탁하게도 느껴진다. 느낌은 먹과 물의 계량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여기에 필력은 단숨에 이루어지는 기량이 아니다. 이 또한 오랫동안 단련되어 선 하나에도 힘이 느껴지고 뼈대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좀 다른 이야기 일수 있겠으나 잘 삶아진 파스타 면은 그 안에 약간 덜 익은 뼈대가 느껴지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수묵화를 보면서 필력이 뭐냐고 할 때 그것이 단순한 붓의 힘만은 아닌 듯싶다. 강력한 힘과 무게가 아닌 뼈대이다.

가늘고 흐리지만 뼈대가 느껴지는 것이 필력이라 할 수 있다. 강하고 빠르고 시끄러운 왼쪽의 화면에 비해 오른쪽에는 ‘나’가 있다. 구도하는 나, 자신을 찾고자 하는 ‘나’이다. 푸른빛이 상징하는 신비함과 외경스러움을 담고 있다. 역시 발묵으로 단번에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붓을 들어 단번에 어떤 형상을 표현하는 것은 그만큼 많이 생각하고 또 바라보고 생각하며 숨과 호흡을 조절하여 그려냈을 것이다. 너무 진하지도 흐리지도 않은 담백한 모습을 한 한 사람이 있다. 목이 긴 조금 마른 듯한 이 한 사람은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자 수행하는 모습이다.

“겨울이 깊어지는 것은 봄이다가오는 것이고 선종의 견해로는 모든 것은 다 허망한 것이며 무의미한 것으로 보고 있다. 본래 한 물건도 없으니 외재적인 모든 사물은 마음의 망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선적 사유는 형상으로부터 시작하여 결국 형상을 떠나기 위한 것이지만 심미인식은 형상을 떠나 새로운 형상을 표출하여 전달한다. 이처럼 선과 예술은 동질성 중에 이질성이 내포되어 있고, 이질성 중에 동질성이 내포되어 있다,”(작가의 작업노트 中)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전시디자인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22호 / 2018년 1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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