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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쇼카 왕의 이빨 빠지는 꿈

아름다운 눈 지닌 태자 비극적 상황 암시

▲ 산치대탑에 조각된 아쇼카 왕과 왕비의 모습.

아쇼카의 아들, 쿠날라 이야기는 비극적이면서 감동적이다. 어느 날 아쇼카 왕은 태자 쿠날라(Kuṇāla)를 불렀다. 그는 곧 마우리야 왕조를 이끌 재목이었지만 불가피하게 탁실라의 정치적 혼란을 잠재워야할 임무를 받는다. 아쇼카 왕은 쿠날라를 탁실라로 보낸다. 첫째 부인에게서 낳은 쿠날라는 태어날 때부터 매우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태어났다. 어찌나 아름다운 눈을 가졌던지 그의 이름을 히말라야에 사는 전설적인 새의 이름을 따서 쿠날라로 불렀다. 실제로 아쇼카 왕은 세상 사람들의 평이 옳은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 새를 잡아오게 해서 아들의 눈과 비교해보지 않았던가. 쿠날라의 눈을 보고 칭송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고 누구나 그의 눈을 보면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이나 주변사람이 죽거나
위중한 병 앓게 될 예언의 꿈
아쇼카 아들 쿠날라의 뽑힌 눈
현실과 꿈을 뒤집어 보는 눈 돼

심지어, 욕정에 사로잡힌 젊은 계모 티쉬야락시타(Tiṣyarakṣitā)가 쿠날라를 유혹할 정도였으니까. 침실로 찾아가 쿠날라를 유혹했으나 그의 사랑은 얻지 못했다. 그렇지만 쿠날라가 그의 사랑을 물리친 것이 불행이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욕정을 풀지 못하자 티쉬야락시타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심지어 나중에 쿠날라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마침 쿠날라가 탁실라로 떠나자 계모는 그에게 복수할 궁리를 했다. 그리고는 아쇼카 왕을 흉내 내어 편지를 조작해 썼다. ‘태자가 그곳에 도착하면 이 편지가 도착하는 즉시 그의 두 눈을 뽑아버리고 도시에서 쫓아내시오.’ 편지 내용은 위조할 수 있었으나 편지의 봉인은 직접 아쇼카 왕이 자신의 이빨로 하도록 되어 있었으므로 티쉬야락시타는 잠들어 있는 아쇼카 왕을 찾아간다.

바로 이러한 계략의 과정 속에 아쇼카의 꿈이 삽입된다. 그때, 아쇼카가 불길한 잠에서 벌떡 일어나 앉는다.

“왕비여, 내가 악몽을 꾸었소. 두 마리의 독수리가 쿠날라의 눈을 뽑아내려고 하지 뭐요.”
“왕자는 잘 지내고 있을 겁니다.”

다시 잠을 청하던 아쇼카 왕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잠을 깬다.

“왕비여, 내가 다시 악몽을 꾸었소. 꿈에서 쿠날라를 봤는데 수염과 머리도 깍지 않고 손톱도 긴 채로 도시로 들어가고 있더군.”
“왕자는 잘 지낼 거라고요.”

티쉬야락시타의 말에 아쇼카 왕은 다시 잠이 들었으며 다시 깨어나지 않았다. 그 사이 티쉬야락시타는 그의 이빨로 편지를 봉인하는데 성공했으며 편지를 곧바로 탁실라로 보냈다. 그동안에도 아쇼카는 여전히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자신의 이빨이 빠지는 꿈을 꾸었다.

