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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문화재 수집 일생 바친 간송 전형필

기자명 이병두

어머니 불심으로 급고독 장자 되다

▲ 간송 전형필 선생은 평생 자산을 팔아 성보와 문화재 수호에 진력했다.

1906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1962년 세상을 떠난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은 요즈음 같으면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재벌에 버금가는 큰 재산을 물려받았는데, 그것을 헛되이 쓰지 않고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재를 모아 온전하게 지켜내는 일과 교육 사업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전통문화 아끼는 마음으로
기와집 120채값에 금동불감
불자 어머니 가르침 따라서
매년 양로원에 기와집 한채

그는 오세창과 고희동에게 배운 탁월한 문화재 감식안, 귀한 문화재들이 외국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필요할 때는 시세보다 훨씬 비싼 값을 치르고서라도 손에 넣는 민족의식과 배포 등 문화재 애호가로서 가져야 할 여러 조건을 함께 갖추고 있었다.

그가 거부의 상속자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리고 민족 전통문화를 아끼는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국보 294호)‧‘청자 상감운학무늬 매병’(국보 68호)‧‘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청자 기린형뚜껑 향로’(국보 65호)‧‘청자 상감연지원앙문 정병’(국보 66호)‧‘청자 오리모양 연적’(국보 74호)‧‘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국보 270호)와 ‘금동 계미명 삼존불입상’(국보 72호, 금동입상)‧‘금동삼존불감(金銅三尊佛龕, 금동불감)을 비롯해 귀중한 수많은 문화재들이 외국 소장자들의 손에 들어가거나 전란 와중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 1939년 간송이 힘든 과정을 거쳐 서울시내 기와집 120채 값인 거금 12만원을 주고 구입한 금동불감.
이 중 ‘금동불감’은 1939년 간송이 힘든 과정을 거쳐 서울시내 기와집 120채 값인 거금 12만원을 주고 구입해 모셔왔지만 “총독부에서 법 절차를 내세우며 압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금동입상’과 함께 해방이 될 때까지 공개하지 못하고 있었다.

금동불감을 집 안방에 모신 뒤 간송과 그 부인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고 어린 아들들은 ‘아기부처님’이라며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 안내로 금동불감을 본 간송의 어머니가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절을 올리고 아들에게 물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참 정성스럽게 만들었구나. 이 부처님도 귀한 부처님인가?”

간송이 대답했다.

“예! 어머니. 이렇게 작은 집에 모셔진 부처님은 이 분밖에 없습니다.”
“귀한 부처님을 모셨으니 집안의 복이다 복! 이렇게 귀한 분을 모셨으면 복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베푸는 덕을 쌓아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복이 참복이 되고 길게 이어진다고 했어. 사실 내가 그동안 아범이 주는 용돈을 모아 조금씩 도와온 동화인보관이라는 양로원이 있는데 자식들이 연해주로, 간도로 간 후 돌아오지 않는 노인네가 늘어나면서 양로원 살림이 영 힘들다고 하더구나.”

어머니의 간곡한 당부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간송은 그날 곧바로 그 양로원을 찾아가 식량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마다 기와집 한 채 값인 1000원씩을 지원하기로 마음먹고 해방 뒤 미 군정청이 양로원을 폐쇄할 때까지 이때의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힘들여 구한 보물 도자기들 앞에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사진에서 보듯이, 간송은 자신을 꾸미지 않는 소탈한 인물이었다. 물론 당시 다른 부자들 중에도 본성이 선한 이들은 여럿 있었겠지만 범상한 장자(長者)에서 어려운 이웃을 본격으로 돕는 비범한 급고독(給孤獨) 장자가 된 이는 드물다. ‘불감’을 배알(拜謁)하고 받은 감동을 승화시켜 아들 간송이 자비를 실천할 수 있도록 지혜롭게 일깨워준 불심 깊은 그의 어머니, 바로 관음과 문수보살의 화현이 아니었을까.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25호 / 2018년 1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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