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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전환과 인간다움

인천공항이 2017년 5월12일 약속했던 1만명 정규직 전환을 마침내 구체적으로 실현하기에 이르렀다. 인천공항은 특히 소방대와 보안검색 관련 분야의 약 3000명을 직접고용 대상으로 발표했다. 국민의 생명·안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분야라는 인식이 이러한 결정으로 이어졌다. 여러 내우외환으로 번잡한 상황 속에서나마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최저임금 문제와 아울러 국민의 기초적인 생계를 위협하면서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들이다. OECD에 가입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국민의 삶이 안정을 찾지 못하는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혹자는 인생무상을 이야기하면서 무상한 세상살이에 어찌 안정을 추구하느냐고 타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도 제행무상을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에서도 세상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는 성서 구절은 많고도 많다.

그러나 필자를 포함해서 범부들이 대다수인 일반 국민들에게 제행무상을 이야기하면서 삶을 초탈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맹자의 말씀대로 일반 국민들의 수준에서는 안정된 재산이 있어야 안정된 마음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재산이 안정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것인지는 간단하게 답할 수 없다. 누구나 어렸을 때 접하였다고 할 톨스토이의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우화에서는 인간의 지나친 탐욕을 꾸짖으면서 소욕지족의 삶을 권한다.

그러나 소욕지족이라고 하더라도 사회 속의 존재로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가운데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할 수준은 충족시켜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한 사회 안에서 어떤 사람은 안정된 삶을 누리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평생을 불안정한 삶 속에 허덕인다면 그 사회가 건전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생활의 안정은 절대적인 부의 총량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상대적 안정성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가령 부탄과 같이 대다수의 국민들이 엇비슷하게 가난을 공유하고 있는 사회보다 빈부의 불평등이 심각한 우리 사회가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명나라 묘협(妙叶) 스님의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에 “이익을 추구할 때 분에 넘치는 것을 바라지 마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반드시 움직이게 된다(見利不求霑分, 利霑分則癡心必動)”라는 가르침이 있다. 욕심스럽게 이익을 추구하며 인간성을 잃어가는 오늘날의 세태에 대한 경고라고 하겠다. 정작 이익을 왜 추구하는지에 대해 생각 없이 흘러가는 세태가 안타깝다.

인천공항의 정규직 전환을 전환점으로 하여서, 비정규직을 양산해서라도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풍조가 사그라지기를 바란다. 물론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나 홀로 인간다움을 지켜가려는 노력이 과연 생존력이 있을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또한 지구촌의 일원으로서 우리나라보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실질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예컨대 지금도 여전히 아프리카에서는 매해 말라리아로 수십만의 목숨이 사라지고 있다. 열악한 주거환경과 위생환경 탓이다. 또한 같은 민족으로서 지척에서 생필품과 의약품이 없어서 온갖 고난을 겪고 있는 북한 동포들도 있다. 핵무기 개발에 대한 제재와는 별도로 인도적 차원에서 어떻게든 그들을 도와야 한다. 요컨대 정규직 전환의 확산과 더불어 생존경쟁의 정글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켜내려는 노력이 확산되기를 바란다. 지켜볼 일이다.

적당한 불안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지만, 우리 사회는 충분히, 아니 지나치게 불안하다. 세월호 사건에 이어서 최근 제천의 화재 사건은 물론이고, 매해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 자살로 죽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현재 우리 사회의 불안은 술 권하는 사회를 넘어 죽음을 권하는 사회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인간다움이 살아나는 방향으로의 전환을 본격화하는 2018년을 기대한다.
 
류제동 성균관대 한국철학과 초빙교수 tvam@naver.com
 

[1423호 / 2018년 1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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