아침에 예언가를 불러 아쇼카 왕은 자신의 꿈을 해독했다. 예언가는 이빨이 빠지는 꿈은 아들이 두 눈을 잃거나 아들을 잃게 되는 꿈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쿠날라의 눈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예언가가 말한 바처럼, 아들의 육체적 죽음과 왕권의 상실이다. 왕의 장자가 불구가 될 경우는 왕권을 계승할 수 없는데, 이는 ‘마하바라타’에서 드리타라슈타라가 장님이 되어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고 대신 동생 판두에게 왕권이 이양되었던 것과 같다. 잃게 된 것은 세속적인 육체적 아름다움과 왕권이다. 대신 쿠날라는 눈을 잃게 됨으로써 불교의 법안(法眼)을 얻게 된다. 그는 자신이 왕실에 있을 때 들었던 승려의 이야기를, 눈으로 보는 것의 덧없음을 떠올리게 된다. 왕자 쿠날라는 탁실라 사람들이 주저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눈을 뽑아달라고 부탁한다. 쿠날라가 맞이했던 이러한 근친상간의 위험과 맹인의 운명은 일면 오이디푸스를 연상시킨다. 그 뒤에 쿠날라는 맹인의 탁발 수행자가 되어 거리를 전전하지만 자신의 계모인 왕비를 저주하지도 않으며, 자기가 맹인이 된 것이 자신의 과거 업으로 인한 것임을 직감한다. 오히려 자신의 눈을 제거해준 왕비에게 감사하게 된다.

따라서 이 쿠날라의 뽑힌 눈은 현실과 마야(꿈)를 뒤집어 보는 눈이다. 눈에 비친 현실은 거짓된 세계며(현실 속의 왕비는 눈이 뽑힐 쿠날라를 안전할 것이라고 왕에게 말하는 것처럼), 그 세계가 곧 환상이라는 진실을, 법안을 얻고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쿠날라의 눈과 아쇼카의 꿈은, 현실이 곧 꿈이라는 전형적인 인도철학적 관점을 보여준다.

맹인의 거지가 되어 우연히 왕국으로 돌아온 쿠날라는 왕과 다시 상봉하게 되고, 아쇼카 왕은 모든 비밀을 알게 된다. 쿠날라가 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쇼카는 왕비를 불태워 죽일 뿐만 아니라 탁실라의 백성들까지 몰살한다. 이러한 비극의 원인에 대해서 승려들은 이 이야기를 불교의 업설과 연결시켜 대중에게 호소력 있는 이야기로 변신시킨다. 이 이야기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빌어 승려가 쿠날라의 과거생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쿠날라는 왜 두 눈을 잃게 되었는가. 쿠날라가 전생에 사냥꾼이었을 때 히말라야의 동굴 속에서 500마리의 사슴을 한꺼번에 잡을 기회가 있었다. 그 때 그는 사슴들을 한꺼번에 죽이면 썩어서 버리게 될 것을 걱정해 한꺼번에 죽이지 않고 모든 사슴들의 눈을 빼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다.

아쇼카 왕이 꾸었던 이빨 빠지는 꿈은 당대 인도에서도 상당히 공감하고 있었던 해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도 의학서 가운데 하나인 ‘차라카 상히타’에는 이빨 빠지는 꿈을 꾸게 되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이나 주변사람이 죽거나 위중한 병을 앓게 될 예언의 꿈이라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프로이트는 남자의 이빨 빠지는 꿈은 거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는데, 이는 아쇼카 왕위의 후계자인 쿠날라의 육체적 불구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왕위를 거세당한 쿠날라는 대신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위임한다. 식욕을 담당하는 구강의 주요부위가 빠져나가는 것은 곧 친족과의 이별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해왔다. 8세기 인도의 고승이었던 파드마삼바바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부인도 이가 빠지는 꿈을 꾸고 난 후, 남편이 출가하여 이별하게 된다.

그러나 여자가 이빨 빠지는 꿈은 다소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예를 들어 싯다르타의 아내였던 야소다라가 자신의 이빨이 빠지는 꿈을 꾼 적이 있는데, 이 꿈을 꾸고서 그녀는 라훌라를 잉태하게 된다.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에서 적은 것처럼 고대 인도에서도 여성의 이빨 빠지는 꿈은 출산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현대인들에게 이빨 빠지는 꿈은 여전히 불길한 징조로 해석하는 모양이다. 새해에는 모두 길몽하기를 바란다.

심재관 동국대 연구초빙 교수 phaidrus@empas.com
 


[1422호 / 2018년 1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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